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창구에서 더듬은 한 문장
초인종 소리마다 숨이 막히는 건, 언어보다 먼저 오는 불안 때문이다.
띠리 리리—
집 안의 적막을 깨는 요란한 벨소리에 놀람과 동시에, 나는 숨을 죽인다.
보이지 않는 대상의 호출은,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시작된 것처럼 긴장감을 불러온다.
아직 택배 수령과 우체국 방문이 낯설던 무렵, 유독 큰 데시벨의 초인종이 집 안을 울렸다.
나는 수화기 너머 Pošta라는 단어만 캐치한 뒤 급히 0층 입구로 내려갔다.
입구에는 우체국에서 나온 듯한 사내가 서 있었다.
큰 체격과 키, 근엄하다 못해 엄한 표정.
“Dober dan—” 하고 내뱉은 인사는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봉투 하나를 내밀곤 성큼 돌아섰다.
긴장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와 펼쳐 든 봉투는, 벌금 고지서였다.
발신인에 국가 이름이 찍힌 봉투는 반가운 편지가 아님을, 그날 처음 알았다.
물론 모든 고지서가 국가 이름으로 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
사실, 초인종 소리에 숨이 막히는 건 그보다 조금 더 앞선 기억 때문이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여, 현관 너머로 울릴 일은 거의 없었다.
0층 입구 밖의 문을 통과해야 각 층을 오갈 수 있는데, 우리 집을 찾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한 중년 아저씨가 형식적으로 초인종을 누른 뒤 현관 앞에 10여 분 앉아 있곤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관리인이었고, 우리 집 천장의 누수를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의 방문은, 집 안에 혼자 있던 나에겐 꽤나 큰 공포로 남았다.
그 이후로 초인종 소리는 반가움보다 긴장을 먼저 불러왔다.
때로는 벨이 다시 울리지 않고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한참 뒤에 내려가 우편함을 열었다.
어김없이 '우체국으로 와서 찾아가라'는 작은 영수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 전하든, 초인종 한 번으로 남긴 무언의 안내였다.
⸻
평소 내가 우체국을 찾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택배기사님의 전화를 받지 못해 우체국으로 보내진 물건을 찾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벌금 고지서 같은 불청객을 수령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영수증이 두 경우를 전혀 구분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앞으로 오는 우편은, 소비로 이어진 작은 택배 말고는 거의 없다.
이곳 생활의 대부분은 남편 이름으로 기록되고 남는다.
그래서 영수증에 남편 이름이 적혀 있으면, 나는 혹시나 하는 불안한 답을 유추해 보곤 한다.
⸻
그날도 무엇을 받게 될지 모를 영수증을 들고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내 입은 외운 문장을 붙들고, 연신 입술 안쪽에서 되뇌었다.
I’m here to pick up a package.
Po paket sem prišla.
택배 찾으러 왔습니다.
두 문장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내 발걸음의 박자를 대신했다.
언어보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더 선명했지만, 나는 그 박동 위에 문장을 포개듯 올려두었다.
혹시라도 창구 앞에서 얼어붙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 문장만큼은 흘려보내지 않으리라.
줄은 길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며 손에 쥔 긴장을 옅게 닦아내고,
머릿속에서는 준비한 문장을 입술 끝에서 되뇌었다.
드디어 내 앞의 사람이 자리를 비웠고, 나는 숨을 고르고 창구 앞으로 다가섰다.
소심히 영수증과 함께 비자카드를 내밀었다.
이곳에 머무르는 나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한 작은 절차.
직원의 눈빛은 잠시 그 카드 속 내 얼굴을 스쳤다.
곧 그녀는 자리를 일어섰다.
그녀가 뒤편의 방으로 들어가는지,
혹은 근처 얇은 서류철이 꽂힌 우편함을 뒤지는지,
그 짧은 동선에 따라 내 손에 쥐게 될 것이 무엇인지 감이 온다.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면, 기다리던 택배를 받을 것이란 뜻이고,
뒤편 서류철에서 얇은 봉투를 집는다면 마음은 이미 굳어진다.
이번에도 혹시, 국가의 이름이 크게 찍힌 봉투일까.
⸻
이윽고 그녀가 봉투를 들고 돌아와 내 앞에 내려놓는 순간,
다시 한번 찰나의 눈길이 스쳤다.
그 시선을 감당하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다.
어김없이 봉투 속에 들어 있던 건 늘 사소한 실수의 결과였다.
낯선 도시의 오래된 골목에 잘못 세운 차,
제한 속도를 눈치채지 못한 구간에서의 무심한 가속.
그 순간에는 몰랐던 짧은 방심이
몇 달 뒤 우편으로 날아와 나를 붙잡았다.
현지인에겐 흔한 불찰일지 몰라도,
언어가 서툰 이방인에게는 그 모든 절차가 서러움으로 겹쳐왔다.
법과 제도의 목소리는 단호한데,
나는 그 앞에서 늘 더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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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서야 그 무게가 온전히 밀려왔다.
부끄러움이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부담처럼 남았다.
힐끗 스친 시선은 늦게서야 부끄러움으로 번졌다.
말보다 먼저 도착한 건,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