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절대적 이분법

by 쑨 Seun



난 왜 삼십대 후반이 되서야
독립할 결심을 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되지도 않을 5급 공채(舊행정고시)를 9년이나 놓지 못한 탓이겠지. 다소 늦은 스물 여섯에 시작한 행정고시. 9년간 최선을 다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절망감이 밀려와 그만 하겠다고 다짐했을 땐 이미 서른 중반이었다.








계속된 실패는 살아갈 힘을 앗아간다.


고시생 5년 차가 넘어가니 누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럽기보다 쓸쓸했다. 부러움은 노력을 독려하지만 쓸쓸함은 무기력을 동반한다.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도전하길 7년. 장수생 모씨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곤 가슴이 철렁했다. 그쯤 되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는 9년 전, '넌 대가리가 나빠서 안 될거다.' 고 말했다. 명절에 모이면 '자식새끼들 뭐 하나 잘 된 놈이 없어 세상 부끄러워 산 속에 숨어 산다'며 화를 냈다. 그래서 그만두면 너 그럴 줄 알았다며 빈정거릴 걸 예상했는데 '다 왔는데 포기해? 앞으로 어떻게 살래.' 하며 마흔까지 몇 년 더 해보라 한다. 하겠다 할 땐 그만두라 하고, 그만두겠다 하니 더 하란다. 어이가 없다. 그래도 그것 저것 모든 것에 당신의 염려가 담겨 있음을 안다.


인생은 되돌리기도 안 되고 리셋 버튼도 없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망한 인생. 쪽팔린다. 어떻게 살 거냐고? 모르겠다.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산다'를 전제한 질문은 공허하다. 앉아 있을 힘도 없어 바닥에 등 붙이고 생각이란 걸 한다.


나는 가톨릭이다. 고시생이 되기 전엔 어떤 상황도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절망을 겪으니 '이 마저도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무너져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감사히 살아내자.'며 아는 척했던 내가 부끄럽다. 인생의 깊이도 모르면서!


한껏 겸손을 배운 시간이었지만 아무 일도 아닌 듯 툭 털기엔, 9년은 너무 길고 실패는 치명적이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 자신이 없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건강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기약없이 쉬었다.






죽은 것이 아니면 사는 거다


기세가 꺽인 자리에 남은 것

한창 견디고 견디며 공부를 하던 때, 내 면역력은 바닥이었다. 가벼운 감기에도 폐병걸린 사람처럼 밤새 기침을 했다. 기침하다 갈비뼈가 부러질까 걱정할 정도였다.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남은 건 약해진 몸과 곰보처럼 패인 피부, 그리고 쓸 데 없는 책더미였다. 그 상태 그대로 두고 멍하게 누워서 유투브가 추천하는 영상만 본다. 될 때까지 하겠다며 고집스럽게 책상에 붙어 있을 땐 그만두라 계속해라, 화냈다 격려했다, 오락가락하는 아버지 때문에 정신병이 들 지경이었는데 다 그만 두니 이제서야 아버지도 조용해졌다.


잠은 오지 않고 더 볼 것도 없던 어느 새벽. 불현듯 한강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그림자 같은 몰골로 발끝만 보며 걸으니 어느새 청담대교 하단. 바람이 참 시원하다.


달빛은 밝고 아무도 없는 밤 엉엉 소리내 울었다. 강물도 갈 바를 아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해엔 1차 시험 광탈. 허망해 그만두려다 서울둘레길을 완주하며 의지를 다잡았다. 2차 시험을 간발의 차이로 놓친 어느 해엔 한달동안 한강을 20km씩 걸으며 또 해보자 다독였다. 무너지고 다시, 또 다시. 그러나 이젠 책보기도 진절머리 난다.


나한테, 내가 너무 미안하다. 허공에 뱉은 한숨 뒤 목구멍 넘어가는 뜨거운 눈물에 명치가 아린다.


힘도 없는데 자꾸 힘내라고 해서 미안해.

안 될 거 알면서 몰아붙여 정말 미안해.

더 빨리 놓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해.


네 시간을 걸어 반포대교 하단 잠수교에 홀로 선다. 윤슬이 예뻐 물끄러미 보다 검은 물 속으로 툭. 내 영혼은 무심하게 스륵 어둠어둠 사라진다. 나 그렇게 죽고 싶은가?



죽을 생각

여지껏 죽을 생각은 딱 두 번 해봤다.


한번은 복수의 수단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중1때 서울로 전학오면서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됐다. 아버지가 서울 집에 오는 날이면 이것저것 트집 잡아 화를 냈다. '어머니도 바쁜데, 딸이 돼서 청소도 빨래도 안해놨다'는 말들은 죄책감을 줬다. 적응하기도 힘들고 갑갑했다. '내가 죽어버리면 더는 감정 상할 일도 없고 아버지도 미안해서 괴로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 불현듯 '그러고 나면 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은 느낌은 썸뜩했다. 그 때 알았다. 나를 죽여가며 하는 복수는 손해다. 그 후론 멍청한 죽음은 떠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번. 이것도 중학생 때인데, 어느 주말 친구의 전화를 받고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다른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친구가 '괜찮아?'하는 위로 전화를 한거다. 나는 '응, 알고 있었어. 그거, 뭐 괜찮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 주말 동안 방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짝사랑이 실패한 것보다 그걸 누구에게 들켰다는 수치심에 창피했다. 죽어버리면 등교하지 않아도 되니 포털에 방법을 검색했다. 그러나 숨이 빠져나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주저하다 주말이 가고 학교에 갔지만 쓱 지나갔다. 그렇지, 얼마나 절절한 사랑을 했다고. 쪽팔림도 순간인데 뭘 죽냐!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한강 다리에 올라 서서 죽음을 생각한다. 아직 사춘기인가 보다.


