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남은 이별의 초상

정복을 입은 마지막 미소

by 슬로하라


평생의 의복을 입은 채, 누군가를 향한 다정한 시선. 활짝 웃고 있는 얼굴. 그 주변을 빼곡히 채운 국화 제단은 너무나 생경한 광경이었다.


해군 장교로서 한평생 강인했던 아빠는 그 정신력 하나로 마지막까지 생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의 척추 종양 제거 수술로 돌아오지 않은 다리의 감각, 온몸 구석구석을 도려내는 듯한 깊은 통증 앞에서는 그 의지도 어찌할 수 없었다. 몸은 잠으로 고통을 밀어내고 있었고, 지나고서야 그것이 섬망 증세였음을 알았다.


11월 초, 주말이었다. 더 이상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 선언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잠든 아빠를 한참이나 고요히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과 나의 작은 기척에 아빠가 눈을 떠 나를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러더니 고르지 못한 호흡 사이로 힘겹게 말을 내뱉으셨다.


“그때… 그 사진 있잖아, 내가 웃던, 그거…”


어떤 사진을 말씀하시는 걸까. 선뜻 알아차리지 못해 되물으니, 아빠는 휴대폰을 가져다 달라 하셨다. 팔목 손가락 뼈 마디마디에까지 전이된 통증 탓에 화면을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하시다 멈추곤 말씀하셨다.


“너… 결혼식 때, 그거…”


내 폰에서도 급히 사진을 찾아 보여 드렸다.

“아, 아빠, 혹시 이 사진? 아빠 잘 나온 사진!”


“그래, 그거… 내 영정사진으로 해라.”


잠시의 정적이 순간의 공기를 삼켜 버린 듯했다. 그 말이 내 귓속에 오래 울렸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운 추 하나가 명치에 내려앉았다. 엄마와 동생을 쉬게 내보내고 남편과 곁을 지키고 있던 때였다.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빠는 잠에서 깨어 당부를 남기셨다. 그때의 공기가 아직도 내 어깨 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아빠는 어렴풋이, 그러나 분명히 알고 계셨던 거다. 돌아오는 의식 틈틈이 그렇게 당신의 자리를 정리하고 계셨다. 남은 우리가 허둥대지 않도록, 더 깊은 슬픔을 안아야 할 엄마 대신 큰딸인 내게 마지막 부탁을 남기신 거였다.


우리의 곁에 오래 계시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 당신의 고통의 멈춤 기도가 더 간절히 닿아서였을까. 당부하시고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났다.


환희와 상실이 교차하던 그해의 압축 같은 장면이었다. 딸의 결혼식에서 누구보다 활짝 웃던 얼굴, 그 미소를 남긴 사진이 결국 당신의 영정으로 남았다.


그리고 장례식,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입관식을 겪었다. 유리 너머 다시 마주한 아빠의 모습에 놀랐다. 아프기 전의, 그러니까 그저 주무시고 계신 것만 같았다.


암이 재발하면서 머리 뒤쪽에도 혹처럼 자란 종양 때문에 아빠는 단 한 번도 정면으로 편히 눕지 못하셨다. 늘 옆으로 비스듬히 웅크려 계셔야 했다. 마지막 숨이 꺼져가는 그때까지도 불편한 자세였다. 그런데 입관실 침상 위의 아빠는 마치 예전처럼 천장을 향해 곧게 누워 계셨다. 게다가 혈색마저 전과 다름없어, 곧 예전처럼 코를 골기라도 할 것만 같았다.


다만 그곳이 안방이 아닌, 너무도 이질적인 공간이라는 점과 아빠의 볼을 맞대고 이마에 입을 맞출 때 닿은 차디찬 감촉으로 장례의 기묘한 현실을 직시했다. 전날 아침 임종 때까지도 옅은 따스함을 품던 아빠의 손발과 얼굴의 온기는,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부서지지 않을 매끈한 냉골의 감촉만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동시에 묘한 위안이 마음 한구석에 닿았다.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이신 아빠의 모습이, 오랫동안 우리가 기억해 온 가장 익숙한 모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바라던 평소의 편안한 자세로, 마침내 안식을 찾으신 듯했다.


아빠는 마지막에도 평생의 의복, 정복을 입으셨다. 군인은 죽어서도 수의를 대신한다고 했다. 딸의 결혼식에도, 당신의 장례식에도 아빠의 옷은 모두 정복뿐이었다.


나는 결혼할 때 아빠에게 양복을 맞춰 드렸지만, 아빠는 그마저도 고이 접어두셨다. 경사스러운 날에도 정복으로 대신했고, 떠나는 순간에도 수의로 대신했다. 아빠를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당신 일생의 무게를 증명해 온 정복과 함께였다.


아빠의 마지막은, 평생의 옷과 함께였다. 그 옷보다 오래 남은 건, 한평생 지켜온 마음의 단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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