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제이(J)의 흔적들

by 쑨 Seun



1985년 늦은 가을,
나는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을까?



40년째 답을 찾고 있지만 아직 모르겠다. 인생 전반전을 갈무리하는 마흔쯤엔, 사회가 선망하는 사람이 돼 있을 줄 알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매순간 진심이었으니 괜찮다. 생각해 보면 사는 데 별것이 필요하진 않다. 빌어먹지 않을 정도로 일하고, 적당히 비겁하고 정의로우며, 사지육신 잘 쓰다 가면 그만이다. 다만 이번 생, 그리 살다 끝난다면 조금 아쉬울 것 같다.








나는 제이(J)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박스에 담긴 인생

어느날, 보지 않는 책을 정리하다 모퉁이에 꽂힌 7년 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버릴까 했는데 삶이 고스란히 담긴 자료라 아까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사한 생각과 목표. 사람 잘 안 변한다더니, 나도 그랬다. 한편 기억이 나지 않은 기록은 새롭게 읽혔다. 당시엔 힘들던 일도 남 이야기처럼 보니 아프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인생 전반전을 다시 보고 싶다. 지금의 시각으로 그 때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도 궁금하다.


흩어져 있던 다이어리를 한데 모은다. 이고지고 사느라 버거웠던 40년. 한 트럭은 될 줄 알았던 지난 시간이 박스 하나에 다 담긴다.

쑨's 다이어리 박스



의심의 시작 그리고 그 목적의 끝

3년 전 MBTI결과 ENTJ로 나왔다. 다이어리 박스를 보니 판단형 제이(J)가 맞는 듯한데 볼수록 의문이다.


습관처럼 모든 일을 계획했지만 막상 닥치면 다르게 하고 싶었다. 흐트러지지 않으려니 늘 힘에 부쳤다. 그럴 적마다 다이어리에 적은 자책 기득한 메시지가 짠하다. 흡사 인식형(P)이 판단형(J) 코스프레 하려고 무진 애쓴 흔적이랄까?


그렇게 배웠고, 그래야만 했고, 그것이 더 좋다는 사회 기준을 쫒느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식하게 열심히 했다. 그러나 계획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가 없다. 이럴거면 굳이, 그렇게 매순간 힘주어 성실할 필요가 있었나? 멋진 옷 입으려고 백날 다이어트 하듯 긴장했는데, 그냥 몸에 맞는 편한 입고 산으로 들로 놀러나 다닐 걸 그랬다.


저편에 묻어뒀던 기억들이 올라온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버지, 찐 금수저를 보고 느낀 세상의 벽, 인생무상 우울증, 돈 안되는 종교생활과 대운을 놓쳐버린 연애, 고시낭인 9년. 한두 가지민 겪어도 책 한 권 쓸 판에 가지가지도 했다. 뭔 인생이 그러냐!


물론 그 덕에 남들과는 다른 통찰이 생겼고 단단한 내공이 쌓였으니 영판 손해는 아니다. 다만 ‘나’라는 모양을 파악하고 '딱맞는 자리'를 알고 살았다면 그렇게 헤매지 않았을텐데. 사는 게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을 거다. 그러나 제 모습을 몰라 더듬더듬 40년간 장님 코끼리 만지듯 나의 형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아니구나' 하는 데이터가 솔찬히 쌓였다. 요즘은 나에게 좋은 게 뭔지 실험하듯 살면서 '이거네' 하는 데이터도 모으는 중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지난 기록을 뒤적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기로 한다. 배운대로만 보지 말고, 꼭 그래야만 하는지 다시 묻고, 사회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 나도 좋은지 느슨한 심장으로 쳐다볼 거다. 그렇게 인생 전반전 다시보기를 마칠 무렵엔 후반전 필승전략 혹은 나 뭣하러 태어났냐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이유불문 인생은 '메이드 인 본인'


독립, 나답게 살 해법

3년 전, 본가를 나와 독립했다. 우여곡절은 많지만 스스로를 먹여 살리며 나를 믿고 나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전과 같은 체력과 열정으로 성큼성큼 앞서 갈 힘은 없다만, 아주아주 귀엽게 아장아장 그렇게 걸어가고 있다.


홀로서기로 한 이유는 '온 우주에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서다. 개똥같은 일을 겪으면 억울했고 똥물 튀긴 모습이 창피했다. 그런 모습 들킬까봐 위축됐는데 사람들은 내 얼굴에 똥이 묻은지도 모르더라. 생각보다 남 일에 관심이 없다. 혹여 알더라도 금방 잊는다. 또한 조언을 듣고 실행하다가 잘못 돼 하소연해도 상대는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도우려던 마음은 진실이겠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서, 해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버리니 부모에게 살 공간을 제공받는 일도 안하기로 했다. 편의를 받으면 거스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어머니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효(孝)라고 가르쳤고, 분명히 아닌 소리를 해대는 아버지에게도 끝내 고개 숙이게 시켰다. 그럴 적마다 가슴이 꽉 막히고 영혼이 박살나는 느낌에 울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은 아닌데 말이다. 왜 이제껏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과 거리를 두지 못했을까? 아마도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이 확고했고 받은 게 있으니 거스를 결심을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온 우주를 통틀어 나를 위한 해법만 구하니 그제서야 독립할 용기가 났다.



