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어.(2016.3.31)

베이징 생활(2016-2019)

by KHGXING

순간 멍했다. 지선이가 달뜬 목소리로 “집에 가고 싶어.”라 중얼거린다. 몸살감기로 쉬이 잠들지 못하더니 겨우 설핏 잠들었다가 꿈결에 내뱉은 말이다.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흘리는 땀이나 닦아주고 팔다리 주물러 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들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왜 그리 당황스러웠을까.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심 그럴 것 같다는 짐작이 확인됐기 때문인 듯싶기도 하다. 나도 맘 같아서는 집에 가고 싶었으니.


중국 베이징 생활을 시작한지 3월말로 한 달 반 됐다. 그간 호텔 생활 2주에 아이 처음으로 학교에 보내며 적응시키고, 아파트 구하고 이사하고, 집 정리하고, 청소하고 하면서 방전된 모양이다. 게다가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생활하기가 녹록치 않았을 터이다. 유학도 다녀왔고 외국계 기관에 근무했기에 외국 생활이나 문화에 두려움이 없을 사람이지만 중국이란 공간에서는 영어는 그다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교 졸업하고 진정한 전업주부를 위해 직장을 처음 내려놓았으니 그러한 변화에도 적응기간이 필요했으리라.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보니 그 또한 신경이 곤두섰을 법도 하다. 영어를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한국학교도 아니고 국제학교에 입학하다 보니 적응을 잘할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선이와 난 한국에서는 ‘영어는 나중에 천천히 가르치면 되지, 어릴 때부터 왜 애한테 부담을 줘, 우리말이 제일 중요해’라는 생각에 영어를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심 민선이가 일단 가르치면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학교라는 정규 과정에 입학했는데 영어로만 수업을 받을 아이를 생각하니 엄마로서 많이 걱정됐나 보다. 아파트 단지내 한국 아이들과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부담감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을 일도 부담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실수도 아니었을 말에도 괜히 집에 와서 후회하곤 한다. 생활이 조심스러운 게다. 이 모든 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생활에는 워낙 적극적이고 무언가 배우는 데 욕심도 많은 사람인데 생각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나지 않으니 조급증도 몸살감기에 한몫했을 법하다. 이사 온 지 2주 만에 중국어 학원도 척척 알아서 등록하길래 ‘적응잘하네’ 싶었다. 그런데 공부할 시간이 없단다. 공부에서는 모범생 스타일답게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은 철저히 복습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만족해한다. 그런데 복습할 시간이 없어 따라가질 못한다 한다. 복.습.할.시.간.이.없.어.서.


아이 아침에 학교 보내고 4시 넘어서 오는데 복습할 시간이 없다니. 도대체 무얼 하는 거야. 물론 마음속에서만 웅얼거린 소리였고 표정은 ‘그래 다 이해되지’라는 미소를 머금었지만. 하지만 쉬이 이해된다. 이 사람 생활태도를 알기에. 아침에 아마 2시간 정도는 청소 했을 것이다. 중국 미세먼지야 워낙 유명하니 매 시간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두세 번 정도는 쓸고 닦았을 것이다. “그렇게 닦는데도 검은 먼지가 나온다”면서, “한국 먼지와는 다르다”고 강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베이징에 도착해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공기오염에 안도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공기가 나쁘지 않다는 건 ‘생각보다’다. 오기 전에 농도측정불가로 나온다는 뉴스를 들으며 어쩌나 싶었는데 그러한 상황까진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생활을 하다 보면 엄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모습에 외국인들도 심정적으로 다소나마 무장해제 되는 것도 있는 듯하다.


게다가 공기오염 기준을 표현하는 단어의 작은 차이가 의외로 공기오염을 대하는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일종의 착시효과다. 중국에서의 공기질량지수(AQI)와 우리나라의 통합대기지수를 비교해 보면 표현상에 눈에 띄는 차이를 알게 된다.


한중 양국의 대기질 표현 비교.jpg


0~50 사이의 표현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단계부터 차이가 난다. 우리는 보통이라고 표현하지만 중국은 양호라 표현한다. 그리고 101부터 우리는 바로 나쁨이라고 적시하지만 중국은 이를 ‘가벼운’, ‘중간’, ‘높은’ 등으로 차등을 두었다. 듣기에 따라서 오염이지만 ‘가벼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면 심리적으로 경각심이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담배 이름에 ‘라이트(Light)', '울트라 라이트(Ultra light)', '순한(Mild)'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을 변경한 것과 같은 배경이다. 게다가 초미세먼지(PM2.5)가 100이상이면 우리나라는 무조건 매우 나쁨으로 표현하지만 중국은 가벼운 오염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하긴 서구에서는 300이상이면 ’Hazardous‘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느껴지는 강도가 확실히 다르다.)


하여간 한국보다 중국에서 훨씬 빈번하게 공기질을 체크하곤 한다. 아침마다, 외출할 때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다시 지선이 얘기로 돌아오자면 나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웬만하면 털털하게 편하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참다 참다 한마디 던진다. 자기 체력은 고려하면서 무얼 해도 하라고. 아니면 정 힘들면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부르던지. 돌아오는 답은 자기 살림을 남한테 못맡기겠단다. 내 참.


이번에 심하게 앓다 보니 자신의 약하디 약한 기초 체력에 ‘심각한’ 반성을 한 듯하다. 얼추 몸 추스리고 나서 진지하게 나한테 물어본다. 어떻게 하면 체력을 기를 수 있어? 나 또한 진지하게 대답한다. 우선 근육을 길러야지. 운동으로도 길러야 하고, 먹는 것도 채소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단백질을 보충해야해. 고기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니야. 나로선 기회였다. 나 고기 먹지 못하게 하려고 집에서는 언제나 푸성귀였다. 살찐다고 말이다. 그러니 지선이의 이런 마음의 변화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날 집 근처 궈수하오 슈퍼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 왔다. 먹고 싶지 않지만 당신을 위해 같이 먹어준다는 심정으로. 하여간 일주일 여만에 겨우 이제는 훌훌 털고 일어났다.


지선! 제발 중국 생활 즐기라고!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이잖아!

(어쩌면 나에게 하는 소리인 듯싶기도 하지만.)


**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나 베이징이란 공간에서 보낸 3년(2016-2019)에 대한 기록이다. 일상과 관찰, 위안의 느낌을 나누려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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