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몇억이 있었다는 사람 말은 듣지 말아라.
누구나 다 돈 걱정 없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도 간절하게 잘 살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다.
근데 어떻게 잘 살아야 하나 생각을 해보면 꽉 막힌다.
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부자가 된 것처럼 상상을 하라고 하는데,
막상 부자가 된 상상을 하려니 깐 호캉스, 호텔 뷔페 밖에 생각이 안 난다.
미디어에서 그려주는 부자는 대부분 바람피우고 술 먹고 배신하는 방탕한 모습만 그려주기에 그런 부자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주위에 부자도 없고 눈으로 본 부자의 삶은 없으니 시각화하라는 말이 생각보다 힘이 든다.
한 8년 전쯤인가, 내가 자동차 회사 1차 협력사에서 일할 때 자동차 회사에서 협력사의 여직원까지 초대해서 호텔에서 밥 주고 강연을 들려준 적이 있다. 난 그때 처음으로 호텔에서 밥을 먹게 된 것에 설렘을 안고 참석했다. 나름 호텔과 어울리는 옷을 입고 한껏 멋을 낸 후 지하철을 타고 호텔에 도착했다.
강연장에 도착하여 내 자리를 찾은 후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의외로 수수하게 입고 화장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나중에 안 웃긴 사실은 한껏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협력사 여직원 들이었다.
그때의 어린 생각으로는 차려입었던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자존감 문제였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갈 필요가 없었는데 무시 당할 까봐 이상한 곳에 초점이 맞춰있었다.
강의를 듣는 중에도 호텔 식사에 대해서 상상을 하며 내 정신은 온통 뷔페에 집중되었다.
드디어 점심 시간이 되어 남들은 샐러드 위주, 한식 위주로 조금씩 가져다 먹는데, 나는 메인 요리만으로 그득히 쌓아와서 점심을 즐겼다. 디저트 또한 모든 종류를 쌓아와서 커피와 함께 즐겼다. 밖에서 이런 디저트를 먹으면 한 접시에 몇만 원이라고 돈을 세며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5천 원을 번 것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먹고 또 먹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어느 은행 여자 부회장이 강의를 했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나는 누군지 모르지만 안다는 것처럼 함께 환호를 했다. 그 부회장 강의의 결론은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라는 말이었다. 자신은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닐 정도로 열심히 살았고 주말에도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공부를 하러 도서관을 갔다고 한다. 프랑스어를 하고 싶으면 프랑스로 달려가서 몸으로 부딪히며 3개월 만에 프랑스어를 배웠다며 적극적으로 살라는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또 딴 세상 이야기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많이 먹어서 체한 몸을 딱 붙는 정장에 하이힐로 이끌고 집에 왔다. 그날 들은 대부분의 강의는 나의 일상과 맞지 않았다.
대학원 학비가 얼만데 거길 또 다니는지, 지하철을 타고 왕복 4시간 거리인 서울과 안산,
나도 프랑스어를 몰라도 프랑스에 갈 수는 있지만 티켓 살 돈과 거주비용이 없어서 못 가는 진짜 현실,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 놓고 저녁 시간 공부를 할 수가 없는 워킹맘,
그렇게 그 이야기는 그 부회장의 자랑으로 여기고 인생을 살았다.
지금 생각의 여유가 생긴 후 다시 생각을 해보니, 그 여자가 맞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여자는 이걸 핑계라고 말하겠지만, 현실 속의 우리가 보기엔 그 여자가 자랑을 하는 것 같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
마리앙뜨아네트가 한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입장으로 밖에 생각을 못 한다. 매일 이어지는 만찬 속에 살아온 여자는 빵과 고기가 흔한지 안다. 사람들이 빵이 없어서 굶어 죽겠다고 말하니 그럼 고기를 먹으면 되지 왜 저리 난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녀가 나쁘거나 자랑을 하고 싶어서가 아닌 우린 모두 디폴트 값이 다르다.