어제들을 쌓아 만든 오늘

이유불문 인생은 '메이드 인 본인'이다. 인생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아서 처음에 그려진 기본스케치는 어찌할 수 없지만 그대로 채색할 필요는 없다. 스케치 위에 더 진한 색으로, 더 강한 개성으로 새롭게 그려버리면 그만이다.


생각건대 어머니의 효 개념은 '교육자 아버지를 둔 딸'에겐 정답이었을 거다. 외할아버지를 존경했고 그 자부심이 삶을 지켜줬겠지. 그러나 나는 외할아버지와는 아주 다른 아버지를 뒀다. 어머니의 효 개념은 나에게 오답이다.


허나 어머니가 일부러 그리했겠는가. 누가 뭐라해도 인생의 해법은 직접 찾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법. 그것을 가슴 서리게 깨닫게 한 신조어가 있다. 누칼협. 만일 '누가 칼들고 협박했어?' 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대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상처받은 상태일 거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 비슷한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배운 네가 더 이해하고, 아랫 사람인 네가 더 참고, 누나니까 더 챙기고 뭐든 침묵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했다. 나는 착한 아이라 그렇게 참으며 살았다. 그러다 2년, 더 길면 3년에 한번 폭발해 미친년처럼 화를 냈다. 분노를 쏟아내면 어머니는 아무 말을 안했다. 그런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도 않았다. 일상 그대로 식사를 챙기고 그냥 품위있게 침묵했다. 상대방이 눈치껏 당신 주장대로 할 때까지 버틸뿐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화가 나서 차례에 쓰는 큰 상을 목검(木劍)으로 다 때려 부술 때도 그랬다.


그 침묵은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냉철하게 판단하자면 아니다. 그건 '어머니의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그 자식에겐 독이 됐다. 상처받은 나는 방치됐고, 괜찮다고 말해야만 했으며, 눈치껏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언젠가 '가정환경이 뭔가 잘못된 것 같고 왜 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냐'고 맞섰더니 그랬다.


"누가 그러라고 하더냐, 제 때 되면 알아서 할 줄 알았다."


그 대답을 들었던 날, '하' 하는 짧은 날숨 후 정신이 한껏 맑아졌다. 그리고 일주일만에 집을 구해 본가를 나왔다.


어머니는 도덕 교과서 같은 분이다. 나 맞춤형 답을 주진 않지만 원리적으로 틀린 말은 없다. 참기 싫으면 그만해야 했다. 주도권을 뺏길 것 같으면 싸워야 했다. 나를 위한다는 조언도 아니다 싶으면 거절해야 했다. 아무리 부모가 위험하니 울타리를 넘지 말라고 해도 그 너머가 궁금하면 제 길 찾아 떠나야 했다. 누구나 인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알아서 눈치껏 착하게 살아놓고 왜 이렇게 키웠냐고 원망한들 변하는 건 없다. 탁월한 분석력으로 '이 모양, 이 꼴'이 된 원인을 찾았대도 결국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다.








전에는 기억이 4D로 저장됐다. 예를들면 누구와 나눈 대화 기억을 떠올리면 360카메라로 찍듯 다면적으로 보이고 당시의 냄새와 기분까지 함께 출력됐다. 아픈 기억은 슬프고 억울한 느낌도 올라와 눈물이 난다. 그런데 뇌의 저장용량도 한계가 있는가 보다. 요즘은 아침에 했던 일도 아득해 종종 기억이 안난다. 어쩌면 망각은 노화 속 의외의 축복일지도!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바꿔보자.' 과거는 고정불변이라 바꿀 수 없다고들 한다. 그래, 사실은 불변이다. 허나 진실은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기록을 살펴보며 감정이 섞인 기억들도 나 중심으로 관점을 바꾸니 다르게 읽힌다. 생각보다는 덜 불우한 가정사, 스스로 걸어나온 우울증, 망했지만 보호받은 9년의 고시생활, 헌신했지만 미래를 살리려 헌 신이 된 연애, 치유받은 종교생활, 37살 신입사원, 미디어 아티스트까지. 그래, 진실은 해석의 영역에 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나를 더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고 가진 것과 없는 것을 정확히 분별해서 온 우주를 통틀어 오롯이 나를 위한 진실을 재해석한다는 것이겠다. 결코 유리하게 써 내려 비루한 나를 감추는 방패로 쓰지 않을 거다. 그러니 인생 전반전 다시보기를 마칠 무렵엔 후반전 필승전략 혹은 나 뭣하러 태어났냐에 대한 답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과거를 바꾸는 오늘부터 나다운 미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