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점심 <9>] 대만 특유 ‘겉바속촉’의 정석
대만 사람들이 점심 한 끼 해결할 때 파이구판(排骨飯), 즉 돼지갈비덮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육면, 루러우판과 함께 3대 점심 메뉴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로 치면 김치찌개의 반열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일 것 같습니다.
대만의 대표 포털 사이트인 야후(yahoo)에서 검색해보면 돼지갈비덮밥은 대만의 대표 서민음식, 국민음식이라 칭해지곤 합니다. 대만 국적항공사인 중화항공에서는 기내식으로 이 돼지갈비덮밥을 먹을 수 있기도 합니다. ‘추억의 대만식 돼지갈비덮밥, 떠나기 전 가장 익숙한 대만의 맛을 다시 한번 음미하세요’라고 소개돼 있지요.
사실 대만 사람들이 점심 때 먹는 음식 종류가 워낙 많아서 돼지갈비덮밥만 서민음식, 국민음식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 터이나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보면 돼지갈비덮밥집이 넘쳐나긴 합니다. 어느 지역이나 이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습니다.
회사 근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이 메뉴는 샐러리맨의 점심시간이 어느 시간보다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아는지 사실상 패스트푸드 햄버거 마냥 신속하게 나옵니다. 주문하고 5~10분 안에 나오는 것 같아요.
회사 근처 걸어서 10분 이내에 돼지갈비덮밥을 파는 체인점이 있습니다. 유명한 집이나 체인점 또한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타이베이에만 君悅排骨, 梁社漢排骨, 東一排骨, 華南排骨, 一級排骨, 金園排骨, 金滿園, 金軒, 黑殿飯店, 金冠排骨, 蔡家排骨, 厚道飲食店 등 많지요. 오늘 가는 집은 쥔웨파이구(君悅排骨) 식당입니다. 1988년 생겼으니 40년 가까이 되어가는 전통 있는 체인점입니다.
사무실 앞 대로변을 직선으로 건너면 군인가족마을공원이 있습니다. 아직 2월 겨울이지만 이미 대만엔 봄이 왔습니다. 특히나 오늘은 20도를 훌쩍 넘어 외투와 목도리를 벗어재끼고 걸어갑니다. 사계절 내내 푸르른 대만 가로수가 이날은 특히나 진녹색인 것은 기분 탓이겠지요.
식당이 공원 옆에 바로 있습니다. 노란색 간판이 눈에 확 띄네요. 주저하지 않고 오늘의 메뉴 돼지갈비덮밥을 주문했습니다. 들어와서 자리에 앉아있는 내내 돼지갈비를 자르는 칼날의 둔탁하고 묵중한 소리가 연이어 들립니다.
5분이 안됐을 것 같은데 식당 아주머니가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신나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웃으시네요. “식당 안이 조금 어둡죠? 밝으면 더 예쁘게 나올텐데” 외국인이 서민 음식 먹으러 와서 음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대만 사람 특유의 그 친절함이 묻어나는 말을 건넵니다.
이 식당은 덮밥을 포장으로도 판매합니다. 그럴 때면 밥 위에 돼지갈비가 올라가고 야채를 한쪽에 함께 넣어주죠. 식당에서 먹을 때면 돼지갈비를 별도 접시에 절인 오이와 함께 내어 옵니다. 밥 위에는 3가지 야채를 얹어 주고요.
돼지갈비 튀김옷이 짙은 갈색으로 먹음직스럽습니다. 향 또한 튀김 특유의 고소함이 짙게 풍기네요. 먹기 전부터 일단 시각과 후각을 통해 맛있겠다 싶습니다. 거뭇거뭇한 것들이 점점이 있는데 이는 후추라네요.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튀김이 바삭하면서도 쫄깃합니다. 일반 탕수육이 아니라 찹쌀 탕수육을 먹을 때의 그 쫄깃함과 바삭거림입니다. 한국인들이 대만 야시장에 가면 많이 사먹는 지파이(닭고기 튀김)와 식감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요리에 문외한이지만 제대로 튀겼네요.
튀김옷 안의 돼지갈비 고기는 매우 부드럽습니다. 꽤 두툼한데도 질기지 않습니다. 육즙이 짙게 입안에 퍼집니다. 양념에 한 번 잰 뒤 튀겼는지 입안에 달고 짠 육즙이 가득해집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아주 만족스럽네요. 익힘 또한 적당합니다.
손바닥 크기의 돼지갈비가 4조각으로 썰어져 나왔는데 먹기 편합니다. 한쪽 부위에는 뼈가 있는데 아쉬워서 뼈 사이사이에 있는 고기와 튀김옷까지 세세하게 발라 먹었습니다. 세 번째 조각을 먹을 때는 오이절임을 함께 먹습니다. 느끼함을 딱 잡아주네요. 맛있다 보니 덮밥이 아니라 돼지갈비만 추가 주문해서 더 먹을까 순간 고민했습니다.
밥과 반찬을 물론 함께 먹습니다. 돼지갈비 한 잎에 양배추와 미역무침,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네요. 식탁위에 놓여져 있는 양념 통에서 고추양념을 밥과 야채에 넣고 비벼 먹으니 매콤하니 더 맛납니다.
돼지갈비덮밥이 서민음식이라 칭해지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은 어려운 시기에 그 시기 영양분을 책임져 준 게 루러우판과 함께 이 돼지갈비덮밥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좋은 고기가 아니었을 테지만 그래도 고기를 튀겨 먹는 것이니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었을 테지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 돼지갈비덮밥은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유래한 돼지갈비튀김에 대만식 조리방식이 더해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네요. 이 음식을 먹다보면 일본 돈가츠가 생각났는데 그 연유가 맞아떨어집니다. 실제로 이 음식이 처음 생겨난 곳이 일제시대 때 제일 번화했던 타이베이의 시먼딩 지역이라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시먼딩쪽에는 지금도 유명한 돼지갈비덮밥집들이 많습니다.
물론 일본식 돈가츠와는 차이점이 있기에 분명 다른 음식이고요. 일본 돈가츠는 고기를 양념하진 않지요? 생고기를 그대로 튀기는 형태인데 돼지갈비를 양념한 뒤 튀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튀김옷도 일본 돈가츠는 바삭함을 극대화하는데 대만 돼지갈비덮밥은 쫄깃함을 추가하는 형태네요.
돼지갈비덮밥과 함께 나오는 죽순탕도 맛깔스럽습니다. 죽순과 미역이 들어가 있는데 오뎅탕 맛입니다. 추가로 주문한 두부튀김도 일품이네요. 제가 워낙 두부를 좋아해서 두부요리가 있으면 시키곤 합니다.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계란두부인양 야들야들, 포실포실합니다.
점심 후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습니다. 올해 들어 아아를 마신 건 처음인 것 같네요. 날씨가 좋고 패스트푸드만큼 빠른 식사 덕에 시간이 남아 군인가족공원 벤치에 앉아 망중한도 즐겼습니다.
망중한 중 지진도 왔습니다. 여기가 대만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하네요.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오늘도 점심을 즐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