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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GXING Apr 28. 2024

15년 만에야 골프백을 열었습니다.

[소소한 일상]

골프를 치지도 않으면서 책방 한구석에서는 버젓이 골프백이 놓여 있다. 2009년부터 놓여 있다. 


수차례 이사 다니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들고 다녔다. 서울에 살 때도, 강원도에 있을 때도, 베이징에 갈 때도, 지금 타이베이까지 수납창고나 책방에는 이 골프채가 놓여 있다. 책방에 갖다놓은 이유는 별달리 없다. 그저 지금 집에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책장 옆 구석에 딱 맞는 공간이 있어 책방에 갖다 놓은 터. 


무게는 꽤나 묵직하다. 부피도 꽤 나간다. 글쎄 10여kg은 나갈 것 같고 높이는 1.3m 정도 될 것 같다. 애물단지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책방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길게 세워놓을 수 있어 원래 자기 자리인양 자연스럽게 책방 공간에 녹아 들어가 있다. 골프채를 담아 놓는 기능보다는 사실상 가구로서 더 어울리는 모양새다. 


제 기능을 상실했다면 그냥 처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을 듯하다. 허나 그리 못한 게 벌써 15년이다. 실은 아버지 물건이었던지라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물건을 이것저것 정리했다. 그 가운데 이 골프백도 있었는데 쉬이 버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가져가겠다고 해서 들고 왔다. 머 나중에 골프 칠 일 있으면 이것으로 치면 되겠지 하고. 


골프는 쉬이 쳐지진 않았다. 많이 보편화도 됐고 주변에서도 많이 치기는 했지만 시간이며 돈이며 생각하면 그다지 마음이 닿진 않았다. 왠지 갖춰야 하는 것들도 귀찮게도 많다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골프백도 열어보지 않고 한해 두해가 흘러갔다. 


가구가 되어버린 골프백에는 골프채가 들어 있다는 생각보다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운동기구가 들어있단 생각에 응당 보관해야 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가구가 되었고 가구가 된 이상, 망가지지 않는 이상 버려지진 않았다. 골프백이 망가질 리는 없었기에 버려지지 않았다. 


가구가 되어버린 책장 옆 골프백

검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윗부분이 40*20cm 정도 되는 직사각형 모양인지라 먼지가 쌓이면 그냥 툭툭 털었고 마른 걸레로 닦았다. 그럴 때 정도만 손이 갔다. 


15년이나 흘렀건만 튼튼했다. 아니지 아버지가 쓰시던 때부터 생각하면 25년은 됐을 터다. 아주 튼튼했다. 가죽은 여전히 가죽다웠고 이음새를 맡고 있는 쇠 부분도 녹슬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이음매 연결선도 터진 곳이 하나 없다. 


15년만에야 열었다고 했지만 물론 글쎄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2~3년에 한 번 정도는 열었을 게다. 혹시 안에 곰팡이 슬었나 하고 확인 차원에서. 그리고 골프채는 어떻게 생긴 거야 호기심 생길 때 정도 열어본 것 같다. 그랬을 게다. 


누가 골프 한번 치자고 하면 매번 완곡하게 거절하곤 했다. 골프채가 없어 못 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골프채는 있었으니까. 다만 아버지가 준 골프백 ‘선물’에 언제든지 원하면 골프는 할 수 있다 생각했고 그래서 더더욱 골프는 항상 뒷전으로 밀린 것 같다. 물론 더 재미있는 운동이 많은 것도 이유였다.  


그러다 아는 지인 분이 골프 한번 치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골프를 쳐본 적이 없다, 필드에 나가본 적이 없다, 민폐가 될 거다, 재미나게 치시라 라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동했다. 아버지 골프채 한번 사용해볼까? 싶었다. 궁금했다. 골프라는 운동이 어떤 것인지. 아마 다들 처음 나가면 헤매다 흥미를 잃는 경우도 많다는데 차라리 그렇게 확 흥미를 잃고 골프백은 다시 가구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가지도록 하면 되겠다 싶었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신 것과 달리 의외로 골프를 좋아하셨다. 머 그렇다고 자주 친 것은 아니다. 그냥 가끔 친구분들과 어울리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집이 ‘시골’이다 보니 마당이 꽤 넓었고 마당 한 구석에 골프 연습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공간에서 아버지는 심심풀이로 골프 연습을 했고 나도 가끔 아버지에게 자세를 배웠다. 그리곤 골프채가 공을 때릴 때의 손맛과 소리맛이 경쾌하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치기로 한 날이다. 새벽부터 잠이 깼다. 5시에 출발해야 했기에 일찍 일어나긴 해야 했으나 설레서 잠이 깬 건 아니다. 전날 늦게 퇴근했는지라 자정 지나서 잠들었는데 새벽녘 지진 경보가 요란하다. 그러곤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책방의 골프백을 들었다. 방청소할 때 간혹 엉덩이를 들썩들썩 정도의 움직임만 있던 골프백이 완전히 들렸다. 골프공은 골프장에서 주겠지 오해할 정도로 무지했다. 다행히 골프백 앞주머니에 아버지가 넣어놓은 골프공이 몇 개 그대로 있다. 5~6개 있으니 이것으로 어떻게 버텨보자 했다. 


골프장에 도착하니 골프백에 이름을 써놓아야 한단다. 골프백에 네임택이 있길래 거기다 써야겠다 싶었다. 네임택을 돌려보니 아버지 이름과 011로 시작하는 아버지 핸드폰 번호가 쓰여 있다. 


15년만의 주말 외출을 마치고 골프백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처음 경험해 본 것치고 재미는 꽤 있었다. 다만 다른 재미있어 하는 운동이 많은지라 즐겨 하는 운동 앞 순위로 치고 올라오기는 어려울 듯싶다. 하여간 이제 골프백은 가구로서의 역할 이외 실제 운동기구로서의 역할도 조금은 겸할 듯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골프를 얼마를 쳤는지 여쭤본 적이 없다. 갑자기 궁금하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치셨던 걸까?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편하면 편하지만 참 어려운 관계일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아버지를 참 많이 몰랐던 듯하다. 아버지, 골프 얼마 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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