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말의 용기

부끄러움 너머의 말하기

by 슬로하라


슬로베니아어 수업을 따라가며 가장 먼저 익히게 된 말들은
‘안다’보다 ‘모른다’에 가깝다.



Ne razumem.


슬로베니아어 기초 수업을 다닌 지도 어느새 1년이 넘었다.

A1 과정을 어렵사리 마쳤고,

A2 수업도 일단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무료라서, 그리고 혹시나 조금 나아질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단계적으로 이론을 차근차근 배우기에는 수업 특성상 여전히 한계가 많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두 과정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문법은 더 빠르게 지나가고,

활용은 더 복잡해지고,

규칙은 있는데 외우기엔 여전히 벅차고 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과정을 반복해서 듣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수업에 참여하는 이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서로 언어적 기반을 어느 정도 공유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설명만으로도 이해가 되고,

대화의 속도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그러나 나는,

그들 사이에서 늘 한 박자 뒤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원을 이루고 있다면,

나는 그 원의 바깥에서 조금씩 겉도는 느낌.


활동이 시작되면 빈칸을 제시간에 다 채우지 못해 헤매고,

듣기 지문은 흐르는 속도에 금세 놓쳐 버린다.

수업 페이퍼를 미리 받은 날엔,

모르는 단어라도 찾아두어야 그나마 겨우 따라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럴 때마다 입 근처에서 맴돌지만

주저하며 막상 내밀기 부끄러운 말들이 생겼다.


Ne razumem. [네 라주멤]

이해하지 못해요.


Ne vem. [네 벰]

몰라요.


Težko. [테쥐코]

어려워요.


Še enkrat, prosim. [셰 엔크라트 프로심]

한 번 더요. (한 번 더 들려주세요. 말해 주세요.)


Imam vprašanje. [이맘 우프라샨예]

질문 있어요.


이 말들이 내 슬로베니아어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여전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말들 또한 내가 여기서 버티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듣는 이들 중에서도,

나처럼 여전히 어렵고, 이해되지 않아

비슷한 말들을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른다는 말은 늘 부끄럽지만,

이방인의 언어를 배워 가는 데에는

'모른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 나라의 언어로

'모른다'를 말할 수 있는 일.

어쩌면 그것이,

가장 솔직한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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