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점심 <10>] 육즙과 지방 풍미 한가득
‘타이베이 점심’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하니 아는 대만 사람이 음식을 하나 추천해 줍니다. 거위고기덮밥입니다. 거위고기가 생소하긴 하지요. 닭이나 오리와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한국에서는 거위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회사 주변에 거위고기식당이 의외로 많습니다. 대만에서는 거위요리가 낯선 음식이 아닙니다. 대만 사람들, 대만 사람뿐만이 아니죠. 중화권에서 거위요리는 꽤 흔한 요리입니다. 물론 베이징카오야(北京烤鴨)라는 오리요리가 워낙 명성이 높아서 그렇지 거위요리도 즐기는 음식입니다.
거위요리전문점으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궁금증은 점심의 활력소입니다. 동네 자그마한 식당이지만 이름이 재밌네요. ‘非嚐鵝樂’ ‘페이창어러’로 발음합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거위를 맛보는 특별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네요.
실은 이 간판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장난입니다. 중국어로 ‘非常快樂’란 말이 있는데요. ‘페이창콰이러’로 발음하고 ‘아주 즐겁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죠. 여기서 常을 발음이 같은 嚐으로 바꾸고 快 자리에 鵝를 써서 발음은 비슷하지만 뜻은 거위요리를 맛보니 좋다는 식으로 의미를 바꾼 겁니다.
이렇게 중국어에서는, 대만에서는 한 두 단어를 비슷한 발음으로 바꿔서 재치있게 의미를 표현하는 식당 이름 등이 꽤 있는데요. 닭튀김을 파는 가게 중에 ‘雞不可失’(지부커스)라는 이름이 종종 눈에 띕니다. 이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機不可失’(지부커스)에서 기회 機자를 발음이 같은 닭 雞자로 바꾼 겁니다. ‘닭고기 놓치지 말고 드세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길 가다 보이면 재밌어서 하나 정도 먹게 만들지 않을까요.
하여간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자그마한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열었습니다. 음식종류가 많지만 처음 접하기에 기본으로 주문했습니다. 거위고기덮밥을요.
사실 대만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1도 없지만 이날은 왠걸요. 거위 특유의 냄새나 기름이 너무 진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네요. 안전판으로 청경채두부국과 오이무침을 함께 시켰습니다. 고기를 찍어먹을 매콤한 소스와 짠지무가 있길래 그것도 조금 떠왔습니다.
워낙 시스템화 계량화된 깔끔한 식당이다 보니 금방 나오네요. 모양이 그럴 듯합니다. 군침이 도는 걸 보니 우선 합격입니다. 밥위에 편으오 썰어있는 거위고기가 널찍이 덮혀 있습니다. 한쪽에는 죽순이 놓여 있고요.
거위고기 조리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염지하고 삶는 방법과 훈제하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이날 제가 주문한 것은 염지하고 삶는 형태였어요. 삶았는데도 빛깔이 영롱하고 기름이 먹음직스럽게 좔좔 흘러 신기했습니다. 겉보기에 육질과 기름층이 알맞게 붙어 있는 것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하나 집어 드니 육질이 탱탱하게 살아있어요. 우선 본연의 맛이 어떨지 궁금해서 양념을 찍지 않고 고기만 먹었습니다. 가위 향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누린내 이런 것은 전혀 없고 향긋한 기름내가 입안에 퍼지네요. 글쎄요 아마 고기 자체 향이라기 보다는 참기름을 바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평소 음식을 먹을 때 매번 하는 말이지만 식감을 중요시하는지라 씹는 맛을 볼 차례입니다. 너무 연해서 흐물흐물하는 느낌을 즐기지 않는데 거위고기는 다행히 쫀득쫀득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식감입니다. 그렇다고 질긴 것이 아니고요. 편으로 썰려 있는 고기결 대로 입안에서 씹어 먹었습니다.
우리나라 보쌈을 보면 삶은 고기는 사실 기름기가 쫙 빠지잖아요. 사실 건강하게 고기를 먹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름기가 너무 빠지면 퍽퍽하니 맛은 떨어지지요. 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는 와이프가 이렇게 조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고기를 먹되 건강하게 먹으라는 거지요. 전 아쉽기만 한 조리법이고요.
그런데 이 거위고기는 물에 데치고 삶았지만 기름기가 육즙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조리법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 맛이 좋아 만족스럽습니다. 씹을 때마다 입안에 고기와 기름층에서 나오는 기름향이 진하게 흘러 나옵니다. 그렇다고 느끼한 게 아니라 향긋해요. 그리고 훈제향도 살짝이 나는 것도 더욱 좋았는데 저만의 착각일 수도요.
간도 적당히 배어 있습니다. 약간의 짭쪼름함이 너무 느끼할 수도 있는 기름향을 적절히 잡아주네요.
편으로 돼 있으니 두번째 먹을 때는 밥을 감싸서 떠 먹었습니다. 향긋함이 더 한데요?! 밥알도 초밥의 밥처럼 적당히 잘 지어 있네요. 게다가 보아하니 밥에 거위기름을 더한듯해요. 밥에 고소한 기름이 들어가 있어 윤기가 좋더라고요.
세번째, 네번째도 그냥 거위고기로 밥을 싸서 먹었습니다. 다른 양념이나 반찬이 필요 없네요. 다섯 번 정도가 되서야 양념을 찍어 먹을 생각이 듭니다. 매콤한 고추기름양념인데 당연히 거위기름과 잘 어울립니다. 밥위의 죽순과 오이무침도 그제서야 손이 갑니다. 적당히 익어 있어 씹는 맛이 좋네요.
제가 밥을 빨리 먹는 편입니다. 한끼 후딱‘해치우죠.’ 그런데 이날은 오랜만에 밥을 음미하며 잘 먹었습니다. 향긋해서 천천히 먹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