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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Apr 21. 2024

달리기에 신세졌습니다.

[소소한 일상]

금요일 저녁, 다소 늦게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쓰러졌습니다. 어디 아파서 쓰러진 것이 아니라 지쳤기 때문이죠. 요즘 꽤 피곤합니다. 


9시경이지만 아직 저녁은 먹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라면 하나 끓여서 반씩 나눠 먹을래? 피자 먹고 싶으면 피자도 있어”라 합니다. 평소와 다릅니다. 평소라면 “멀 이 시간에 라면에 피자야, 그냥 먹고 싶지 않으면 일찍 자” 이럴 텐데 평소와 달리 지친 모습에 달래주려 한 모양입니다. 


아내가 제 상태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식욕입니다. 워낙 식욕이 왕성해서요. 아파도, 코로나 걸렸을 때도 식욕은 줄지 않았습니다. 목이 너무 아팠지만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최면’ 아래 먹는 것 반, 아내가 차려주는 식단이 내심 맛있어서 먹는 것 반으로 해서 싹 비워 먹었습니다. 


그랬지만 이날은 귀찮을 따름입니다. 라면에 피자라니 먹을까 하다, 결국 마다하고 책방에 앉아 쉬었습니다. 덥기도 하고 마냥 눕고 싶어 가방을 베개 삼아 바닥에 누웠습니다. 핸드폰으로 뉴스도 보고, 유튜브에서 유머 영상도 찾아봤습니다. 최근 괜히 궁금해 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 AI, 우주에 대한 영상까지 섭렵했습니다. 그 말인즉슨, 멍 때렸다는 것에 다름 아니죠. 그러다 씻지도 않고 불도 그대로 켜놓고 잠들었습니다. 


새벽녘에 얼핏 잠이 깬 것으로 기억합니다. 2시쯤일 거에요. 불이라도 끌까 했지만 어휴 머가 그리 귀찮던 지요. 에이 몰라, 그냥 다시 눈을 붙였습니다.


다시 5시쯤입니다. 아직도 밖은 어둡습니다. 이빨은 닦아야 하지 않겠냐고 스스로 달래서 일어났습니다. 이빨을 닦고 있는데 중학생 딸아이가 눈을 비비며 책방에 건너왔습니다. 무서운 꿈을 꿨답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토닥입니다. 아빠가 침대 옆에 있어줄까? 했더니 그냥 안방으로 건너가 자겠답니다. 


그러다 보니 5시반경 됐습니다. 대만의 4월 이 시간에는 벌써 동이 터옵니다. 창문 너머로 밖에 모습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자고 싶기도 했지만 부스럭 부스럭 운동복으로 갈아입습니다. 계속 이렇게 누워 늦잠을 자버리면 주말 내내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낼 것 같았습니다.  


일상 하루의 아침 루틴이 있습니다. 이를 때는 5시 반경, 늦을 때는 6시 반쯤 일어나 창문의 암막 커텐을 올리곤 조용히 침대에서 나갑니다. 아내는 아직 잠들어 있으니까요. 암막 커텐을 올리라는 것은 아내의 지엄한 분부입니다. 새벽잠에 방해가 되겠지만 곧 일어나니 걷으라네요.


그러곤 정수기에서 물 두 잔을 마시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갑니다. 매일 그 시간에 운동하시는 동네 할머니에게 가벼이 목례를 하고, 가볍게 몸을 풀고 화장실 다녀오고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달리기 코스는 시간 여유에 따라 크게 3가지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아직 해가 뜨겁게 떠 있지 않으면, 주말이면 집근처 강가 따라 달립니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으면, 날씨가 안 좋으면(너무 덥거나 비가 오면) 아파트 실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이용합니다. 그 중간 언저리의 조건이라면 집 근처 대학교 운동장 트랙을 달립니다. 


대만 와서 이제 1년 3개월 정도 이러한 아침 루틴을 웬만하면 지키고 있습니다. 평일이건 주말이건 말입니다. 평일과 주말의 차이는 달리는 거리에서만 차이가 납니다. 주말에는 가급적 10km 이상, 평일에는 5km 이상 달리려 합니다.


이날은 주말이었습니다. 피곤해도 루틴에 따라 달리기 준비를 마쳤습니다. 구름이 많아 강가 따라 달리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자 달리기 시작합니다. 뛰기 전에 보통 오늘은 어느 지점까지 어느 방향으로 뛰어서 10km 뛰자, 15km 뛰자 내심 정해놓는데 오늘은 정하지 않고 그냥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리하지 말자는 심산이었죠.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 뛰었습니다. 쌍계천 따라 달리다 지롱강 만나는 곳에서 단수이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죠. 달리다 보니 10km 뛸 때 보통 반환하는 곳도 넘어서 달렸습니다. 이날 결국 11km 뛰었습니다. 


누군가는 달릴 때 아무 생각이 안 나는 무념무상의 상태라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달리면서 각종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달리기에 몸이 집중하다 보니 그 생각이란 것들이 무겁게 저를 짓누르는 게 아니라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생각도 달리는 진동에 흔들려서 가벼워지는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트램폴린에서 점프하면 몸이 가볍게 올라가는 것 같은 거지요. 


피곤한 일들에 무겁던 마음들이, 뛰다 보면 ‘에이 됐어, 머 어쩌라구, 별거 아니잖아’라는 가벼운 상태가 됩니다. 달리다 보니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의 근원은 내 마음가짐이란 생각도 들고요. 내 마음을 바꾸면 문제라 여겼던 것도 문제가 아닌 것이 되는 셈이지요. 밖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니 내가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언가 과하거나 작위적이거나 등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어찌 제 스타일만 고집합니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들의 스타일이 있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 것이지요. 달리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리고 소위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되는 것도 유쾌해 하지는 않습니다. 소위 MBTI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규정짓는 게 유행이긴 한데,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너무나 많다고. 나의 한 단면만을 보고 그러한 것으로 나를 온전히 판단하려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달리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는 데 멀 그리 신경 쓰냐는 거죠.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놔두면 되는 거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거에요. 헌데 그게 머 그리 중요하냐는 거죠. 


하하. 오늘 무슨 뚱딴지같은 생각을 쓰나 싶습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제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글쓰기는 위로라고. 저는 글쓰기의 효용을 믿습니다. 마음을 위로해 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달리기의 묘미를 주제로 글을 쓰다가 오늘 너무 사방팔방으로 튀어버렸습니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달리기가 생각을 가볍게 해준다는 것 말입니다. 앞으로도 달리기는 계속 할 것 같습니다. 하루의 루틴을 이어서 이렇게 1년 이상 해 왔는데 또 다른 1년, 2년도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번 주말에 아무튼 달리기에 신세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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