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을 위해 기고했던 글을 다시 수정 게시합니다.
그래서 개탄하고 비난하며, 정죄하고 처벌하는 일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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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모두 어린아이였습니다
진화 이경희(라이프코치, 평생교육사)
작고 하얀 꽃이파리를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연분홍빛 잎맥이 비록 작고 여려도 그 자체로 온전한 아기의 손톱을 닮았습니다. 땅을 딛고 일어나서 걷고 달리는 날을 기다리는 곱디고운 발은 세상 그 어떤 피조물보다 보드랍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양육 환경이 따라 형성된 성격과 나름의 생존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양육자를 통해 비쳐진 모습이 곧 자신이라고 믿고 어떤 음조로 살아갈 지 방향을 선택합니다.
가장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는 인간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적으로 부모에게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과 정서적 지원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영유아기, 유년기의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는 목숨을 지탱하는 생명줄과 같아서 혹여 부모가 좋은 역할을 못 한다 해도 필사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책임진 부모가 의무와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 자녀는 심각한 심신의 고통을 당하고 상처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끔직한 아동학대가 심심치 않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묻혀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전적으로 육아에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에 조부모나 친척, 공공시설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거기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친부모 또는 주양육자에게서 일어난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바로 옆에서 들리는 아이의 처절한 울부짖음에 이웃조차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 낙심합니다.
이런 일들은 법적인 보호와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국민들의 관심과 자발적인 캠페인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친부모, 계부모, 양부모, 조부모, 친척, 시설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의 원인을 역으로 추적해보면 많은 경우에 준비되지 않은 이들이 아이의 양육을 맡고 있으며 자신들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부부관계, 가정경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성숙한 성인이 어려운 과업을 맡으면 쩔쩔 맬 수 밖에 없고 준비 없이 부모가 되면 인간관계의 단절로 인해 대부분 도움을 청할 곳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위한 인성교육뿐 아니라 부모교육이 더욱 시급한 현안이며, 가정과 사회 전체가 다음 세대의 양육을 공동책임을 져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는 핵가족화, 파편화 된 가정이 어떤 형태로든 상생을 위한 공동체로 거듭나야 하며 가족과 이웃이 협력하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옆집 아이에게도 내 아이와 같이 관심을 갖고 서로 돕는 마을에서는 결코 그와 같이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어려움이 있다면 우선 지역사회의 NGO 단체, 건강한 종교단체, 고등교육기관(대학교), 지역사회복지관, 상담코칭센터에서 ‘건강한 어린이 키우기ㆍ 따뜻한 가정 세우기’ 운동에 앞장서서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온누리 밝힐 불쏘시개로 써야 합니다.
언어의 순화와 함께 언론의 자세도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혀 걸러지지 않은 폭력적인 소식들이 뉴스와 신문, 인터넷 매체를 통해 마구 쏟아져 나오고, 대안 없는 개탄과 비난이 넘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린 자녀들이 반복적으로 그와 같은 뉴스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때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부모와 교사들, 아이를 친부모 대신 기르며 수고하는 분들까지 의혹의 눈길 속에 지치고 힘이 빠진다는 것이 안타깝고 걱정스럽습니다.
사건 사고를 정확하게 알려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뉴스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가슴이 따뜻하고 흐뭇한 이야기를 더욱 많이 발굴하여 격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바이러스와 감염, 폭력과 죽음, 몬스터와 좀비라는 말을 매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의 뇌리에는 어떤 신경언어회로가 만들어질 지 유추해 보아야 합니다.
불확실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하려면 과연 어떻게 양육을 받아야 할까요.
가장 우선해야 하는 일이 연약한 생명들을 길러내는 텃밭인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고 안전한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가와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특히 저항할 힘이 없는 아동에 대한 학대는 관련법에 따라 가장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사전 방지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방법은 제도적으로 예비 부모에게 부모역할교육, 의사소통훈련,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이상 징후가 있는 곳에 미리 전문가를 투입하는 상담코칭과 심리치료, 보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는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부모역할을 버거워 하는 핵가족의 젊은 부모, 복지기관(지역아동센터, 보육원, 모자원, 위탁가정)에서 종사하는 분들을 위한 현실적인 도움과 정서적인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또한 지속적이며 긍정적인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관심과 시민의식을 높이는 생명존중운동, 황폐한 정서를 회복하기 위한 문화예술의 사회적 기여, 대중매체의 협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모두 어린 아이였습니다. 웃기 잘하고 사랑스러우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아야 자랄 수 있는 생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린 시절에 느꼈던 기쁨, 설렘, 슬픔, 아픔이 무엇인지 잘 알고 연약함에서 오는 무력감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 당하는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아주지 않는다면 상처받은 이들이 가시와 쓴뿌리를 지닌 채 성인아이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단 멈추어 서서 맑은 눈망울을 들여다 봅시다.
눈빛과 안색, 행동과 옷 매무새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위험 징후가 있을 때는 신고하는 용기도 내야 합니다.
미해결과제를 안고 쩔쩔매는 젊은 부모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먼저 인생을 살아낸 선배시민으로서 어떤 방법으로든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저출산ㆍ고령화정책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의 흐름과 효과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행정 부처 간에 중복 또는 누수되거나 성과가 미미한 영역의 예산을 재편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보된 예산으로 지역의 50플러스센터나 어르신복지센터에서 건강한 시니어 재교육 하고 '스마트그래니(멋진 동네 어른)'로 파견하는 세대통합(G2G) 비즈니스 모델 활성화를 제안합니다.
실제로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맞벌이 부부의 집에 있는 자녀 점심 챙겨 먹이기,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 맞아주기, 엄마 혼자 병원이나 장보러 가는 시간에 아이들 돌봐주기와 같은 틈새 서비스가 구석구석 필요합니다.
혼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정의 경우 직업교육과 직업전환교육을 받기 위해 아이돌봄 서비스를 받지만 한도를 넘기는 경우 또 아이를 맡기는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코로나 감염의 위험이 사라지고 상황이 좋아지면 대단지의 커뮤니티센터나 주민센터, 작은도서관을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문제 제기를 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사건과 사고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결되지 않고 누적 되어온 원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미하더라도 세대 간의 일자리 경쟁이나 갈등이 아닌 상생과 협력의 세대통합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부디 우리가 마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친정어머니와 이모, 고모와 삼촌이 되어 갓피어난 벚꽃 이파리처럼 여리고 고운 아이들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지키며 작은 몫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이들과 더불어 이룬 숲이 곧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터전이니까요.
우리도 혼자서는 생명을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아이였습니다. 오늘은 어린 아이였던 우리가 내일의 주인공으로 자랄 아이들을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