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며 머무는 시간
봄을 향해 떠났지만, 도착한 곳은 아직 겨울이었다. 눈 덮인 들판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나무들은 잎 대신 흰 눈을 가볍게 얹고 서 있었다. 멀리 보이던 산도 흐릿한 흰빛에 잠겨 있었다. 케이블카가 산등성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스키장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곳곳에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이 피기 시작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공기에는 이미 파릇한 내음이 묻어 있었고,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몇 시간을 이동한 끝에 전혀 다른 계절 위에 서 있었다. 같은 3월이었지만, 내가 닿은 자리는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이내 닿은 캠핑장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우리의 캠핑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먹고 마시는 시간이 중심에 있었다. 자리는 늘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고, 앉아 머무르기까지 손이 계속 움직였다.
시선을 돌리면, 주변은 달라 보였다. 캠핑카 옆에는 접이식 의자 한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이 보였다. 누군가는 천천히 걷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볍게 뛰고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조용히 산책하는 모습도 있었다.
오고 가며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다정함이 오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머무는 방식도 차이가 있었다. 의자가 놓인 방향도 그랬다. 불과 음식이 차려진 쪽이 아니라, 산과 낮게 깔린 지면, 그리고 그 위로 이어지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끼니로 배를 채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는 시간이었다. 자연의 여백 사이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 보였다. 같은 풍경 안에 있으면서도,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의 결은 달랐다.
그저 자연의 고요를 마주하러 온 듯했다.
무엇보다 그곳의 밤은 조용했다. 타다 남은 장작 냄새가 공기 속에 남아 있었고, 시린 공기가 스치다 오래 머물렀다.
해가 넘어갈 무렵, 캠핑카와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소리는 거의 흘러나오지 않았다.
채워가며 쉬는 시간과, 덜어내며 머무는 시간의 경계에서 고요만 남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