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숨이 하나둘 멀어져 간 날의 무게

슬픔이 모아 놓은 그림자

by 슬로하라


그날은 아침부터 유독 정신이 흩어져 있었다.


전날 밤, 스프레이형 드라이 샴푸로나마 아빠의 앙상한 머리칼을 감겨드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게 전부라는 게 서글펐지만, 아빠는 덕분에 개운하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지갑을 가져오라 하시더니 힘겹게 오만 원권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셨다. 용돈이라 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직감이 스쳤다.


3주 전 마지막 외래 진료를 끝으로 아빠는 더 이상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선언과 함께 아빠의 몸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었다. 12년 만에 전신으로 재발한 암은 더욱 고약했다. 3년 가까이 항암으로 이미 몸은 축나 있었고, 두 번째 척추 종양 제거 수술 후에는 다리 신경이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걸을 수 없게 된 충격은 실망감으로 남았다. 거실에 병상 침대를 마련해 모셨지만, 주무시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아빠의 정신력으로 버텼던 시간들도 지독한 통증 앞에선 무력해져 갔다.


그런데 전날 저녁 따라 아빠는 기력은 떨어져 있어도 정신은 온전히 깨어 계셨다. 퇴근 후 잠시 들러 샴푸를 해드리고 돌아서던 딸을 향해, 아빠는 닫히는 현관 너머로 끝까지 시선을 두고 있었다. 옅은 눈짓이었지만 담담한 심해 같았다. 그것이 오래 마음을 붙잡았다. 어쩐지 내 안에서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게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점심 무렵, 가족 단톡방에 아빠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에게 돌아온 답은 ‘응급실’이었다. 그 단어가 눈에 걸리자마자 지금 당장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정신도 없이 반차를 올리고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아빠는 종이컵 반 컵의 피를 쏟아냈다고 했다. 엄마 혼자 그 순간을 감당했을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창밖 풍경이 눈물에 번져 뭉개어져만 갔다.


더 이상 오기 싫으시다던 그곳.

병상 사이에서 찾은 아빠의 얼굴은 이미 힘을 잃어 있었다. 눈동자까지 누르스름해진 안색은 낯설기까지 했다. 눈 맞추려는 인사에도 생동감은 없었다. 간신히 나를 바라보던 초점마저 파르르 떨렸다. 근육이 다 빠져나간 팔에 바늘이 파고들자 가는 신음만 새어 나왔다. 내가 잡는 손길조차 아프게 할까 두려워, 아빠의 옷자락만 연신 쓸었다. 내 울음은 혹시라도 아빠의 마음을 더 처연하게 만들까 봐,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꾹꾹 삼켰다.


의사는 아빠의 장기가 하나둘씩 꺼져 가는 중이라고 했다. 버티던 것들이 다해, 이제 몸이 하나씩 셧다운 되어 가는 신호라며, 아직 오지 못한 가족들을 부르는 게 최선이라 했다.


아빠는 이미 입안이 막힌 듯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동공이 풀리고 정신이 꺼져 가려는 틈으로도 연신 우리만 바라보며 힘겹게 버티고 계셨다. 급히 들어선 동생을 향한 시선 끝자락에는, 미처 다 전하지 못한 미안한 애정이 그득히 괴어 있었다. 파리하게 시든 낯빛에도 마지막까지 아빠는 다급히 모인 우리를 눈에 하나하나 담으려 애쓰셨다. 아빠의 눈동자에 겹쳐진 우리의 그림자에서, 정말로 아빠가 눈으로 우리를 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막힌 말 대신 아빠가 마지막으로 전하는 다정이었다.


그 밤, 친가와 외가 식구들, 아빠의 친구분들까지 한달음에 올라왔지만 끝내 아빠와는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거친 호흡 너머로, 한숨 다해 당신의 남은 마지막을 모두 끄셨다.


그날 알았다.

죽음은 언제나, 두드리는 기척도 없이 불쑥 들이닥친다. 슬픔은 몸에도, 기억에도, 살아가는 동안에도 자국을 새기고 만다. 살아가며 마주하기 싫은 감정이지만, 불시에 터져버리는 순간마다 다시 고개를 든다.


그렇게 쌓인 순간들은, 그림자처럼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결국 흩어지지 않은 파편들이 내 일기를 이루는 눌림이 되었다. 나는 그 눌림을 오래 지니고 살았다.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아빠의 마지막 용돈을, 여전히 간직한 채. 이 글은 그 눌림을 꺼내어 붙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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