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회] ‘이민사회와 섬’ 대만사회 개방성과 다양성의 근원?
대만 선거는 끝났다. 대만인들에게야 당연히 향후 4년 권력의 향방에 관심이 쏠렸을 테고 국제사회에서는 양안관계와 미중관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리고 잠시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국내외정치와는 상관없이 대만 사회의 여러 단초를 살펴볼 기회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특히 한 후보가 얘기한 대만 사회에 대한 역사적 규정은 ‘아 그래서 대만 사회가 지금 이런 모습이구나’란 의외의 깨달음을 던져줬다.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대만에서도 총통 선거 기간에 TV 토론을 한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도로 3차례 정도 하는데 정견발표회라고 표현한다. 그 1차 발표회 당시 민중당 총통 후보였던 커원저 주석이 한 말 가운데 일부다.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만은 400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민사회입니다. 400년 전부터 원주민이 거주해 왔고 그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정청공, 객가인이 대만에 들어왔고 갑오전쟁 이후 일본인이 있었으며 1949년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건너왔고 최근에는 소위 신주민이 있습니다.”
커 주석은 대만 사회가 조화로운 사회임을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대만의 역사적인 흐름을 짚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대만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옹기종기 모여 견실한 사회를 조화롭게 이뤄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가 꽂힌 것은 대만 사회가 이민사회라는 커 주석의 ‘규정’이었다. 그 내용으로 인해 지금 대만 사회의 특성이 설명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특성은 바로 개방성과 다양성이다. 이러한 특성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궁금했는데 그 단초를 발견한 듯했다.
대만에 온지 이제 만 1년이다. 1년간 거주하면서 내심 신기했던 점 몇 가지를 들면 이렇다.
우선 대만 사람들의 특성이다. 친절함. 개인차가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무지개 팽이를 돌리면 한 가지 색깔로 보이듯이 전반적인 대만 사람들의 특성을 꼽으라면 친절함일 듯하다.
대만이라 한다면 그저 중국이라는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고 중화권 테두리 안의 다른 나라라고만 인식하고 있었기에, 대만에 와서 피부로 실제 느껴지는 느낌이 생경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국 대륙과는 또 다르다. 온화하고 개방적이고 친절하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벽이 높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일정 정도 몸에 배어 있다. 대륙은 분명 이 보다는 거칠고 ‘호방’했다.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점도 신기해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도교라는 종교의 특성 탓도 있겠지만, 우리로 치면 무속신앙으로 치부할 형태를 정식 종교의 테두리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 다양한 민간 신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도교라는 종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도 다양한 정파와 분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단으로 치부되는 분파도 대만에서는 일반 종교로 인정하고 터부시하지 않는다. ‘제도권’ 종교만 신뢰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 또한 대만 사회에서 느낀 따듯함이다. 대만이 사회 인프라가 완벽하고 물질적인 풍유로움이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사회는 아니다. 건물들도 다소 낡아 도시 전반적인 외관이 세련되고 그러진 않다. 하지만 휠체어나 유모차를 밀고 다닌다고 생각할 때 소소한 배려와 편리함은 우리 이상이다. 인도와 차도 사이 둔턱에는 둔탁하게라도 경사면을 만들어놔서 휠체어가 다니기 편리하다. 버스 등의 대중교통도 휠체어가 타고 내릴 때 기사분이 직접 안내하고 도와준다. 시간 지연 등에 대한 탑승객들의 불만은 본적이 없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건물만 그러할 수도 있겠으나, 시각 장애인이 들어오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경비분들이 일일이 손을 잡고 안내해준다.
단편적인 사안이긴 하지만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대만 사회의 수용성도 한국인인 나에게는 낯설고 신선했다. 2019년 동성결혼을 인정한 아시아 첫 번째 나라인 대만은 2023년에는 동성 부부가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성소수자 축제는 말 그대로 축제이고 동성연애에 대해 대놓고 거친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의원 선거에는 원주민 의석이 별도 배분되어 있다. 총 113석의 의석 가운데 원주민 입법의원으로 6석이 배분돼 있다. 산지 원주민과 평지 원주민 각 3석씩이다. 원주민 인구가 대략 전체 인구에서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입법의원에는 약 5.3% 비중으로 반영돼 있다. 소수민인 원주인에 대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원주민과 비견되는 새로운 개념이 신주민이다. 결혼이나 이민 등으로 대만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을 소위 신주민으로 일컫고 있다. 그 규모가 이미 65만명으로 원주민 수를 추월했다. 올해 총통 선거에서는 대만 최초 신주민 부총통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화제다. 민진당 부총통 후보였던 샤오메이친(蕭美琴)은 대만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대만 국적을 취득한 다문화가정을 배경으로 한 정치인이다. 글쎄 우리나라에서 다문화가정을 배경으로 한 정치인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면 어느 정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아직 감이 없다.
이 모든 사례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대만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이다. 그리고 그 개방성과 다양성의 근원은 커원저 주석이 얘기했듯이 대만 사회 구성의 역사적 배경, 이민사회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듯싶다. 물론 대만 근현대 역사에도 참혹하고 잔인한 ‘배제와 학살’의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이민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생겨난 개방성과 다양성의 DNA가 있었기에 그 배제의 역사를 뒤안길로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한편 이민사회라는 것이 개방성과 다양성의 ‘사회적 기원’이라 한다면, 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섬나라라는 특성은 개방성과 다양성의 또다른 근원, ‘지정학적 기원’이 아닐까 싶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만인 동료에게 ‘대만 사회 특성의 근원이 뭘까, 이민사회라는 점은 큰 배경인 것 같아’라고 얘기한 데 대해 그 친구가 덧붙인 요인이 바로 섬나라라는 배경이었다. 그것도 길목에 위치한, 역사적으로 특정세력이 굳건한 통치세력으로 장기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았던 섬나라.
섬나라라는 특성상 ‘외부인’이 수시로 들락날락 할 수 있었을 게다. 지난 가는 길에 잠시 보급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건, 새로운 문물과 바깥소식을 전해주는 세력이건, 탄압하고 침탈하는 세력이건 말이다. 육지 깊숙이 위치한 마을과 나라보다는 새로운 변화에 보다 익숙하지 않았을까 싶다.
태풍 길목에 위치한 섬나라라는 점 또한 대만인의 사회적 DNA에 영향을 미쳤을 게다. 거칠디 거친 자연의 힘 앞에서, 아울러 지진이라는 또다른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였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경외가 체화되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그 종교가 무엇이건,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의탁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다원화된 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특정 권력이 수백 년 이어진 경험이 없다는 점도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덜 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상부 세력’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데 일반 민중이 얼마나 그 세력에 의지하거나 올곧은 ‘충성’을 바칠 수 있었을까. 이러한 경험이 쌓여 오늘날 대만의 개방성과 다양성의 한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일 수도, 오픈된 정체성이라 칭할 수도 있겠다. 그냥 멋대로 한번 상상해 본다.
대만 사회 거주기간이 1년이 되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많았다. ‘짧은’ 1년 거주한 데 대한 소회를 이렇게 끌쩍여본다. 대만 사회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이렇게 나름 정리해본다. 2년차에는 어떤 호기심이 생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