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해야하는 이유
내 안의 믿음들이 유리컵을 땅에 떨어트린 것 처럼, 여러갈래로 튀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 텅 빈 공간에, 나만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학교는 실제 삶을 준비시키는 곳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를 규격화하고 복종을 가르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다. 이는 창의성과 개성을 억압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 중심의 틀에 개인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유는 사람의 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유발 할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대장암 많이 걸리는 이유는 락토스 소화 능력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이를 알지 못하고 우유를 좋은 음식이라 생각하고 소비하기에 소화문제와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 축적 된 결과 일 수도 있다 - 한국인의 70-80%가 락토스 불내증을 겪는다. 2023년 Journal of Nutrition 연구.)
*미디어는 “완벽한 삶”인 럭셔리 여행, 이상적 외모, 성공 스토리들을 보여주며 비교와 욕망을 부추기며 사람을 통제하고 여러 욕망을 자극하여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든다. 성공에 대한 갈망, 외모에 대한 불안, 타인의 인정 욕구를 자연스럽다고 주입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복잡한 감정은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세뇌 된 것이다.
*보험은 “미래를 지킨다”는 안정감으로 포장되어 마케팅되지만, 복잡한 약관과 낮은 지급률은 보험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개인의 실질적 보호보다는 기업의 수익을 위해 설계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당해 불공정한 계약에 묶이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함정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미덕으로 포장하며 “열심히 일하면 행복해진다”고 설파하지만, 이는 자본가 계층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순응시키기 위해 만든 굴레에 불과하다. 실제로 과도한 노동은 행복이 아니라 소진과 불안을 낳으며, 진정한 자유와 충족은 노동 중심의 삶 너머에서 발견된다.
*한국 사회는 SKY 대학을 성공의 보증수표로 여기도록 설계되어,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탐구해야 할 시기를 대학 입시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입학한 명문 대학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숨어있는 현실이다.
*국가와 시스템은 개인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이익, 권력유지, 관료주의를 우선시 한다.
*의사와 변호사는 “정의와 생명을 지키는 고귀한 직업”으로 포장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의사와 변호사는 정의의 추구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일 한다. 그들도 다른이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돈과 지위 그리고 행복을 쫓는 참가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 사회는 결혼과 가정을 행복과 성공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하며, 결혼을 “성공한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강요한다. 그러나 성숙한 관계와 책임감을 배우지 못한 많은 가정은 오히려 불행과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개인의 성찰과 준비 없이 사회적 압박에 따라 결혼을 선택하는 관행, 그리고 결혼 후에도 지속되는 비현실적인 기대와 책임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기술의 발전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명목 아래 추진되지만, 실제로는 중독과 감시를 강화하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 아이들은 대화와 놀이를 잊고 놀이터에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어른들 역시 디지털 세상에 갇혀 진정한 소통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누군가가 설계한 사회의 "기본 설명서"를 기준으로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장미빛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 성공, 행복, 안정의 약속이 하나둘 내 안에서 빛을 잃었다.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거인국, 라퓨타와 라가도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니었다. 그곳의 어리석음과 허상은 내가 살아온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처음 이런 감정을 느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여전히 돈과 허상을 쫓으며 달렸다. 발밑의 세상이 거짓으로 가득한데,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비웃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처음에는 불안감이 나를 감싸안았다. 이 불안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명상을 진행 하였는데, 마음 속에서 온갖 소리가 올라와서 불안함이 증폭되는 결과만 가져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요가 선생님께 질문했더니,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는 명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명상을 그만 두어도 실제로는 삶이 명상인지라, 혼자 걸을 때, 침대에 누워있을 때, 마음의 소리들이 계속 시끄럽게 울렸다.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명상 속 불안은 마음이 텅 비었기 때문에 생긴 소용돌이였다. 억눌렸던 생각들이 터져 나왔다. 그 생각에 답하지 말고, 오직 바라봐야 했다. 답을 하면 짓누르던 과거가 되살아난다. 대신 그 생각에 질문을 던졌다. 한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꼬리를 물다 보면, 몇 번의 물음 끝에 답이 나왔다.
내가 아는 것은 없구나...
세상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지만 내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로 자신을 채우고 싶어 했다. 남들이 만든 쓰레기들로 가득했던 내 안은, 이제 텅 빈 채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위태로웠다. 아무것도 채워넣지 않는다면, 이 공허한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그런 조심스러운 경계에 서 있었다.
그동안 내가 믿고 따르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다른 사람들이 쫓는 것들을 나도 함께 따라야 하는 걸까? 하지만 한 번 흥미를 잃고 나니, 세상의 것들이 더는 재미있지 않았다.
돈, 명예, 사람들의 관심, 훌륭함, 좋은 것들… 그 어떤 것도 더는 쫓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내게 조금씩 이해되고, 깨달음이 오는 것은 불교였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나는 정말 절로 들어가야 할까?
혹시 다른이가 과거의 나 처럼 마음이 외롭고,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축하해주고 싶다. 만약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세상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허상을 쫓으며 바쁘게 살거나 그들이 곳곳에 뿌려 놓은 덫에 걸려서 허우적 대고 있지 않다는 신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신호를 찾은 순간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너무 가벼워지니 날라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처음 마주하는 감정이었다. 우리는 외로움, 공허감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하도록 세뇌 받았기 때문에 자유를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한다. 이것은 부정적인 신호가 아니라 자유의 신호이고, 다른 길로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을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깨달음을 얻기까지 본격적으로는 7년, 간접적으로는 티비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후인 20년이 걸린 것 같다. 지금은 두려움은 없어지고 많은 것이 자유로워졌다. 자본주의의 쓰레기가 치워진 자리에서 이제 내 공허함 마음에 내가 채우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가져오면 된다. 내 생각을 비웃는 사람들을 멀리 해라.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쫓고 있는지도 모르고 굴레를 맨 채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굴레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며 자랑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웃으며 박수를 쳐주며 마음 속으로는 가여워하고 잠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자. 굴레를 풀기 위해 다가가서 도와주면, 그들은 두려운 나머지 뒷말로 나를 내리 칠 것 이니, 다가가서 도와주려 하지 말아라. 나도 이 사실을 모를 때는 몇번 차였다.
나에게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오색빛깔 쓰레기 대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있는 빈 그릇이 마련 되었다. 마사지사라는 길을 시작하면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을 화학적 요법의 의학이 아닌 자연치료적인 방법을 연구 하면서 쌓아가고 또한 글쓰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여정을 남기며 배출의 욕구 또한 해결을 할 것이다.
마음이 텅 비어서 공허 하다는 느낌은 집착을 버렸다는 것이다. 사회가 깔아 놓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의 인생은 시작 된다.
“고통은 너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 그 껍질이 깨져야 내면의 빛이 드러난다.”
By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