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자신이 특별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는 객관적으로 똘끼 충만했던 것 같다. 좋은 말로는 창의적이고 당당한 아이, 나쁜 말로는 나대고 겁대가리 상실한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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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똘끼가 발현되었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보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유 모를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 괴롭힘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옆에서 종알대며 나를 괴롭히던 친구의 귀싸대기를 때렸다. 그날은 그 여자애를 좋아하던 다른 남자애들과 몸싸움을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 후 나에 대한 괴롭힘은 사라졌고 나는 갑자기 나대는 아이로 변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담임선생님과 싸워서 엄마가 소환된 적이 있었다.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안 먹는 애들이 많아 자기의 번호를 우유갑 위에 쓰고 버리라고 했는데, 내 번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나는 우유급식 나오면 즐겁게 3초 만에 마셨었고 다른 애들이 먹기 싫다던 우유까지 마시던 학생이었는데 그날따라 우유를 마시고 번호를 안 썼었나 보다. 아니면 번호가 지워지거나 다른 아이가 내 빈 우유갑에 자신의 번호를 썼다거나 여러 상황이 있었겠지만 나는 분명히 그날 우유를 마셨었다. 너무 억울해서 마셨다고 말하면서 악을 쓰며 선생님과 싸웠다. 급기야 학생주임 선생님까지 오시고 담임은 눈물을 흘리고 엄마에게 학교로 오시라는 전화가 갔다. 참 이해가 안 되지만 나는 대드는 아이로 낙인찍혔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여자애들이 항상 하는 돌아가면서 하는 왕따 놀이에 표적이 된 후 쉬는 시간의 인간관계를 무시한 채 교과서를 따라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반에서 20등 하던 성적이 1등으로 변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데 춤을 춘다고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다. 선생님과도 친해서 교사용 문제집을 많이 얻어서 풀었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놀러 가서 간식을 먹고 오기도 했다. 또 학교 선생님께 방학 때 무료로 과외를 받기도 했다. 개인 과외를 해주신 분도 있고 그룹과외를 해주신 분도 있고 과외가 끝난 후에는 밥도 사주셨다.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지만 과외를 해주신 분들은 다 여자 선생님이었다. 특히 무서운 선생님일수록 나와 더 끈끈하게 친했다. 교장선생님과도 친해서 가끔씩 교장실을 지나가다가 다과를 달라고 들어가서 앉아 있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선생님과 잘 지낸 것은 아니다. 이쁜 아이들을 차별하던 남자 선생님과 열렬하게 싸우기도 했었고 그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소극적으로 누워서 보이콧하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나로 인해 열이 받아서 책상을 집어던질 뻔했다. 나에게 책상을 집어던질 뻔한 선생은 내가 졸업한 뒤 몇 년 후 학교에서 잘렸다고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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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 후에는 학원 강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춤 공연도 즐겼으며 클럽을 사랑했다.
클럽을 가면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부담스러운 무대 위에 올라가서 미친 듯이 혼자 춤추고 오는 게 좋았다. 학과 회장을 했을 때는 교수님과 술을 마시기도 하고 여자가 착석하는 술집에 함께 가서 마담 언니랑 수다도 떨고 왔었다. 새벽까지 술을 같이 마시고 혼자 1교시를 참여한 교수님께 전화해서 술병 나서 학교 못 간다며 푸념을 하기도 했다. 나 같은 똘아이가 있어서 재미있었는지 조교는 점심시간 때면 나를 불러 교수님과 식사하러 학교 밖을 나갔고 어느 날은 교수님이 강사거나 어디 사장 같은 대학원생들과 강릉을 가는데 따라가기도 했다.
