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된통 앓고 나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봤나 보다. 감기몸살도 감기몸살이지만 마음이 많이 우울했단다.
날씨 탓이려니 했다. 처음 왔을 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날씨에 안도하다가 미세먼지 측정 불가 날씨가 닥치니 우울해질 법도 했다. 나야 회사 다니기 바쁘고 둔감하고, ‘중국은 이럴 수 있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지선이는 그러지 못하니 우울했나보다 했다.
그런데 날씨보다는 음식,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치였단다.
이 사람은 토종 입맛을 가진 전형적인 한국인이다. 그런데 입맛에 맞는 김치를 못 찾고, 한국에서 맛보던 시원하면서도 식감도 있는 아삭한 김치를 맛볼 수 없다는 것에 상당히 우울했단다.
‘베이징에서 무슨 김치를 못 먹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김치가 다 같은 김치가 아니다. 각기 자기만의 김치가 있다. 최소한 자기가 길들여져 있는 ‘엄마표 김치맛’이 있는 법이다. 이 사람도 결혼한 뒤 벌써 12년 동안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김치 맛에 익숙해져 버렸다. 특히나 김치 맛에 민감한 이 사람은 어머니 김치를 좋아했다. “난 이제 어머니 김치에 익숙해져 있어”
여기 오던 2월 13일 전날 어머니가 담궈주신 김치 한통을 우체국 택배로 미리 중국 호텔로 보내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호텔에 있는 2주 동안은 회사 동료 집 냉장고에 보관을 부탁했다. 집을 구한 뒤 제일 먼저 한 것도 김치를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러곤 갓 꺼낸 김치를 바로 썰어 밥도 없이 먹으며 그 맛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그런데 그 김치가 떨.어.졌.다. 특히나 이삿짐이 오기 전 3월 중순까지는 김치 하나만 가지고 버텼으니 김치가 남아날 리가 없었다. 밖에 나가서 사먹기도 했지만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러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고 어머니가 3월말에 오신다고 하니 지선이는 내심 반가웠단다. 어머니 오시면 같이 시장가서 배추사서 김치 담글 생각에.
감기몸살이 너무 심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어머니 가시기 전날에서야 겨우 몸을 추슬러 시장에 가서 배추를 사가지고 와서 김치를 담갔다. 그런데 이 또한 한국에서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배추가 달랐다. 중국 모든 배추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여기 배추는 쉬이 물렀다. 절여두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삭한 식감이 남아있질 않았다.
이 사람에게는 이게 상당한 스트레스였던가 보다. 고대하던, 어머니가 오셔서 김치를 담기만 하면 그 맛을 다시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너진 게,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김치를 여기서는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내심 충격이었나 보다. 그래서 너무 우울했단다.
어머니가 한국에 가셔서는 전화를 주셨다. 갓김치나 담근 김치를 조금 보내겠다고. 지선이 목소리에 활기가 돈다. “형님들이 나 싫어하겠다. 중국 가서도 어머니한테 김치 붙이라 그러고. 보내는 게 만만치 않은데. 비용도 그렇고, 포장도 그렇고, 보내는 과장이 만만치 않잖아.. 큰누나가 와야 하실 수 있을텐데.. 당신이 누나들에게 말좀 해줘. 어머니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고~~”
김치가 뭐길래, 이렇게 사람 마음까지 들었다 놨다 하는 걸까.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혹시 이게 나이 들어감의 징표는 아닐까. 대학생 때나 30대 초반만 해도 장기 여행을 가서 김치를 먹지 못한다고 힘들어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데 30대 후반을 거쳐 40대를 넘어서니 익숙한 한국적인 맛이 점점 더 그리워진다. 어르신들이 해외 여행을 가서 한국 식당만 찾는다는 얘기에 예전엔 ‘현지음식을 맛봐야지 거기서까지 왜 한국음식을..’ 이라 했지만 이제 그게 이해되는 나이가 돼버린 듯하다.
어디 김치뿐이랴. 21세기라지만 풍물이 낯선 건 마찬가지다. 40대 중년이 되어가는 지선이에게는 더욱 심한가보다. 외국생활도 꽤 오래했던 사람이지만 중국에 와서는 향수가 꽤 진한가보다.
“야채가 정이 안가, 다들 튼실하고 너무 건장해. 봄이면 봄다워야지. 오늘 시장에서 봤는데 부추가 그렇게 웃자란 게 어딨어. 지금 부추라면 겨우내 버티다 이제 갓 여린 잎이 올라와 야실거려야지. 지금 동산동 마당에는 여린 부추가 갓 올라오고 있을텐데..”
**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나 베이징이란 공간에서 보낸 3년(2016-2019)에 대한 기록이다. 일상과 관찰, 위안의 느낌을 나누려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