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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똘맘 Jul 04. 2024

내가 알던 캐나다가 전부가 아니었다!!

1년 동안 쓴 글을 보면, 내가 생각하던 캐나다가 내 삶에 녹아졌었다. 여유롭고 돈도 많이 들지 않고, 다른 이들과 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서로 도와주고 조금 느리지만 자연과 함께하며 건강하게 사는 삶을 꿈꿨었고, 지난 1년, SK 주에서 영주권을 진행하는 동안은 약간 불편하고 느린 삶...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번에 영주권이 끝나고, 첫 여행을 위니팩으로 다녀왔다.남편이 주 6일을 근무했었기에 사직을 한 후 첫 휴가를 가질 수 있었다. 첫 여행지를 위니팩으로 고른 이유는 인연으로 연결되신 분이 위니팩에서 연락을 주시고, 사랑을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을 잡았을 때도 선물이라고 하시며 택배로 옷을 붙여주시고 생각지도 못한 친절을 받았기에, 약간 무뚝뚝한 내 성격에 무엇이라도 내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위니팩에 1박 2일 일정을 잡고 다녀왔다. 

문제는 첫 휴가부터 5시간 반을 운전해서 가야 한다. 한국에서도 5시간 운전을 해서 여행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캐나다가 큰 나라라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꼈다. 

다행인 것은 운전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운전한 것은 아니고 남편이 5시간 운전을 연속해서 했지만 크루즈 모드와 함께 직진만 하는 코스(500KM 중 한번 우회전, 한번 좌회전), 거기다 가면서 만나는 차들은 200대가 안된 것 같다. 그만큼 운전 스트레스가 적었다. 

위니팩에 우리를 초대해 주신 분 댁에 도착을 해서 준비해 주신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낙 시골에 있었기 때문인지, 위니팩은 정말 도시였다. 아이들을 위해 트램폴린장에 데리고 가주셨는데, 금액이 한 시간에 1인이 $30이라 깜짝 놀랐었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4인 가족이 하루 종일 키즈카페에서 노는데  $19인데.. 물론 퀄리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지만 이것이 생활 물가가  달라지는 요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니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무서워졌다. 물론 돈이 많아서 부담 없이 갈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이니, 오늘도 "메뉴판을 보지 않고 음식을 고를 수 있고,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부를 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 

시골에서 살다가 온 나에게 위니팩은 굉장한 도시였다. 약간의 트래픽잼이 있었지만 초록 초록한 녹지대도 있고 현대적인 멋도 있는 도시인데다 한눈에도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살던 SK 주에서는 아시안들이 얼마 없었는데 오히려 노란 머리의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아프리카, 아시안 사람들이 많았다.

위니팩에 있는 가족과 1박 2일이라는 좋은 시간을 보낸 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위니팩에서 유명하다는 인권 박물관과 그 앞에 있는 The Fork market을 방문하여 시간을 보낸 후 짧은 여행을 마감하고 또다시 500km를 달려서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도중 작은 마을 주유소에서 쭌이가 "엄마, 몇 시간 남았어?"라고 물어봐서 "2시간 반 남았어!"라고 말을 하니, "많이 남았네~ 힘들겠다."라고 말하는 캐나다 총각을 만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어떻게 한국말을 하느냐고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한국에 몇 년 살다가 왔었다고 했다. 

다시 SK도착 후 하루 쉬고 다음날, 짐을 한가득 싼 후 새스커툰으로 출발했다. 한 차에 우리의 짐이 모두 있는 것을 보니, 미니멀 라이프로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에드먼턴이지만 8시간 반 운전하는 것이 벅찰 것 같기도 하고, 가는 김에 새스카툰을 지나가기도 하여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새스커툰을 들려서 1박 하기로 했다. 

한국을 떠나 온지 1년 만에 호텔이라는 곳에서 지낸다. 아이들은 호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여유로운 문명 생활을 즐겼다. 이날이 7월 1일 캐나다 데이라 아이들과 함께 구경을 갔다. 

