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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May 09. 2024

변화가 두려워 이민을 못하는 사람..

내가 남편에게 이민 이야기를 꺼낸 것은 28살, 결혼 하기 전 부터 였다. 

캐나다에 워킹 홀리데이로 가서 정착을 해 보자고 했는데, 나름 대기업 소속인 남편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거절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왔기에 변화가 두려웠던 것 같다.아쉽게도 우리는 우민화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한국이 급속하게 성장을 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 하나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결정을 따라 가도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가치관과 다른 생각은 모조리 거부 되었다. 생각 없이 일을 하게 만든 것이 한국 교육 과정의 목적이었다.

우리는 사회 시간에 전두환 군사정부 때 독재로 인한 발발을 억제 하기 위해서 3S 정책 즉 우민화 정책을 받았다고 교육까지 받는데, 그 우민화 정책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남자들은 만나면 정치나 스포츠 이야기를 하고 여자들은 연애인 이야기를 한다.
본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혹은 본인의 현재 관심사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오바마가 방한을 했을 때, 한국인 기자에게 질문을 하라고 했는데, 아무도 질문 하지 못했다는 사건은 유명한 일화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PcxfqOJpQ


좋은 학교를 나오고, 유명한 언론사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아무도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


한국에서 자라면 눈치를 보게 된다.


한국은 남과 같아져야 하는 문화다. 모든 학생들이 동일하게 수능이라는 결승점을 향해서 뛰어 가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생의 승자, 패자가 나누어 진다. 고작 20살 밖에 안된 이제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아이들이 인생의 패자라는 딱지를 먼저 받은 후 살아 간다. 그럼 승자들은 행복하게 살아갈까? 

나 또한 부자인지 알았던 흙수저 패자의 환경에서 살았기에 승자들은 행복하게 사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공부를 못 했었기에 의사, 변호사와 같이 잘나가는 삶을 살지 못하기에 모든 것이 내 탓으로만 여기고 살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부모 또한 나에게 의사와 변호사가 되길 바라면서 유학을 보내거나 고액 과외를 시키거나 하지 않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돈 조차 아까워 하며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만 바라고 있는 분들이었다. 인풋은 하지 않고 아웃풋만 바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인데, 그것을 등한시 여기고 내 노력만 탓했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내 노력이 부족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삼당 사락'이라고 하는데, 고등 학생이 8시간이나 잠을 잔 결과라고 생각을 했고 부족한 나를 채찍질만 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불행을 당사자들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돈이 없는 이유는 당신 때문이고, 불행한 이유도 당신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정신병에 걸린 것도 멘탈이 강하지 못한 당신 때문이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하게 져야 하니 변화를 하는 것이 두려워지면서 죄책감을 한껏 안겨준다. 

아니, 변화를 시도한다고 하면 죄책감이 함께 딸려 온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다르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


당연히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느끼는 감정은 달라야 하고 개구리아 올챙이적 생각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말을 하면서 변화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본인의 변하지 않음에 대해 안심을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만약 지금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다. 남편이 별로면 이혼을 할 수도 있고, 회사가 별로면 이동을 할 수 있다. 군대를 가기 싫으면 방법을 찾으면 되고, 친구가 별로면 절교를 하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선택을 하고 변화를 하는 사람을 욕하면서 비웃는다. 
더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내 용기 없음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몇 천 분의 1이 되는 가장 나쁜 케이스를 꺼내와서 이야기 한다.

또 하나, 선택을 못하는 이유는 욕심이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굉장히 큰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변화로 인해 내 현재 상태가 깨질까봐, 걱정을 한다.

인생은 참 아프리카에서 원숭이 잡는 법과 같다.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를 잡을 때, 입구가 좁은 항아리에 과일을 넣어 놓는다. 원숭이가 맛있는 냄새를 맡고 항아리에 손을 넣고 과일을 잡으면 입구가 작은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하게 된다. 결국 항아리에 손을 넣은 채 사냥꾼에게 붙잡히고 만다. 그렇게 먹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된다. 


인간의 인생도 이와 같은 것 같다. 입구가 작은 항아리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손을 넣은 채,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금 덩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이 돌이라고 생각하고 항아리에서 손을 빼고 자유롭게 인생을 즐긴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금' 이라고 확신을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고작 백년 밖에, 아니 우리가 자유롭게 거동 할 수 있는 기간을 생각해 보면 고작 6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천 년을 살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노년을 맞이한다. 

만약 내가 육아 휴직을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가진 보험금들을 해약해서 주식에 던져 넣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대책 없이 육아 휴직을 쓰지 않았더라면, 
식당을 차리지 않았었더라면,
이민이 두 번 취소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한국 사회의 세뇌에 찌들어, 필요하지 않은 곳에 돈을 쓰고 돈이 없다면서 찡찡 대고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두렵고 힘들었던 변화의 순간이 있었기에, 
이제는 돈 걱정, 아이들의 미래 걱정, 남의 시선 걱정, 노후 걱정, 의료비 걱정 
많은 걱정들이 줄어든 지금 순간이 오지 않았나 싶다.

Unsplash의Kelly Sikkema

캐나다에 온 다른 이민자들은 나보다 좋은 상황에서도 걱정과 불안을 느끼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냥 인생을 살면 되는 것이지, 술도 아니면서 무슨 주류, 비주류로 나누고 이 곳에서 까지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한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다음 달에 어디를 갈지, 일 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디에 있을지, 또 이년 후에는 무엇을 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도 않았고 확실한 것은 없다. 

일 년 전에는 내가 캐나다에서 사무직을 할지 생각도 못했고,
이년 전에는 우리가 캐나다에 올 지 상상도 못했고, 집 없이 일 년을 떠돌지 몰랐었다. 
삼 년 전에는 식당을 차릴 지 생각도 못했고,
사 년 전에는 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할지 알았었다.

부산 여행을 갈 때도 버스 시간표까지 확인 하면서 분단 위로 동선을 짜던, 계획적인 인생만을 살던 나였는데, 이렇게 불확실하게 살아보니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지금은 다음에는 어떤 재미난 일이 기다릴지 기대가 된다.  

캐나다는 노년에 최하로 240만원 부부 연금을 받는다고 유튜브에 올리니, 그것 때문에 이민을 갔느냐며 책망하는 댓글도 달렸었다. 대꾸하면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한국에서는 한 명당 120만원의 연금을 받으려면, 40년동안 330만원씩 월급을 받아야 한다. 무려 40년 동안 항아리에 손을 넣고 있어야 한다. 65세 이상까지 내가 살지 안 살지 어떻게 알고 노후를 위해 변화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가? 
한국은 노후 걱정을 하면서 60세까지 한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캐나다는 내가 여러 모험을 하다가 망해도 내 노후를 책임져 준다. 이제 막 모험을 시작하려는 30대 후반에게는 이보다 좋은 일이 더 있을까? 
돈은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되어야 하고 이 세계로 소풍 나온 우리는 많은 경험을 하고 즐기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Unsplash의Javier Allegue Barros

인생에는 답이 없다. 어느 곳으로 가야지 결승점으로 도달하는지도 없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고되다면, 잠시 멈추어서 지도를 펴 보고 방향을 다르게 정해서 가도 된다. 
하지만 내가 그 길을 이탈하려고 하면 앞에서는 빨리 오라고 소리치고 뒤에서는 빨리 가라고 빵빵 댈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는 것 또한 나의 선택 아닐까? 

이민이 정답이라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길에서 이민 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변화에 두려워 하지 말고, 남이 주체가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생각보다 무서운 것은 없고, 가장 최악의 상황은 지금 사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나를 의심하지 말고 믿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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