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히 늙어가는 법을 배우며
남편과 늦은 시간 동네를 걷다, 한순간 흠칫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동네의 중심쪽으로 내려가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마주친 두 사람 때문이었다.
칠십 대쯤 되어 보이는 노년의 남녀가 진하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꽤 생경하고도 어딘가 어색한 장면이었지만, 이내 불편함보다 따뜻함이 스쳤다.
다정함에 연령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육체의 탐함이라기보다 감정의 언어가 먼저 전해졌다. 그 순간, 사랑은 젊음의 얼굴이 아닌 평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곳 생활에 조금씩 스며들면서는, 산책길에서든 카페의 한 모퉁이에서든 혹은 여느 명소의 길목에서든 나이 든 부부 혹은 연인이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정다운 입맞춤을 나누는 일을 자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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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에, 손을 포개어 발을 맞추어 걷는 모습은 앞서거니 뒷서거니가 아닌, 나란히 걷는 발걸음이었다.
그들의 애정은 싱그럽기까지 했다. 몸은 늙어갔어도, 서로의 눈동자와 눈빛 속에는 젊은 날의 두 사람이 겹쳐 있었다. 무던한 눈빛 속에서 오히려 젊음이 다시 피어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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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에서도 가장 많이 보이는 이들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수영복을 입고, 비키니도 거리낌 없이 즐겼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었다. 몸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 시선에는 오래된 자유로움이 묻어 있었다.
한국에서 중년이나 노년의 어른들이 물속을 누비는 모습은
내 기억에 잘 없던 터라, 그마저도 새롭고 낯설었다. 이곳에서는 그런 자유와 다정이 보통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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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트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그들만의 대화와 다정함을 눈빛으로 주고받았다.그래서일까, 조금은 뻣뻣한 우리의 모습이 문득 서먹하기까지 했다.
다정은 소란스럽지 않은 풍경으로, 그저 일상의 일부였다.
산책을 하다 보면, 그들은 잠시 멈춰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 입맞춤으로 이어지곤 했다.
다정은 늘 젊은 날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마주한 오래된 다정은, 젊음보다 더 단단한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다정의 모양은 다를 뿐, 마음의 결을 어디서나 닮아 있었다. 다름 속에서도, 결국 닿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는 걸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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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무는 연보랏빛 노을 틈에서도 그들의 다정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나 또한 언젠가, 그 빛을 닮아가기를 바란다.
나에게 되물었다. 그리고 나와 나란히 걸음을 맞추는 그에게도. 우리가 앞으로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이 흘러도 그저 이렇게, 나란히 다정히 걸어갈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다정히 늙어가는 법을 지금 이 순간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를.
오래전, 영국의 거리에서도 비슷한 두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날의 다정은 사진 속에 머물렀지만, 마음은 지금에 닿아 있었다.
우리도 저렇게 늙어 가자던 남편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그 다정의 빛을 천천히 배우며,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