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 않는 날들, 아직 다 건너지 못한 말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재미있고 즐거운 날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
— 에쿠니 가오리, 『호텔 선인장』
책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했던 문장. 본문이 아닌 책 가장자리의 한 줄이었지만, 줄곧 내 마음 한편에 오래 머물러 있다.
등과 맞닿은 셔츠 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곧 서늘해졌고, 콧등을 시큰히 저린 냉기는 오래 남아 있었다. 포근함을 넘어선 열기는 인중에 땀방울로 금세 차올랐다. 입술 끝에 걸린 텁텁한 숨결은 더디게 흩어졌다.
계절은 이런 기척으로 몸에 먼저 닿아 지나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오래 붙든 한 줄을 떠올렸다.
계절은 틀림없이 돌아왔지만, 나는 언제나 그보다 한 발 늦게 따라갔다. 겨울은 빠르게 깊어졌고, 나는 그 어둠보다 먼저 말을 잃었다. 봄은 망설임 끝에 도착했고, 여름의 걸음은 내 발을 앞질렀다.
그러나 낯선 언어는 계절처럼 순환하지 않았다. 한 번 통했던 문장이 다시는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짧았지만 오래 남는 웃음과 뜻밖의 다정함, 그리고 잠깐의 용기. 그 즐거움은 분명했지만,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닿지 못할 자리처럼 멀어졌다.
어김없이 계절은 돌아왔지만 그날의 공기와 표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이방인의 시작을 한 걸음 벗어났다.
그 스물네 편의 기록을 <슬로베니아에서, 언어의 틈>으로 묶어 두었다. 부족한 언어로 버텨야 했던 생존의 순간에서 시작해, 멈춤과 실패, 작은 용기, 관계와 확장을 지나며 말을 잃고 다시 찾는 시간을 기록했다.
그러나 언어는 아직 다 여물지 않았다.
말은 겨우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버거운 순간들이 대부분이고, 다 건너가지 못한 마음이 남아 있다. 그 덜 여문 자리에서 나는 다시 말을 이어가려 한다.
시간과 계절, 관계와 다정함, 그리고 내 삶의 리듬을 따라가려 한다.
언어는 여전히 서툴지만, 그 서툰 위에도 계절이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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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틈〉에 잇는 두 번째 자리, 〈덜 여문 언어의 자리〉를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걸음을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