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카서스라는 땅끝에서
아직도 돌아오는 길
진화 이경희
나는 아직도 코카서스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내 삶의 땅끝으로 다가왔던 프로메테우스의 산 카즈베기과 노아의 방주가 걸렸다는 아라아트 산을 보고 톈산 산맥을 넘어 시공간의 절벽을 지나 돌아오는 길, 코카서스와의 시차는 불과 5시간이지만 체감 하기로는 1800년 이상 시간의 통로를 지나 4000~5000m의 고도를 오르내린 느낌이다.
짧은 기간 머문 땅에서 그동안 얼마나 내가 서방 편향의 역사 속에 살며 사고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지, 이번 조지아 문학심포지엄과 코카서스 여행을 통해 세계관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다. "조지아 민족문학과 수도원에서 피어난 문화예술" 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듣고 조지아 작가들과 조지아 문학과 역사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유구한 역사 속에 긴 호흡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바삐 시간의 쳇바퀴를 돌리며 살았는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심포지엄에서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세계를 만났다. 3세기에 문자를 만들고 8000년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빚는 조지아, 5세기 무렵부터 지금까지 글자를 바꾸지 않고 쓰면서 깊은 산중의 수도원, 동굴 깊숙이 고문서를 숨겨서 지켜낸 아르메니아. 두 나라는 초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웃국가지만 각각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아르메니아에 가서 제노사이드 추모공원, 고문서 박물관, 폐허가 된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수도원들을 보며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한민족과 유대인 못지 않은 박해 받고 학살 당하며 수백만 명이 전 세계로 흩어졌으나 수난의 역사를 인정받지 못하는 민족이 바로 아르메니아인들이다.
지구촌에는 서구를 중심으로 한 역사와 문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지인 중에는 일찍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와인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분이 있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만난 지인 중에 코카서스가 아닌 제 3의 나라에서 사업상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주 만나 함께 일을 했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나라 땅에 정착해서 사는 아르메니아인(300만)보다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700만)
아, 잊고 있었지만 오래전 이집트의 카이로에 살 때 나도 아르메니아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정전이 되는 날 밤이면 발을 구르며 울부짖던 윗층 남자는 다음 날이면 문을 두드리며 미안한 표정으로 와인 병을 쑥 내밀었다. 자기 부모의 고향에서 만든 와인인데 지난 밤 소동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가져왔노라고 했다. 시나이반도에 주둔하는 유엔군이라니 전쟁의 상처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했지만 이번에 그 민족의 수난사를 들으며 두려움의 뿌리가 더 깊은 속에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복자들이 모든 남자들을 학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수백 km 밖으로 내쫓아 지구상에서 지도가 사라진 서아르메니아와 흩어진 수백만 아르메니아인의 고난은 유대인의 홀로고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 때의 일을 40년이 지나고야 알아차린 나 또한 얼마나 무심한 인간인지….
지명이 귀에 설고 입에 붙지 않아 여행을 다녀와서도 번번이 여행일정이 담긴 자료를 꺼내보는데 마음속에는 인상 깊게 남은 이미지들이 맥락없이 떠오른다. 코카서스 산맥에는 해발 5000m이상 되는 산이 6개나 있다. 인간에게 불을 준 죄로 프로메테우스가 삼천 년이나 묶여 있었다는 전설의 코카서스 설산을 보기 위해 해 뜨기 1시간 전부터 산장호텔 베란다에 서서 기다렸던 새벽의 추억, 섭씨 10도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새벽 산의 경이로운 기운이 여전히 코 끝에 남아있다. 그 새벽에 동이 트는 카즈베기를 바라보며 부디 인간에게 불과 지혜를 주고 고난을 당했던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걸려 살아남은 인류가 부디 불로 다시금 심판받지 않기를 기도했다.
여전히 전쟁과 분쟁에 노출되어 있으나 유적지에서 늘어져 자는 개와 함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평화로운 나라는 낯설고도 멀었지만 벌써부터 그립다. 뜨거운 햇볕에 완숙된 토마토와 싱싱한 오이가 조화를 이루는 샐러드, 갓구운 구수한 빵, 순수한 맛의 와인, 감자를 곁들인 숯불구이고기가 고된 여정을 탈없이 보낼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아라라트 산이 보이는 코르비랍 수도원에 갔다가 내려오며 산 앤틱 주석주전자 체즈베에 아르메니아 민트차를 우린다. 차향과 함께 오래 전 만났으나 잊었던 아르메니아인 병사의 옆을 지나,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과 아르메니아의 아라아트 산과 톈산 산맥을 넘어 나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