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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화 이경희 Sep 06. 2016

해 저무는 강가에서 부르는 노래

생명의 노래 부르며 함께 걸어요

해 저무는 강가에서 부르는 노래


진화 이경희(한국사회적코칭협회 회장, 생애설계코칭연구소 소장)


초가을 저녁 여의나루역 강변에는 청소년, 청년, 가족들이 큰 무리를 이루며 모여들었다. 폭신한 감촉의 잔디에서 풋풋한 풀향기가 풍기고, 해 저무는 강물 위에 얼비친 불빛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여기저기 작은 텐트를 치고 자리 잡은 젊은이들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한 쪽에서는 공연이 진행되고 하얀 고깔 모양의 부스가 줄지어 서있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들썩여지는데 경쾌한 음악까지 있으니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아이돌 그룹의 춤과 노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강물의 검푸른 빛깔이 점점 깊어졌다.  


내가 소속된 사회적코칭협회 부스에서는 청소년과 참가자들을 위한 진로코칭 서비스를 했다. 무심하게 웃고 떠들다가도 자신에 대해 알고자 진지하게 코칭에 임하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퇴근 후에 만나서 손잡고 생명존중 캠페인에 참여한 젊은 연인과 삐뚤삐뚤한 글씨로  ‘생명을 아끼자’라는 글을 등에 붙이고 부모와 걷는 아이의 모습이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고독사와 자살이 이어지고, 심지어는 영아원에서까지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방치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가 이어져도 누군가 나서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한 자리에 앉아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니 과연 우리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부끄럽다. 부끄러워도 생명사랑 밤길걷기 운동을 멈출 수는 없다.   


남녀노소 참가자들과 함께 마포대교를 왕복하는 5km 걷기를 하고 마포대교 위 4번 생명의 전화 부스 앞에서 서포터즈로 참여했다. 마포대교는 낙심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많아서 ‘생명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난간에는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안부와 질문이 써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생명의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 당신의 얘기 한 번 해봐요', '밥은 먹었어? 별일 없었어? 바람 참 시원하다, 파란 하늘을 봐봐, 엄마랑 닮은 곳은 어디니? 뭐 먹고 싶어?’ 하는 말이 써있었다.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돌리거나 생명의 전화를 걸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으련만. 일상에서 평범하게 주고 받는 다정한 말 한 마디, 따뜻한 장면 하나가 그들에게는 간절히 필요했을 텐데 곁에서 그런 말을 해줄 만한 사람이나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그곳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 친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내고 한국에 돌아와 직장에 다니던 조카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왔단다. 주변에 친한 친구도 없고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일만 하던 청년의 자살 소식에 온 집안이 슬픔에 휩싸였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장례식장에 나타난 의문의 젊은이들이었다. 누구냐고 하니까 친구라고 했지만 표정과 태도가 하도 이상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조카의 컴퓨터를 뒤져보니 자살클럽에 드나든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20대~40대의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 죽음의 길에 동행했다니 누에고치처럼 들어앉아서 자신의 귀한 생명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접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엄연히 낙심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존재한다. 유족들은 슬픔뿐 아니고, 도와주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고통 받게 된다. 그런 일들이 30여 분에 한 번씩 일어나고 1년이면 14,000명이나 되는 아까운 생명이 세상을 떠난다. 부디 그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를 바라며 '해질 녘부터 동틀 때까지' 밤새 걷는 이들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8,0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가비를 내고 밤길걷기를 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예방 효과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치르는 대가와 비교할 수 없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밤길을 걷고 유명인들의 공연에 열광하는 청소년의 행동이 단순해 보이지만 적어도 행사에 친구들과 더불어 참가한 꿈나무들은 생명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변 친구들을 돌아볼 마음이 생기리라 믿는다.   

 수천 명이 줄지어서 생명의 다리를 건널 때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노랫소리는 자연스럽게 뒤로 번져나갔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한숨일랑 쉬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디지털 촛불을 켜서 기대와 기도를 담은 소망 봉지
린큰 하트를 그림 소망봉지 가운데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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