gremo volit
센터 근처 작은 공원 길목, 나무 옆 벽면에 사람들의 얼굴이 한꺼번에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광고판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보니 모두 선거 포스터였다.
번호가 붙어 있었지만 일정하지 않았고, 제각각이었다. 이름으로 보이는 것과, 무언가를 내세운 듯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는 문장들. 서로 다른 색의 인물들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그중에 반복해서 보이던 문구가 있었다.
gremo volit.
투표하러 가자.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함께 어디로 가자고 말하는 문장처럼 들렸다.
며칠 뒤, 그 얼굴들이 내 손 안으로도 들어왔다. 우편함에 꽂혀 있던 종이들을 꺼내 보니, 거리에서 보던 얼굴 몇몇이었다. 전단은 생각보다 작고 단순했다. 사진과 이름, 그리고 짧은 문장 몇 줄이 다였다.
슬로베니아 친구에게 선거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의 반응은 담담했다. 특별히 관심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고, 주말에 시간을 내어 투표하러 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조금 번거롭다는 듯한 기색도 느껴졌다.
실제로 내가 맞이한 투표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투표가 토요일에 이루어진다고 했다.
거리는 평소처럼 흘러가고 있었고, 사람들의 하루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주말에는 도심에서 열릴 자전거 대회 준비가 더 한창이었다. 도로 곳곳이 통제되고, 안내 표지판이 세워졌다. 그 사이로 나는 그저 지나갔다.
그렇게 그날이 지났다. 이 도시의 선택이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