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선곡의 장
우리나라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입장벽을 가장 낮춰줄 수 있는 축제가 있다.
매년 4월 1일부터 20여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되는 교향악축제.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에서부터, 클래식 매니아들만 홍대 밴드처럼 꽁꽁 숨겨놓고 나만 알고 싶은 잘 연주되지 않는 곡, 세계 초연되는 곡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매일매일 저녁 8시에 펼쳐진다.
국내 지방 교향악단들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흔치 않은데, 이 교향악축제가 매년 한번의 기회를 준다. 물론 작년에 보였던 몇몇 오케스트라가 안 보인다는 점에서 모든 오케스트라들이 매년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어떤 기준에 의해서 참여 여부를 결정되는 것 같다.
시간과 돈이 허락한다면, 취향에 따른 가고 싶은 연주와 우선순위
경기필=홍콩필>서울=대구=전주=인천>광주>대전
첼로 사랑 : 광주시향(생상-주연선)), 경기필(드보르작-강승민)
피아노 사랑 : 코리안심포니(리스트-김다솔), 강남심포니(슈만-김정원)), 원주시향(라흐마니노프-선우예권), 부천필(프로코피에프-손민수)
총평 : 사실 난 고전시대 음악을 많이 듣고 싶은데, 왜 교향곡은 1도 없고 겨우 오보에 협주곡이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달랑 두개 뿐인지 너무 아쉽다. 두 곡도 명곡이고 좋아하긴 하지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은 자취를 감추었고, 교향악축제에서 베토벤과 모짜르트를 만나는건 왜 힘든 일인지 더더욱 모르겠다.
너무 낭만 후기와 러시아에만 치중한것 아닌지... 뭐 그래도, 교향악'축제'이니만큼 좀 가벼운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춘천시향과 경기필, 전주시향, 충남도립이 클래식 입문자들에게는 편한 그나마 좀 편한 선곡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강남심포니와 수원시향, 창원시향은 그에 반해 굉장히 칼을 열심히 갈(아서 선곡에 걸맞는 연주력을 보여줬으면 하는데)고 있나 보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라인업을 보고 느낀 점을 얘기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언급 순서는 관심도와 무관)
홍콩필 : 지난 스무해가 넘는 교향악축제와 비교했을 때 이번 교향악축제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점은, 국내 교향악단만이 아닌 해외 오케스트라가 하나 참여했다는 점!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아시아 내에서는 꽤 수준 높고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라고 한다.
특히 지휘자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의 이력이 특이한데, 세계 최고 명문 오케스트라라고 알려져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서 연주활동을 하다 지휘로 커리어를 돌리고 홍콩에서 지휘한지는 올해가 6번째 해라고 하니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교감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이번 시즌 중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연주가 될 것 같다. 이런 축제에 해외 오케스트라가 참여할 경우 자국 작곡가의 작품으로 Nationality를 담은 음악을 보여주는게 음악단의 관습이라고 할 만한 것인데, 펑 람의 정수라는 작품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서울시향 : 올해가 우리나라의 훌륭한 작곡가 윤이상의 100주년인 만큼, 사실 그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하나라도 있길 바랬는데, 그 바램이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서곡으로 나타났다. 서울시향은 이미 올해 다양한 윤이상의 곡들을 연주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특히 3월 31일에 개막하여 4월 9일에 폐막하는 통영 국제 음악제에서는 그의 첼로 협주곡과 클라리넷 협주곡도 연주한다. 그 외에도 윤이상의 앙상블이나 독주형태의 연주는 올해 내내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서울시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차이콥스키 5번을 올해 2번째로 연주하는데, 1월 엘리아후 인발의 지휘로 들려주었던 연주는 내가 들었던 해석 중 가장 멋진 연주였기에, 수석객원지휘자인 티에리 피셔의 해석이 어떨지도 기대가 된다. 오히려, 얼마전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크리스텔 리가 들려주는 드보르작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국내 음악 팬들에게 가장 낯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한번도 안 들어본 곡이기도 하지만...
광주시향 : 김홍재라는 지휘자는 일본에서 자라고 배웠는데, 세계 클래식계에서 아시아의 존재를 각인시킨 작곡가 윤이상과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에게 배운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 오케스트라들은 객원으로 또는 상임으로 지휘를 종종 했었고, 작년 12월에 새로 정착한 광주시향과 합창교향곡을 들려줬던 그가 2월에 80년 광주를 기리는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를 지휘했다.
정말 듣고 싶었던 곡이고, 우리나라에는 더 알려졌으면 하는 작곡가이자 그의 대표작인데, 이 연주에 대한 기사가 하나 없는 것에 대해 나는 화가 난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는 베토벤 6번 전원교향곡으로부터 시작된 표제적 교향곡을 대표적으로 잇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편성되어 있다. 또한 협연으로는 한두달 전까지만해도 서울시향의 첼로군단을 이끄는 수석이었던 (아쉬워요 ㅠㅠ) 첼리스트 주연선의 생상 첼로 협주곡을 들을 수 있다. 오케스트라로부터 나오자마자 서는 첫번째 무대가 아닐까?
