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과 간격 사이에서
여름이 한창일 때는 인근에서 몰려온 관광객들 속에 섞여, 우리도 그저 스쳐 가는 얼굴 가운데 하나가 된다.
다른 유럽에서는 인파 속에 섞여 우리의 다름이 희석되는 게 보통이지만, 이곳은 달랐다.
여름이 물러가고, 한철 문 열던 젤라토 가게가 다시 문을 닫고, 붐비던 식당 테라스에도 빈자리가 드러나면,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한층 도드라진다.
좁은 마트의 통로에서, 식당의 한 모퉁이에서, 산책길의 눈길 속에서. 그 다름은 더 자주, 더 가까이, 더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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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혹은 쉽게 접하지 못한 낯섦 앞에서 아이들의 눈빛은 흘깃흘깃,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 큰 눈망울이 더 동그랗게 굳은 눈, 부모의 옷자락 뒤에 숨어서 내다보는 눈, 그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해 머물렀다.
다른 낯선 얼굴과 말투, 낯선 색이 이 작은 동네에서는 곧바로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먼저 웃음을 지어 주곤 했다. 아이들은 같이 방긋 웃거나, 긴장한 채로도 경계의 틈을 내어 웃음을 되돌려주곤 했다.
그것은 불편이 아닌, 순수한 생경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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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시선이 끝내 불편하지 않았던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곁에서 조용히 눈빛을 다잡아 주는 부모들 덕분이었다.
“보면 안 돼”라며 날카롭게 막는 대신, 말없이 아이의 손을 이끌거나, 눈길을 살짝 다른 데로 돌려준다. 그리고 내가 불편해하지 않기를 바라듯, 단정한 짧은 미소로 태연함을 남기기도 했다.
그 태도는 적극적인 친절도, 차가운 무관심도 아니었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는, 무심한 듯한 간격이었다. 나는 그 거리에서,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조용한 배려의 결을 읽을 수 있었다.
무례한 시선과, 무례하지 않으려는 시선은 다르다. 낯섦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도, 선을 넘지 않는 간격이 분명 존재한다.
멀찍이 두는 그 거리 속에서, 나는 그저 ‘무심과 배려 사이’에 놓인 이곳의 태도를 배웠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를 향해 같은 시선을 건네기를. 불필요하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무리보다, 조용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간격을 두는 눈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