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한국어 쪽지가 전한 기쁨

그녀의 한국어, 나의 슬로베니아어

by 슬로하라
그녀는 내 언어로, 가장 확실한 기쁨을 썼다.


햇살이 부드럽게 식어가던 오후였다.


우리는 한여름을 지나 근 세 달여 만에 만났다.

수업을 같이 듣던 때에 비하면 꽤 오랜만이었다.


동네 중심가의 호젓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콜롬비아에서 온 그녀는 슬로베니아인 남편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다.
BTS 정국의 팬이며, 한국의 음식과 드라마를 애정한다.
늘 “언젠가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라고 말하곤 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그녀는 서둘러 들어온 나를 향해 밝게 미소 지었다.

주문을 하고 숨을 돌리며, 그간의 안부를 서툴게 주고받았다.


이윽고 그녀가 수줍은 내색을 얹은 채,

작은 종이 조각들을 내게 하나씩 건넸다.
조심스레 찢은 노트 페이지 위에는
붉은색 펜으로 적은 서툰 한국어 문장들이 있었다.


안녕 친구?
오랜만이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너에게 뭔가 말해도 될까?
그게 있잖아...
에릭이랑 나... 아기가 생겼어!


조각들이 놓인 여백 사이로 마음이 먼저 건너온 순간이었다.
그 문장들은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 언어로, 가장 큰 기쁨을 전하고 있었다.


입안에서 겨우 떠올린 슬로베니아어 단어 하나를
기쁨을 가득히 채워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Čestitam!"

축하해!


그 시간만큼은 단 하나의 말로 충분했다.


"¡Felicitaciones...?"


스페인어로 축하한다는 말을 그녀가 알려줬으나,

아쉽게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입에 잘 붙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 투박한 발음에 덩달아 웃었고,

우리는 그 말 하나로 한참을 깔깔댔다.
어색한 억양과 다른 언어들이 뒤섞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언어로,

함께 채워가는 이곳의 언어로 다정함을 배웠다.


그날의 쪽지는 내게 오래 남았다.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나의 언어를 담아 그 기쁨의 문장을 건넸을까.


나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그녀의 다정한 진심이 오래도록 고맙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결국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한 연습이라는 걸
그녀의 웃음 속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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