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의 미로 앞에서

둘이라는 세계를 배우는 시간

by 슬로하라


쌍수라는 문법을 통해 배운, 언어가 세상을 구분하는 방식을 배워 간다.


지난 10개월 간 이어진 A1 과정을 배우면서
단번에 외워지는 단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주 들리는 단어를 익히고, 필요한 문장은 찾아보며,

상황에 맞게 짧은 문장을 외워 보는 일에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그럼에도 문법을 이해하는 건 여전히 벽 같다.
그리고 그 벽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슬로베니아어에는 '둘'을 위한 문법이 따로 있다.
단수도 복수도 아닌, 그 사이의 세계.
그들은 그것을 쌍수(dual)라고 부른다.


슬로베니아어는 현대 언어 중에서도 드물게 쌍수를 유지하는 언어다.
대명사, 명사, 형용사, 동사 모두에서
단수(singular) / 쌍수(dual) / 복수(plural) 형태가 존재한다.

안에서 단어들은 사람의 수와 성별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된다.


둘이라는 개념이 문법 속에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어에서 '둘'은 복수 안의 일부일 뿐이지만,
이곳의 언어에서는 ‘관계의 단위’였다.
두 사람, 너와 나, 그녀와 그처럼.
가까움과 균형, 그리고 짝을 이루는 세계가 문법 안에 있었다.


‘가다’라는 뜻의 동사 iti를 예로 들면,
단수에서는 jaz grem ― "나 간다",
쌍수에서는 midva greva ― "우리 둘이 간다",
복수에서는 mi gremo ― "우리 여러 명이 간다"로 바뀐다.


주어가 달라질 때마다 말의 끝도 달라지고,

그 변화가 곧 '함께 가는 사람의 수'를 드러낸다.
한국어에서 '간다'는 언제나 그대로인데,
이곳에서는 단어의 끝에 붙은 -va나 -ta가
'둘'이라는 특별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명사와 형용사 역시 '둘'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며,

이곳의 언어에서는 대상의 수와 관계까지 문법 속에 함께 담긴다.


문법의 규칙은 차갑고 명확했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의 세계를 구분하는 질서가 있었다.
단어 하나가 아홉 번의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세상을 보는 그들의 방식을 조금씩 배워 갔다.


그 복잡한 규칙들이 처음엔 그저 불편했다.
외워도 금세 잊히고, 잊을 때마다

나는 다시 그 미로의 입구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문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느껴졌다.
언어 속에는 사고의 질서가 있었고,
그 질서 안에는 관계와 감정의 거리까지 포함돼 있었다.


둘을 위한 문법이 있다는 건,
이곳의 언어가 ‘함께’라는 개념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둘’이란 곧 연결이고, 균형이자, 책임이기도 했다.

나는 그 문법을 이해하려 애쓰며,
그들의 세계에서 ‘둘’이 지닌 특별함을 조금은 알아가고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문장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 속에 담긴 세계의 방식을 이해하는 일임을
그 미로 속에서, 천천히 배워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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