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가 화목하려면 시부모가 친절해져야 한다.
시월드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참 애증의 나라다.
외국은 시댁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안 쓰고 스트레스도 안 받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생각으로 서로 상처를 주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는 것 같은데, 유독 한국 사회에서의 시월드란 서로 상처받고 상처 주는, 남보다 못한 사이, 다가가기 싫은 적이 되어 버렸다.
남편을 키워주었고 결혼의 과정까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 고마운 곳인데, 감사하기는커녕 방문하기 싫고 연락도 꺼려지는 곳이 시댁이라니,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굉장히 비정상적인 관계이다.
왜 시댁이 가기 싫은 곳일까?
나는 시댁 가기 전에 항상 아프다. 체 한 것처럼 소화 불량에 머리도 어지럽다.
신기한 것은 내 아이들도 젖먹이 시절부터 시댁 가기 전날 꼭 열이 나고 토하고 몸이 안 좋았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와이프가 몸이 안 좋든 아이들이 열나고 토 하든 무조건 시댁행이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민감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시댁이 가기 싫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다.
첫째로 상하 관계가 싫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먼저 연락을 하거나 인사를 하길 바라고, 본인들의 안부를 묻기를 바란다.
수저를 안 가져왔으면 "수저를 안 가져왔네.."라고 말을 하고 가만히 있는다.
그럼 내 엉덩이가 저절로 뜨면서 "제가 가져올게요."라고 말을 한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저를 가져오면 되는데, 꼭 말을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나에게 과일을 내민다. 결혼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과일을 깍는 척이라도 했는데, 내가 깍은 과일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그다음부터는 시어머니께서 잘 시키지 않는데, 작은 어머니나 고모님이 오면 나에게 과일을 내민다. 이제 시댁 10년 차라 내공이 더해져 과일을 깍지 않고 남편을 부른다. "여보! 과일 좀 깎아! 저희 남편이 저보다 더 잘 깍아요!" 그럼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서는 본인이 깍으신다. 그럴 때면 참 어이가 없다.
둘째로 남녀 차별이 싫다. 여자들은 시댁에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인사만 하고 부엌으로 향한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며 부엌으로 들어가서 다 해 놓은 전이 맛있다면서 음식을 칭찬한다.
남자들은 티브이가 있는 곳에 가서 앉아 있는다.
반대로 친정에 가도 남편은 우리 집 부엌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소파에 앉는다.
남편에게 항의를 하면 부엌에 들어가지 말고 나와 있으라고 말을 한다.
내 밑에 동서는 나보다 더 요새사람이다. 그래서 부엌에 들어오지 않으니 시어머님이 부른다.
이 남녀차별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들딸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 같다.
둘째가 아들이어서 그런지 그냥 둘째라서 이뻐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시아버지는 내 딸에게는 대면대면하면서 아들은 안고 말 걸고 장난치면서 이뻐하는 게 눈에 보인다. 나 또한 차별을 받고 커서 그런지 그 아픔을 내 딸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 시댁에 더욱 가고 싶지가 않다.
또 설거지는 여자들의 몫인 것이 싫다. 결혼한 후 몇 년 동안 설거지를 해 오다가 아랫 동서가 들어온 김에 둘이 작정하고 남자들에게 설거지를 시키자고 했다. 상차림이 끝난 후 남편과 시동생이 부엌에 입장을 하자, 시 할머니는 애가 타기 시작한다. 본인이 할 테니 설거지를 놔두라고 하신다.
그럼 더욱 화가 난다, '왜 내가 설거지했던 그 몇 년 동안은 그런 말 안 하고 남편이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런 말씀을 하시지?' 그렇게 시댁과의 감정적인 거리는 더 멀어진다.
세 번째로 과거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싫다.
난 그들의 과거 이야기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만났을 때 항상 동일한 이야기들을 반복하는데, 정말 이야기할 추억이 없나 보다 생각이 될 정도로 똑같은 것을 반복한다. 본인이 과거에 미국을 갔었다는 이야기, 딱 2주 외국에 다녀와놓고서는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자는 내 말에 "나는 외국에 많이 다녀서 이제는 국내를 다니고 싶어."라며 퇴짜를 놓은 아버님의 미국 이야기는 내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한다. 그렇게 미국 다녀온 것이 좋았으면 본인 아들 해외여행 좀 데리고 다니고 넓은 세상 좀 보여주시지, 우리 남편은 결혼 전 해외여행을 초등학교 때 딱 한번 다녀왔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본인 경험만 자랑하는 시아버지가 밉다. 우리가 좋은 뷔페를 모시고 가면 본인들이 옛날 옛적에 딱 한번 갔던 호텔 뷔페를 이야기하면서 비교를 하는데, 제발 나 좀 데리고 가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만 사는 그분들이 가엽고 측은하기도 하지만 난 관심 없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 싫다.
마지막으로 아프다고 하는 것도 싫다.
나이가 들면서 아픈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를 볼 때마다 당신네 건강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다.
며느리가 아플 때 본인들도 연락 안 하고 몰랐으면서 본인들이 아플 때 며느리가 연락도 안 했다는 것에 기분이 나빠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며느리보다 더 친한 본인 아들이 연락을 안 한 것에 대해서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며느리가 연락을 안 한 것에 대해서만 집착을 하고 서운해할까?
