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밀려나지 않는 도시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막 출시된 차 옆에 오래된 차가 선다. 이 도시의 도로에서는 그런 장면이 드물지 않다. 처음에는 그 풍경이 조금 낯설었다. 내게 오래된 차는 어딘가 특별한 날에만 잠깐 등장하는 것이거나, 전시처럼 따로 구획된 자리에서 보는 것이 더 익숙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오래된 차들이 지금의 도로 위를 아무렇지 않게 달린다. 새 차들 사이에 섞여 신호를 받고, 골목을 돌고, 광장을 지난다. 한 도로 위에 서로 다른 시대가 함께 놓여 있다.
어느 날은 광장 한복판에 클래식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파랑, 빨강, 옅은 회색. 색은 또렷했고 차체는 낮았다. 낡았다기보다 오래 유지된 모양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시간이 지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남겨 둔 것 같은 모습. 한 시대의 취향과 감각이 차체 위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세월이 지난 차를 종종 본다. 그리고 그 차를 모는 사람들도 대체로 나이가 있다. 오래된 차를 오래된 사람이 모는 장면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어울렸다. 시간이 지난 것끼리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또 한 번은 터널 진입로 옆 차선에서 클래식 스포츠카를 탄 노인을 본 적이 있다. 속도를 제법 냈다. 운전자의 나이가 먼저 가늠되었던 건지, 그것이 젊어 보인다고 해야 할지, 오히려 선명해 보인다고 해야 할지 잠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만 분명했던 건, 그가 과거의 물건을 억지로 끌고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차는 아직도 그의 현재 안에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한 자세였지만, 동시에 지금을 지나가는 사람의 자세이기도 했다.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도 가끔 그런 차를 본다. 세월을 품은 묵직한 소리가 난다. 새 차들과 나란히 서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 순간마다 나는 시간이 꼭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새것이 낡은 것을 금세 밀어내고, 오래된 것은 금방 뒤처진 표정이 된다. 고장이 나면 수리보다 교체가 먼저 떠오르고, 익숙한 것은 쉽게 구식이 된다. 낡음은 곧 효율의 반대편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는 시간이 지난 기계를 계속 손질한다. 부품을 구해 고쳐 가며, 여전히 도로 위에 세운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선택처럼만 보이지 않았다. 쉽게 바꾸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워 보였다.
오래 쓴 것을 계속 쓴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 귀찮음도 감수해야 하고, 시간을 들여 손을 봐야 하며, 불편함을 아주 없애지는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수고를 접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광장에 줄지어 선 차들을 보며 나는 그 점을 오래 생각했다.
말이 충분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꾸 장면을 먼저 읽게 된다. 나는 이곳에서 그런 방식으로 도시를 조금씩 알아왔다. 표정, 거리의 속도, 누가 무엇을 오래 붙들고 사는지 같은 것들. 잘 설명할 수는 없어도 반복해서 보게 되는 장면은 결국 그 도시의 마음에 가까운 쪽을 보여 준다.
내게 올드카는 처음엔 그저 눈에 띄는 풍경 중 하나였지만, 자주 마주칠수록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지난 것이 곧 밀려난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것은 뒤로 물러나는 대신, 지금의 옆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도시의 도로를 볼 때마다, 여기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 새것과 오래된 것이 맞서지 않고, 먼저 온 것이 무조건 사라지지 않는 자리. 지금의 속도 안에 지난 시간이 같이 들어와 있는 풍경. 이 도시에서는 시간이 밀려나지 않는다. 그냥 함께 놓여 있다.
그 장면을 본 뒤로도, 나는 이 도시의 시간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