자존감이 없고 시야가 한정되어 있는 우리는 그들을 욕하고 미워하고 질투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보는 세상이 풍부한 세상이니 순수한 의도에서 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기계발 책을 백 권 넘게 읽으니 이제야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듣고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참고를 하고 다음 단계에서 실행을 해야 하는지를 조금이나 알 것 같다. 이에 대해 나는 크게 4가지 사람의 유형에 대해
이런 사람의 성공 스토리는 일반인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첫째, 빚이 몇 억이 있던 사람.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보기에 불쌍한 빚이 몇억이 있던 사람을 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은행에 가보아라,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몇 억을 빌려주지 않는다.
빚도 공부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에 빚을 마주보지도 은행 시스템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성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마련했는지도 보지 못한다.
내가 레버리지를 해보려고 신용 대출의 문을 두드렸을 때, 꼴랑 3천만 원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나의 신용은 3천밖에 안되는구나를 체감한 적이 있다. 몇억의 빚이 있다면 그 빚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업을 했거나 투자를 했거나 무엇이든 도전을 하고 생긴 빚이라 평범한 일반인과 부의 그릇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빚 10억이 있었지만 금방 메꿀 수 있고 그것이 성장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빚 몇억 있던 사람은 자신의 스토리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그 앞 스토리를 말하지 않는다.
둘째, 외국에 있었던 사람.
몇백억, 몇천억의 매출을 올린다는 기업 사장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 해외에서 산 경험이 있거나 해외에서 돈을 벌었다. 즉 우리와는 다른 교육을 받았고 경험이 많다. 한국의 공교육과 외국의 교육은 많은 부분 차이가 있다고 하니 그들의 머릿속 회로는 한국의 정형화된 머릿속 회로와 다르다.
한국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입 다물고 '왜?'라는 질문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강요받으며 20년 동안 살았는데, 갑자기 20살이 된 후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다시 수동적인 삶으로 만들어 줄 학교, 학원, 회사로 들어간다. 나의 인생을 정면으로 맞서는 법도 못 배웠고 한 번도 내 인생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외국은 다르다 카더라.
또한 그들은 두려움을 극복해 본 경험이 있다. 외국에서 살아남기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가변적이니 그 변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세계에서 가장 부자 민족인 유태인을 보면 수많은 나라에서 살아야 했기에 살기 위한 것들은 배워 지금의 명성을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한다. 핍박과 차별을 이겨내고 생존한 해외파와 안전한 온실에서 살아온 한국파의 디폴트는 다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외국에 사는 사람은 '다름'에 대해 많이 경험을 해왔고 그 '다름'의 기회를 보고 포용하는 능력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경쟁만을 강조하며 살아와 대학교 조별 회의 때도 협동하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보면 외국에서 성장하며 살아온 환경은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셋째, 부모님이 사업한 사람.
고작 작은 식당 하나를 일 년 동안 운영했을 뿐인데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돈의 흐름도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만족시킬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나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본다. 겸손이 최고의 덕목이라는 것도 이제서야 느낀다.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도 느끼며 사람들을 어떻게 협력 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리더십을 쌓을 수 있을까? 돈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 보고 변화를 수용하며 대처한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며 즐기기도 한다. 손님을 보고 직원을 보고 주위 사람을 보며 그리고 나를 보며, 논어를 집어 들고 옛이야기를 음미하며 현실에 적용하고 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이야기를 곱씹어 보고 인생의 깊이를 느낀다.
구멍 가계를 차렸던 햇병아리가 이러한들 사업을 했던 부모들은 더 깊이가 있지 않을까.
그런 부모 밑에서 기본 값을 쌓은 사람과 회사 불평불만을 하는 회사원 부모를 두고 기본값을 쌓은 사람의 역량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을 따라가려면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나 스스로 나를 키워야 한다.
넷째, 가정이 화목한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이 화목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가 겪은 부모는 우리 부모밖에 없고 부모의 희생을 보며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면 산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엄마가 이중언어를 많이 사용했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행동을 못하며 사람을 경중으로 나누고 이기적이지만 혼자서 이타적이라고 생각한 채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래서 나를 찾기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쉽게 생각을 하자면 '사랑의 매'가 대표적이다.
