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골에 대한 명상
몸과 마음 사용 설명서
진화 이경희
며칠간 머리맡에 놋쇠 종을 두었다. 일어나고 누울 때마다 부러진 갈비뼈가 아파서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종을 쳐야 한다. 심호흡을 하며 숨이 들고 나는 것을 지켜보곤 했지만 갈비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늑골 4·5번 골절이 일어나고 나서야 일상생활에서 무심히 했던 모든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들인지 깨닫는다.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통통 대며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고, 누웠다 후다닥 일어나고, 이리저리 돌아눕고,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고, 기침하고, 딸꾹질하고, 하품하고, 소리 내서 웃는 것. 웅크리며 물건을 들어올리고, 차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동하고, 반갑게 끌어안고 포옹하고, 경운기 타고 농로를 덜커덩 대며 달리는 것. 이 모든 때에 갈비뼈가 남몰래 일해 왔다는 걸 알아차린다.
12쌍 상아빛 창살로 나의 심장과 폐부를 지켜온 탄력 있는 내 생명의 서까래들, 머리맡의 종을 치면 나를 일으켜 주러 오는 이가 있어서 저녁이 고맙다. 종을 모아둔 쟁반에서 젖소 뼈를 넣은 본차이나 종을 꺼내 흔들어본다. 뼈가 들어있는 도자기는 왜 더 가볍고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 맑은지 세상의 많은 종들은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나는 세상에 무슨 소리를 내는 종이었는지, 뼈아픈 골절 후에야 하게 된 늑골에 대한 묵상이 자꾸 곁길로 빠지고 있다.
어쩌면 내 몸의 많은 부분들이 인공적으로 대체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따라올 수 없는 마음의 자리는 지켜야 하는데 나다운 나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돌이켜보면 그동안 큰 병이나 별 탈 없이 살아왔는데 마음이 급하고 분주할 때 삐끗하거나 너울파도에 휘말려 발에 골절상을 당한 적이 있다. 공통적으로 중요한 일을 앞둔 시기에 골몰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엇박자가 나곤 했는데 집에서 넘어져서 옆구리를 욕조에 부딪치다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 궁리를 했기에 실내에서 균형을 잃을 정도로 마음이 쏠렸을까. 몇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구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중이었다.
내가 사람의 마음과 성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다. 학교에서 혈액검사를 했는데 혈액형마다 성격이 다르다는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되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사람들이 타고난 성격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어떨 때 사람은 마음과 달리 넘어지고 넋을 놓는지 바라본다.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아직 3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 갈비뼈는 깁스나 별다른 처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 남은 기간 동안 늑골에 대한 묵상을 하며 ‘몸과 마음 사용설명서’를 찬찬히 써보려 한다. 아프니까 있다는 걸 깨달은 갈비뼈 뿐 아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나의 몸을 만나고 마음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려 한다. 내 몸은 마음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내 마음은 몸을 잘 아끼고 잘 사용하고 있는지, 길어진 노년기에 마음이 더 커지고 몸이 약해지면 어떻게 조절할지, 몸과 마음이 평화롭게 방향과 속도를 맞추어 동행하는 비결을 찾아보려 한다.
어머니는 민첩한 분이었다. 젊어서 운동도 잘 하셨지만 워낙 부지런해서 항상 몸을 움직이는 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짐칸이 달린 파란 네 발 자전거를 타고 교회와 전철역 사이를 오가셨는데 최근에 꼭 갖고 싶다는 분에게 정든 자전거를 보내셨다. 하얀 바지를 입고 노련하게 자전거를 타던 어머니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가족들이 모여 걷다보면 점점 뒤처지신다. 그럴 때는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어머니의 손은 아직도 힘이 있고 따뜻하다. 매일 짐을 머리에 이고 언덕을 넘던 날렵한 걸음은 찾아볼 수 없어도 마음은 여전히 의욕이 넘치신다. 내가 다쳤다는 소식에 당장에 달려와서 집안일을 도와주신다고 하지만 우리 집이 3층이라 걸어 올라오시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20년 후에는 어머니가 겪는 어려움을 다시 겪게 되겠기에 '몸과 마음 사용설명서’에 적어 넣는다. 천천히 걸으며 느긋한 마음으로 발끝을 바라본다. 몸이 마음보다 1초 나중에 출발한다. 늦은 밤까지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싶을 때는 일단 잠자리에 든다. 날아오는 시간의 공들을 끝까지 바라본다. 많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