전주시향 : 최희준이 부임한 뒤로 '오늘만 사는 전주시향'이라는 재밌는 별명을 가졌다고 한다. 다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도 임박하기 전까지는 알리지 않는다고 하고, 막상 당일이 되면 정말 화끈하고 강렬한 연주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작년 교향악축제때 보여줬던 쇼스타코비치 5번을 통해 그 별명을 느낄 수 있었다. 교향악축제때마다 러시아 프로그램을 가져온다는 인상 또한 받을 수 있겠다.
라흐마니노프 2번 교향곡을 연주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 곡을 예전에 글리에르 호른 협주곡과 같은 날 2부의 메인프로그램으로 연주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과한 프로그램이었지...), 라흐마니노프가 시간내에 음표를 가장 많이 그려넣은 곡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스케일이 크고 감성이 과다하긴 하지만 그 특유의 반음계나 로맨틱한 멜로디를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대구시향 & 부천필하모닉 : 카라얀의 마지막 제자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는 줄리안 코바체프가 대구시향의 지휘자로 임명되고 대구시향을 위한 전용콘서트홀을 쓰게된 후로, 대구시향의 연주력이 급격하게 상승하여 대구의 클래식 팬들이 굉장히 행복해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또한 코바체프와 대구시향은 올해 관현악단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레파토리들을 기획하여 매달 놀라운 연주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 맛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에서도 멋진 목소리를 들려준 소프라노 이명주의 독창도 보고 싶다.
또한 박영민이 이끄는 부천필하모닉 역시 바그너와 프로코피에프,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두 편 등 굉장히 무거운 프로그램 선정으로 독일 후기낭만시대의 작곡가들에 대한 조명을 하는데,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에 대해서는 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해석의 비교를 하며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경기필하모닉 : 서울시향이 내흉을 겪으면서 연주력과 운영적인 면에서 주춤하는 사이,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국내 경력을 시작했던 성시연 지휘자가 올해로 4년째 함께하는 경기필이 보여주는 브람스 4번. 성시연은 올해 초 브람스와 말러, 브루크너의 명곡들을 이번 해의 프로그램으로 발표한 바 있다. 교향악축제도 그것의 연장으로서 준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본 연주 15일 전인 3월 31일에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독일 레퀴엠을 들려주기에, 브람스의 명작들을 봄부터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1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인 첼리스트 강승민도 작년에 로코코 변주곡을 멋지게 연주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번에는 첼로 협주곡의 황제라고 불리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첼로의 입장으로서는 정말 우선순위로 삼을 법하다.
인천시향 : 오슬로 필하모닉의 종신 호른 수석 호르니스트 김홍박이 내한하여 들려주는 글리에르 호른 협주곡. 개인적으로 14년 3월에 활동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해봤던 곡인데 멜로디가 정말 아름답고 굉장히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한 곡이다. 사실 뭐 어떤 호른 협주곡이 안 어렵겠냐마는, 곡 자체가 들을 기회도 자주 없고 이렇게 좋은 가격과 기회로 김홍박이 연주하는 글리에르 호른 협주곡은 10년에 한번 오면 많이 오는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있었던 김홍박의 리사이틀에서 연주한 드페예의 알파)
또한 인천시향은 이번 연주를 통해 브루크너 교향곡을 처음 연주한다고 하는데, 브루크너 교향곡은 현장에서 만나지 않으면 빠져들기 힘든 곡이고,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 정치용과 인천시향에게 거는 기대가 굉장히 큰 프로그램들이라, 정말 강력하게 추천한다.
원주시향 & 제주도립교향악단 : 선우예권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라는 것만으로 이 연주에 대한 설명은 끝. 라흐마니노프를 닮았을 것 같은 굉장히 큰 손으로 2만개의 음표를 아름답게 쳐내는 모습은 역시, 김홍박의 글리에르 호른 협주곡과 같이, 교향악축제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고 기회다. 그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스승의 스승인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콘트라베이스 (더블베이스)를 솔로 악기로 특히 협연의 주인공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정말정말 흔치 않다. 세계적인 베이스 콩쿠르 우승자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재즈의 세계에 발을 들여서 베이스로 보여줄 수 있는 외연을 강하게 확장하고 있는 성민제가 제주도향과 쿠세비츠키의 콘트라베이스 협주곡을 연주한다. 작곡가 쿠세비츠키는 20세기 초에 명문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명지휘자이기도 했고, 그 자신이 훌륭한 베이시스트이기도 했다. 연주할만한 베이스 레파토리가 없다고 이 협주곡을 작곡했다는 일화가 있다. 바이올린, 첼로나 피아노 협주곡이 지겨운 사람들은 색다르게 베이스 협주곡을 만날 수 있을 듯.
두 오케스트라는 2부에 공통적으로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