솔직히 새스커툰이 이렇게 매력적인 도시인지 몰랐었다. 리자이나는 느낌이 조금 우울한 느낌의 도시였는데, 새스커툰은 조금 더 역동적이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새스커툰이 조금 더 위에 있는 곳이라 추울지 알고 되도록 리자이나 쪽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새스커툰을 직접 보니, 차라리 리자이나보다 새스커툰이 일자리가 많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인파가 다운타운에 몰려 있었다. 

푸드트럭에서 그렇게 맛있지 않은 음식도 사 먹고, 무료로 나누어 주는 컵케이크도 받아왔다.

한 번에 3~4천 원 하는 놀이 기구? 도 타고,

얼음을 주고, 시럽을 부어먹는 슬러시도 사 먹었다. 시골에서는 선택을 하면 주인이 시럽을 부어주는데, 얼음만 갈아주고 본인이 맛을 신청해서 시럽을 부어먹는 것이 신기했다. 역시 도시다. 

그렇게 간단히 1박을 마친 후 새스커툰에서 에드먼튼으로 5시간 반이 걸려서 이동을 했다. 
SK 주, 마니토바주에서는 고속도로가 1차선 밖에 없었는데 차가 많아서 그런지 2차선이었다. 
시골을 막 출발해서 도시로 가는 시골 쥐라 그런지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에드먼튼에 거의 도착했는데, 눈앞에 이것이 한국인지 캐나다인지 모를 교통체증이 다가왔다. 
이때부터 내 표정은 상기되었으며, 미간이 보톡스를 맞은 양 마비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생활하던
캐나다가 아니네??


도로가 한국의 분당? 동탄? 같은 도시적인 분위기에 차들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SK 주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이민자들도 넘치고 넘쳤다. 이 새로운 분위기에 환호하는 것이 아닌 내가 이곳을 꼭 가야 하는지 복잡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복잡한 삶 속에서 살려고 캐나다 온 것이 아니었는데.....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냥 SK 주에 다시 가버릴까?


아직 유효한 Full time job offer 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내가 일을 하고 남편을 공부시킬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는 몇 년 후에 이런 복잡한 곳으로 다시 와야 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아이들에게만 느끼라고 모든 것을 접고 다시 가야 하나?
아니, 아이들에게 대학이 꼭 필요한가? 
그럼 시골에서 평생 살게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나? 
대체 나는 무엇을 원하고 캐나다에 왔었는가?

어차피 아이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 것인 것을 알지만 부모로써 어떤 환경에 노출을 해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캐나다에 왔는데, 다시 말이 안 통하는 한국에 돌아가는 느낌이라 2일 동안은 패닉에 빠졌었다.
적어도 시골에 있던 내가 생각하던 에드먼튼은 이곳이 아니었다. 대체 나는 무엇을 꿈꾸었던가? 
한국의 답답함이 싫어서 한국을 떠났는데, 이제는 말이 안 통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어찌 표현할까? 이 단계에서 역이민을 생각하는 것인가? 


나는 한국 생활이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도시 생활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에어비앤비 하나 잡고 왔는데,,, 생각이 많아진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영주권을 받은 후 영주권 준비 때 보다 더 크게 답답한 순간이 다가온 것 같다.


Go or Back?


모든 일은 간단하다 가거나 돌아가거나 내가 선택을 하면 된다. 남편도 선택을 하라고 내 의견에 따르겠다고 하는데, 눈앞이 깜깜하다. 

Unsplash의Chris

이제부터 내가 이어갈 이야기는 1년  전 이야기와 정말 다를 것 같다.

내가 지냈던 1년이 캐나다 생활이었나? 아니면 이제 다가올 시간이 진짜 캐나다 생활일까?
둘 다 맞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하나? 인생에 답이 없듯이 내 질문에도 답은 없겠지만, 그 답 없는 인생을 묵묵히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 보려고 한다. 안 맞으면 나중에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은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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