사랑하면 결코 때려서는 안 된다. 때리면서 가르치는 것은 동물이다. 말 못 하는 아기 때부터 아기가 부모 자신이 용인하는 범위를 넘어서 행동했을 때 아이의 엉덩이를 때린다면 그것은 가축을 기르는 것과 다름없다.
아이가 주스를 따르다가 컵이 깨졌을 때, 그럴 수 있다고 끄덕이고 함께 치우자는 부모와 아이에게 그럴지 알았다고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않냐고 소리를 지르며 등짝을 때리는 부모는 차원이 다르다.
등짝을 맞으며 자란 아이는 잘 못 되는 것에만 집중을 하여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에서 멀어진다.
반대의 아이는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을 한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부딪혀보고 수습을 하면 되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형제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매로 다스리고 벌을 주고 소리치고 화를 내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둘의 싸움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고 어떤 행동이 싸움의 근원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 해 결책을 찾는 부모가 있다.
아이와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함께 하는 부모와 아이에게 귀찮다며 나한테 말 시키지 말라고 교육용 티브이를 틀어주고 교육용 핸드폰을 보여주는 부모는 다르다. 그들은 교육용을 틀어줬다면서 애써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버리려고 하지만 아이는 더욱 수동적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 시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살던 나에게 내 친구가 엄마가 말한 이야기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여자는 갈고 닦이지 않은 원석이래,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보석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돌이 될 수도 있대.
한창 노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그 이야기를 동화 속 이야기로 치부하였지만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충격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내가 한 엄마와의 인생 지침에 대한 대화는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고 돈 잘 버는 남편 만나서 본인 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는 이야기가 끝이었고 드라마 이야기, 뉴스 이야기, 돈 아껴 쓰라는 이야기, 누구는 대기업 들어갔다는 이야기, 누구는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사주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 전부였기에 모든 가정이 비슷한지 알았다. 하지만 자식이 생기고 세상의 옆면을 보고 난 후 이것은 잘못된 것이고
성공 한 사람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부모님의 신뢰,사랑과 믿음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공경에 처하거나 의논할 사람이 필요할 때 부모님의 집으로 향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결 혼 전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저녁에 술을 먹고 다녔고 임신했을 때조차도 남들은 쉬고 싶고 편하게 있고 싶어서 간다고 하던 부모님 댁에 한 번도 쉬러 가지 않았다. 본인들의 인생을 희생하여 키워주셨지만 비교, 질투, 매, 잔소리, 걱정으로 얼룩진 부모님의 집은 나에게 편한 곳이 아니었다.
웃긴 것은 대부분의 성공 스토리는 이 4가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썼기에 현실의 우리가 그들을 따라하기는 힘들다. 그들은 빚이 몇 억이 있고 외국에 나가서 살고 사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자랐다.
이 4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도전해 볼만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하나도 없었다.
깨닫고 난 뒤 나의 이번생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자식의 경우는 다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위에서 말한 4가지는 모두 내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못받은 것에 대해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내가 원망 받지 않을 일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사이에 나는 나의 디폴트(기본값)를 바꾸려고 한다.
가끔 까먹는 나이를 찾으려고 네이버에 "86년생 나이"를 치는 37살, 애 둘 엄마.
아마 지금 나이에 내 디폴트를 바꾸려면 최소 몇년 이상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책 읽기 시작하고 변화하기 시작한게 34살, 3년 전 인것을 감안하면 늦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 된다.
그렇다고 성공에 목메거나 한는 억척스러운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멍청하게도 이 사실 때문에 6개월 우울증에 빠졌었고 결론은 재미나게 살자는 것이다.
그럼 왜 자식에게 성공의 길을 달릴 수 있도록 디폴트를 깔아주려고 하나? 천원 한장에 하루 종일 화가나고 사람을 미워하던 가난했던 삶과 비교 했을 때 길가다 폐지를 줍고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보이면 만원짜리 한장(아직은 이 그릇이다.) 내밀며 식사 꼭 챙겨 드시라고 말하며 지나 갈 수 있는 내가 그리고 내 아이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나와 나의 가족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나가간다.
만약 성공한 이들의 인생을 보며 따라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기본값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기본값을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