직장인이 된 후로도 나의 똘끼는 변함이 없었고, 나보다 열 살이 많은 대리들이 8시까지 눈치 보며 퇴근을 안 하고 있는데 나 홀로 일 끝났으니깐 칼퇴를 한다고 큰소리치며 퇴근 시간이 되면 후다닥 집으로 갔다. 고객과의 어려운 터지면 회피만 하려고 하는 무능한 팀장을 뒤로한 채 대표에게 찾아가 내 의견을 설명했다. 그렇기에 팀장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처음에만 싫어했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에 흡족하여 내 일을 터치하지 않았다. 일찍 출근하여 아침마다 커피 두 잔을 타서 대표님 방에 들어가서 30분 동안 수다 떠는 것이 일상인 이상한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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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시댁에서도 당연히 똘끼는 발산되었지만 아직까지 참는 부분이 많다. 시어머니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쓰라고 했을 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왜 남편은 내 동생한테 반말하고 ~님이라고 하지 않는데 왜 나는 그래야 하냐며 싫다고 말했다. 덕분에 결혼한 지 10년이 된 지금까지도 편하게 대하고 있다. 어린 사촌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나와 동갑인 남편 사촌한테는 ~씨라고 부르고 있다. 안부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던 시어머니께 "저는 전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어머니께서 연락하시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하세요! "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잘 연락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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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후에는 세상에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초기에는 이해가지 않는 행동을 따라했지만 아이가 클 수록 정상적이라고 하는 부모들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잠투정하는 아이에게 화를 내며 술을 마시는 부모들, 자기가 귀찮은 것에 대해 안된다고 하는 부모들, 아이가 넘어지면 호들갑 떠는 부모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생각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는 부모들, 아이 옷이 더러워질까 봐 뛰어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 놀이공원에 와서 한 번 더 타고 싶다는 아이를 혼내서 울리는 부모들, 놀이공원에서 줄을 기다릴 때 아이를 방치하고 핸드폰하고 있는 부모들, 식탁에서 아이에게 핸드폰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밥을 떠먹여주는 부모들, 아이에게 자라고(공부하라고) 하면서 테레비젼 보는 부모들, 필요도 없는 물질로 사랑을 표현하는 부모들, 형제를 경쟁시키고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부모들, 5살에게 한글 학습지를 시키는 부모들, 7살 아이에게 학원 5개를 보내놓고 걱정하는 부모들, 내 아이가 살쪘다고 놀리는 부모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아이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부모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공포감을 심어주는 부모들, 아이에게 본인이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어 무서움을 심어주는 부모들, 아이가 말을 하면 말 시키지 말고 저리 가있으라고 하며 핸드폰 하는 부모들, 아이의 학원 개수가 자신의 부를 보여주는 것처럼 자랑하는 부모들,
과연, 내가 또라이인가 세상이 또라이인가?
창피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힘든 일상에 대한 푸념과 자랑과 남들 욕을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리에서 자꾸 헛말이 나온다. 결혼할 때 TV는 혼수 목록에서 제외하고 아직까지 사지 않았다.
내가 무엇이 남들과 다른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본 적도 있다.
첫째로, 나대는 것에 있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춤을 추거나 처음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남이 나를 어찌 볼지에 대한 생각보다 그냥 하고 본다. 생각이 짧은 걸까...
둘째로, 공포에 대한 강도가 다른 이보다 약하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일에 걱정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걱정 할 시간에 행동부터 하고 본다. 책을 읽고 싶어서 휴직을 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식당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위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 후 식당을 매매했다는 소식에 더 깜짝 놀랐고 이민 간다는 사실에 말도 안 된다고 말을 했다. 주위 사람들은 우리를 걱정했다. 휴직할 때는 휴직 걱정, 식당을 연다고 했을 때는 매출 걱정, 식당을 닫는다고 했을 때는 식당을 안 하고 뭐 해서 먹고 사냐는 걱정, 이민을 간다고 하니 영어를 잘 하지 못하고 연고지 없는 곳에서 어떻게 지내냐는 걱정 중이다. 그들은 우리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술 먹으면서 말할 안줏거리를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휴직할 때 책 한 권 사주지 않고 식당을 차린 1년동안 딱 1번 방문하고 이민 간다고 했을 때 영어회화책 한 권 사주지 않은 것을 보면 무료한 삶에 재밋거리를 찾는 것 같다.
그래도 내 기준에서, 나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 같다. :)
갑자기 나의 이 똘끼를 다 맞춰주는 남편한테 감사하다.
오늘도 새벽 6시 30분에 나가야 하는 남편에게 일어나자 마자 5시 40분에 동네 한바퀴를 돌자고 했는데 졸린 눈으로 옷만 갈아입고 함께 나갔다가 6시 10분에 집에와서 밥먹고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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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몇 회 동안은 내 똘끼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쓰려고 한다. 2년 동안 내 우울증의 근원이었던 죽음, 자본주의, 인간의 이기심, 인간과 동물의 차이, 자연의 이치와 효 사상, 노동하기 싫음, 참 사랑, 우주의 기운, 목적을 잃어버린 삶,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따위의 것들을 써보려 한다. 이민을 간 후는 그곳의 교육, 놀이, 인간관계 같은 한국과 다른 일상들에 대해 외국 시골에서 살면서 쓸 것 같다. 자기 성찰과 발전이 주를 이룰 것 같다. 날씨가 우중충한 오늘 같은 날, 참 책 읽기 좋은 날이다. 오늘은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들고 카페에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