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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Jul 19. 2016

[공연 후기] 160716 김홍박 호른 리사이틀

호른을 마주했던 경험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서 첫 연주 때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라는 음악 동화를 했을때다.

이 곡에서는 동화 내의 캐릭터를 악기의 특성에 맞게 표현하는데, 호른 트리오의 저음 화음을 사용해서 음흉하고 으르렁거리는 이미지를 만들어서 늑대를 표현한다.

둘째는 말러 교향곡 1번의 4악장 피날레에서 8대의 호른 단원들이 연주 중에 일어나서 힘차고 밝게 빛나는 승리의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 때문에 볼 때나 들을 때마다 항상 속으로 나도 호른을 배워 멋지게 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 호른이란 악기를 보통 현악기나 목관악기처럼 독주악기로 하여 1시간 반, 두시간 가량의 리사이틀을 한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함이 먼저 느껴졌다. 현악기는 물론이고 목관악기 리허설은 많이 접했는데 호른이라니... 무엇보다도, 호른이란 악기를 독주악기로 사용한 레파토리가 있을까,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작곡가들이 그 곡들을 썼을까가 가장 첫번째로 궁금했다. 내가 아는 곡은 모짜르트 협주곡 몇 개정도...?

하지만 이 역시 연주장에서 들어본 적은 전혀 없기에, '호른 리사이틀' 이라는 조합은 여전히 생소했다.

오늘 연주할 아티스트인 김홍박 호르니스트는 예전 서울시향 부수석을 맡았다가 해외 여러 오케스트라들을 거쳐서 바실리 페트렌코가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 호른으로, 그리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수석으로 활동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더 궁금해졌다. 어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시길래 북유럽의 음악 1번가에서 종신 수석 자리까지 받으실 수 있었을지...



연주장에 도착해서 프로그램을 받아서 열어보니 웬걸, 일곱 명의 작곡가가 모두 프랑스 사람이며 소나타, 협주곡 등은 없고 모두가 독주용 소품이었다.  아는 이름은 기껏해야 생상과 구노, 뿔랑 정도... 호른이라는 악기가 본래 이름이 'French Horn' 이라는 점을 살려, 레파토리도 전부 프랑스 음악을 선곡했다고 한다.

공연순서와 프로그램에 약간 변경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E. Chabrier (1841-1894, 샤브리에) : Larghetto for Horn and Piano

C. Saint-Saens (1835-1921, 생상) : Romance for Horn and Piano in E Major

J. M. Defaye (1932-, 드페예) : Alpha for Horn and Piano

-Intermission-

C. Gounod (1818-1893, 구노) : No. 1, 4 from Six Melodies for Horn and Piano

F. Poulenc (1899-1963, 뿔랑) : Elegie for Horn and Piano

H. Tomasi (1901-1971, 토마시) : Corsican Song for Horn and Piano

J. Francaix (1912-1997, 프랑세) : Divertimento for Horn and Piano


가장 듣기 편했던 곡은 역시 샤브리에, 생상 구노였다. 시대가 앞선 이유에선지, 또는 그의 오페라의 여러 아리아들이나 선율들이 익숙한 이유인지 느리면서도 듣기 좋은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이게 바로 김홍박이 노래하고 싶은, 호른으로 노래하고 싶은 이야기라는걸 들려주는 것 같았다.


내가 오늘 연주 전체에서 제일 관심이 많이 갔던 곡들은 특이하게도 모두 20세기 중후반에 쓰인 드페예, 뿔랑, 그리고 프랑세의 곡들이었다.

드페예가 특이했는데, 피아노에서 반주에 불협음 진행을 많이 넣어서 마치 공포영화의 배경음악처럼 기괴한 효과가 났는데, 거기에 호른이 더해져서 정말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꼈다. 최근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리게티라는 현대음악 작곡가의 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었다. 드페예의 곡을 들으며 이 감독의 영화가 생각이 나는게, 드페예와 리게티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건 아니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초반부에는 으스스하게 느껴졌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왠지 모르게 피아노와의 주고 받는 음악이 기계음 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곡에 대해 기말고사 시험용으로 작곡했다고 하는데, 그 수업은 왠지 음악의 배경적인 역할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을까?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던!! 뿔랑의 경우에는 프로그램 노트가 굉장히 곡의 전체적인 진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작품의 이름을 엘레지, 슬픈 노래라고 붙였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한 명 비르투오조 데니스 브레인이라는 호르니스트에게 헌정되었다고 한 걸 보면 헌정과 함께 추모의 뜻으로 쓴 곡은 아니었을까? 중간에 행진곡 풍의 음악이 많이 나오는 것은 데니스 브레인이 2차대전 중에 군악대에서 활약한 것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재미있던 것이 피아노 반주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음악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라는 곡에 쓰인 부분이 떠올랐다. 참혹한 전쟁과 그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죽음의 무도와 행진곡을 겹쳐서 사용한 건 아니었는지... 근데 그 이후에는 이후에는 어둡게 어둡게 변하며 듣는 내내 너무 외로웠다.

신기한게, 정말 호른에서는 나올거라고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가 나오는게... 그렇게 어둡고 느리게, 작아지면서 소리가 사라질때까지 홀 안의 모든 소리가 멈춘 뒤에 호른이 입에서 떨어지고 한숨소리가 들리고서야 박수가 터져나왔다.

언젠가 지금은 세상을 떠난 니콜라스 아르농쿠르라는 지휘자의 리허설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리허설 중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움은 사라져가는 것의 끝자락에서 탄생한다"고. 그 장면이 김홍박의 호른의 벨에서 나타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 중에 가장 유쾌하고 웃겼던 장면이 마지막 곡 프랑세의 디베르티멘토를 연주하기 바로 직전에 연출됐다. 김홍박 선생님이 호흡을 가다듬는지, 뒤돌아 있었는데 사인을 오해한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둘이 오케이를 하기 전에 반주를 들어가버려서 (최소한 그렇게 보인 것 같았다) 김홍박 선생님이 당황을 했었는데, 당황하며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너무나 크게 보여서 순간적으로 관객들 사이엔 작지만 선명한 웃음이 터져나왔었다. 사실 처음에 두리번거리는 모습 때문에 조마조마했는데 역시 금관황제라는 별명 답게 멋지게 아무런 내색 없이 연주를 이어가셨다.

"설마, 이 곡이 디베르티멘토라고 저 장면을 의도한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감상하기 시작한 마지막 곡은, 그 이름에 맞게 그리고 프로그램 설명에 쓰인대로 리듬이나 악상이 익살스러웠고 재미있었다. 피아노와 어우러져서 흥겨운 리듬에 맞게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흔드는 김홍박 선생님을 멀리서 보는데 정말 귀여워보이셨고, 그렇게 고개를 움직이는데도 음색이나 리듬이 전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연주를 하는데서 한번 더 감탄했다.


가득차있던 객석에서는 당연히 엄청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커튼 콜이 이어지자 짧은 멘트와 함께 앵콜 곡을 두개 더 꺼내 주셨다. 첫번째 앵콜곡이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는데, 호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소리는 오늘 이자리에서 모두 다 들은게 아닌가 싶었다. 저음 현악기에서 들을수 있는 두꺼운 저음에서부터 날카롭게 찌르는 고음까지,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숨과 제스처로 이루어지는 음악까지, 마지막 호흡이 끝난 순간에서야 새삼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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