본인이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며느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유~ 저런~이젠 괜찮으세요?"라는 이야기뿐이다. 인간은 타인이 아픈 것에 대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인데, 며느리에게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일까? 그렇게 아프면서도 매일 술을 마시고 운동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다.
고혈압, 당뇨가 있으면 술을 마시지 말고 운동을 하시지, 술과 기름진 음식은 매일 드시고 운동은 안 하시면서 본인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하나도 공감할 수가 없다.
내가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 애초에 공감을 왜 해야 하나 모르겠다. 나는 시부모님에게 공경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 결혼하고 시어머니께서 연락을 자주 하라는 말에 나는 연락을 자주 안 하는 사람이니, 우리가 궁금하면 먼저 연락을 하시라고 했다. 솔직히 시부모님에 대해 궁금하거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모두들 이런 걸까?
웃긴 건 남편과 시부모님은 더욱 연락을 안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연락을 바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시부모들은 본인들이 며느리에게 공경받고 존경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내가 그분들에게 받은 것은 결혼할 때 전세자금 5,000만 원이 전부다.
돈은 사랑을 동반하지 않는다. 존경은 사랑과 보살핌으로써 나오는데, 나는 그들에게 철저하게 '남'인 존재다.
'남' 에게 존경을 바라면 그 남은 더 멀어져 버리고 만다.
시월드가 화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하나의 가족이 추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기쁜 일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주위를 살 펴보면 그러지 않는 곳이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축복과도 같은 또 하나의 가족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시부모님은 며느리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한다.
'남'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그 사람들 위해 희생하는 방법 말고는 없다.
'돈'을 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잠깐 고맙고 끝이다.
그렇다고 돈'을 쌓아 놓고 안주는 것에 대해 자랑을 하면 그 또한 밉다.
"우리 죽으면 이 돈이 다 너네 돈이니깐 잘해! "
"원래 죽기 전에는 재산 물려주지 말랬어."
이런 말을 들으면 며느리는 그 후부터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시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기를 기도하지 않을까? '돈'이 '사랑'인지 아는 사회에서 잠깐의 인정을 받으려면 '돈'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짜 사랑인 '돈'만이 아닌 '사랑'이 전달 되어야 한다. '사랑'을 주려면 그 사람을 위해 '희생'과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추억'을 쌓아야 한다.
며느리를 위해 희생과 일을 하려는 시부모님이 얼마나 될까?
며느리를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고 좋은 선물을 주고 싶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둘째, 며느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결혼을 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성인은 그대로 존중해 줘야 히지, 가르치려면 안된다.
물론 모든 시월드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몇몇의 시월드는 본인들의 관습이 맞다고 생각하여 다른 집에서 온 며느리에게 본인 집의 문화만 옳다고 생각하여 강요하고 심한 경우 다른 가정의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너네 집은 김장을 무슨 그런 젓갈을 넣고 했대니...
자기의 삶을 부정당한 며느리에게 그 시댁은 배워야 할 곳이 아닌 원수 같은 곳이 되어버리고 시부모의 강압적인 태도는 며느리를 '남'에서 '적'으로 바꿔버린다.
셋째, 며느리가 '남'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다고 '남'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아들의 '베스트 프렌드'가 놀러 온 것처럼 귀한 손님으로 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 내 아들과 친구 사이는 멀어질 것이다.
여자들이 경제력이 없던 옛날과 비교하면 안 된다. 경제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남편에게 붙어 있어야 했던 시절은 잊어야 한다. 언제든 우리는 '남'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 아이의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왔는데, 이 친구에게 일을 시키고 필터링 없이 듣기 싫은 말을 한다면 아마 친구는 백이면 백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나 너랑 안 놀고 너네 집도 안 갈 거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정상이다. 아마 자기 자식은 시키지 않는 집안일을 시키고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곳을 '시댁'이라는 이유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 아닐까?
왜 지극히 비정상인 행동을 하면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며느리를 아들이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한다면, 시댁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왜 우리는 남보다 못한 일들을 행하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을 하고 지극히 비정상적인 행동을 정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올해의 추석은 캐나다에 있음으로 시댁에 방문하지 않았다.
추석 전날 시댁 카톡방에 "저희가 캐나다에 있어서 추석 때 함께 참여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추석 잘 보내세요!"라는 카톡을 남겼다. 시아버지도 아쉽다는 카톡을 남겼는데, 시 어머니는 지금까지 답장이 없으시다.
연락을 받았으면 짧은 답장이라도 해줘야 하는 게 예의건만, 어른이 되면 예의를 지키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걸까? 아마 이런 사소한 것들로 인해 나는 한국을 탈출했고 시댁을 가야 하는 것을 걱정하던 때 보다, 추석분위기 하나도 없이 먼 타지에서 외로운 지금이 더 편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우리 시어머니가 더 따듯했었으면 외국에 나오지 않았을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을 바꾸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따듯한 엄마가 되는 일이다.
올해 추석에는 캐나다에서 베트남 아이들과 송편 만들기를 하고 사모님이 주신 크림뷔릴레를 먹으며 특별하지 않고 소소하게 그리고 항상 그렇듯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다.
안보면 보고 싶고, 방문 하면 편안한 시댁
대한민국의 시댁과 며느리사이가 힘겨루기를 끝내고 정상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