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생각을 시작 할 때에는 내가 우주의 먼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내 삶의 이유가 사라져버렸었다. 무엇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소멸을 뜻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거지?
인간의 삶을 생각해보면, 부질 없다. 삶이 있다는 말은 죽음이 있다는 말과 같다. 삶과 죽음은 마치 아무것도 연관이 없는 두 점이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져있는 것 처럼 서로가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라는 선이 생기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선이 짧고, 누군가에게는 이 선이 길 뿐이다. 하지만 짧다고 불행한 것인가? 길다고 행복한 것인가? 죽음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이 선의 길이가 의미 없어졌다.
처음에는 삶이 힘든 나머지, 꼭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했지만, 죽음이 있음을 인지 하고, 내 삶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하며, 나에게 주어진 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매일 수없이 반복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질문이 시작되면서는 이 세계가 지옥이 라는 생각으로도 들어갔고, 성당과 교회를 가보며 이 선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도 들어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나와있길..." 이라고 말을 하며 책속으로 파고 들었기에,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럼 왜 인간은 악한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 들여다 보니, 인간이 지칭하는 '악'이라는 것은 '자연'의 또 다른 말이었다. 누군가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들을 통제 하기 위해 '악'이라는 이름을 붙여놨기에, 자연스러움이 '악'함이 되어, 서로를 '악'하나며 물고 뜯고 미워하고 있는 사회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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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에는 선과 악은 허상이고, 누군가에게 받는 것은 '선', 못 받거나 뺏기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을 하여 글을 썼는데, 2025년 11월에는 '악'이라는 것이 인간을 통제 하고,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누군가의 설계로 인해 우리는 가난하고, 병들어간다.
'흥부와 놀부', '신데렐라' 이런 현실을 왜곡하는 동화를 어려서 부터 들려주면서 노력하지 않고 착하고 비련하게 살고 있으면 누군가가 큰 복을 줄것이라고 굳게 믿게 하여, 현명하게 사는 지혜가 아닌 권선징악을 주입하며, 노력을 하며 현명하게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제비가 어디서 떨어지는지만 봐야 하는, 즉 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살도록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토지조사사업'이라 하며 법과 제도 정비 차원으로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대규모로 빼았었던 법이 있다. 억울한 일이지만 그것을 '법'이고 '법'은 '선'한 행동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빼앗긴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뻔이 알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현재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나는 '선'이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면, 30만원씩은 가족을 위해 써야 하는 것이 '선' 이라는 교육을 부모로부터 받아왔다. 30만원을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내 독립을 위해 모으거나, 영어 수업을 듣거나 내 몸의 힐링을 위해 요가 수업을 듣거나 마사지를 받는다면 그것은 사치이고, 부모님의 해외 여행에 돈을 쓰면 '선'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기에, 이 속에서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아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좋은 행동', '나쁜 행동' , '죄책감' 으로 인해 발전이 아닌 쇠퇴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 남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선'인가?, 잘 먹는 것이 '선'인가? 친구들을 많이 만드는게 '선'인가?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악'인가? 김에 밥만 먹는 것은 '악'인가? 친구가 없는 것은 '악'인가?
내가 해야 하는것은 '선'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자연계에서의 동물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한다. 연어는 자신의 종족 번식을 위해 수컷이 암컷으로 변하기도 하고, 암컷이 수컷으로 변하기도 한다. 새끼들이 어미를 먹고 자라는 것 조차, 종족 번식과 유지를 위한 선택인 것을 사람들은 감정의 프레임을 씌워서 '슬픈일', '불쌍한 어미 연어' 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의 감정 또한 수 많은 프레임을 씌워놓아서 무엇이 진짜 감정인지 모르겠다.
짧지만 캐나다에서 생활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없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통제' 그리고 '화'라는 감정에 대한 프레임이 많이 쓰여져 있다고 느낀다.
'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정의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매일 수 많은 '악'함과 마주하게 되고, 수 많은 '악'을 행하며 살아 가게 되거나, '악'을 행하며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정신병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선'은 다른이에게 '악' 이 될 수 있고, 나에게 '악' 한 일은 다른이에게 '선'이 될 수 도 있다.
오늘의 '악'은 내일의 '선' 이 되며, 오늘의 '선'은 내일의 '악' 이 되고, 변화가 많은 이들은 이 선과 악이 변화 무쌍하지만 변화가 없이 '선' 과 '악'이 일정하게 평생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 변화를 알면 인생이 한결 가벼워 진다.
여기까지 오는데, 6년이 걸렸다. 생각은 매일 변해 가고, 나 또한 변화 한다. 또 다른 6년 뒤에는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할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글을 쓰는게 우습기도 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그것이 바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옳은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무엇인가는 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