히어로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칼 끝에 악당 조무라기들이 우수수 스러진다. 어리면 20대 또는 그 이상. 누구나 그 나이 먹기까지 하나의 서사를 품고 살아냈을 텐데, 극적 연출이라지만 죽음이 참 허무하다. 주인공을 위해서 그렇게 다 죽여야 속이 시원했냐! 합격자만 이 세상 주인공같아 서럽다. 아침해 뜨고 출근버스가 그득해질 때까지 강물에 대고 애달픈 속풀이만 했다. 누구는 합격해 세종시에 있는데 난 갈 곳이 없어 한강에서 노숙이라니.


왜 빨리 그만 두지 못했나 후회가 밀려온다. 30대 초반만 돼도 공기업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서른 여섯에 사회로 나가려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씨발 망했다.



5급 공채는 공부량이 상당해 합격하기까지 3년정도 걸린다. 그래서 3년 차엔 일년만 더 버티면 될 거라고 자만했다. 일년 늦어도 7급으로 10년 쌓아야 할 경력을 단숨에 넘을 수 있다는 계산만 했다. 고시반에도 실제 6년, 10년에 걸쳐 합격한 선배도 있었기 때문에 위안 삼았다.


그러나 경쟁시험은 매해 경쟁자의 수준과 구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제보다 더 노력 한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그리고 합격할 싹이 있는 사람은 수험 과정이 힘들지 않다. 애초에 기본기가 잡혀있고 배우는 동안 그 내용에 가치판단형 질문은 하지 않는다. 대개 수험용 답을 외우고 산출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사회현상에 '왜'라는 질문이 멈추질 않고 '어떻게'라는 답을 구하려 무리하게 학습했다. 생각건대 그런 직관형(N) 인간은 수험생이 되면 안됐다. 게다가 될 때까지 한다는 무기한 계획은 최악이다.


돌아보면 4년 차에 온 우주가 그만하라고 신호를 줬다. 당시 10대에도 나지 않았던 여드름이 심해졌다. 치료받을 여유가 없어 비비크림으로 트러블을 감추고 너댓시간 자고 공부만 했더니 온 피부에 농이 찼다. 면역력은 바닥이고 피부 상태도 숨길 수 없는 수준이 돼 대학고시반을 정리하고 집으로 왔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보내준 쇠비름을 찧어 얼굴에 붙이고 거울만 보며 하루를 보냈다. 그게 서른 하나. 그 때 진로를 바꿨으면 좋았을 걸.


일년 간 요양하고 6년 차 겨울. 제 발로 신림동 고시촌으로 갔다. 이때부터는 체력이 훅 떨어져 졸기도 하고 독서실에 안 간 날도 생긴다. 다 아는 내용이니까 복습하면 금방 복기 될 줄 알았으나 집중이 흐트러지니 1차도 떨어졌다. 그 동안 고시반 동기들은 거진 합격하거나 공기업 취업 소식을 전했다. 나 혼자 조용한 신림동에 있으려니 자꾸 우울해 져, 반년만에 그 동네를 나왔다.


7년 차엔 준비없이 9급, 7급 시험도 치러봤고 8년 차에는 아예 7급 감사직을 목표로 응시했는데 1.5문제가 부족해 낙방했다. 절망이다. 침대에 누워 울기를 한달. 배게는 내내 축축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많은 물이 빠져나와도 말라 죽지 않더라. 그 때 알았다. 사는 게 죽을만큼 힘들어도 죽기는 더 힘들다는 것을.


9년 차에는 반포기하고 편하게 시험장에 갔다. 공부를 하나 안하나 작년과 비슷한 점수를 받으니 웃겼다. 딱 거까지구나 하고 툭 털었다. 부모에게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무념무상 칩거했다. 누가 괜찮냐 물으면 '하고 싶은 거 다 해 봤으니 후회는 없어. 세상에 할 일이 있겠지.' 라는 쿨한 대사도 준비해 뒀다.


사실 허세다. 한강가서 엉엉 우는데 괜찮을리 없다. 그래도 9년의 격랑 속에서 감정에 속지 않을만큼은 똑똑해졌다. 절망에 몸 부림치다가도 삼일 후엔 또 다른 기분이 들 걸 알기에 모든 섣부른 결정을 미룬다. 죽을 거냐고? 몰라! 삶과 죽음의 이분법은 절대적이기에, 죽지 않을 거라면 우선 사는 걸로.








어차피 목표한 인생은 망했다. 어쩜 지금은 취업과 결혼, 출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정규분포에 벗어난 특이치다. 사회에 갓 나온 고시낭인인 나는, 세상의 걱정거리다. 하지만 그런 상태니 뭘 해도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사회에 쌓아 놓은 게 없다. 그러니 잃을게 없어 아쉬울 것도 없다. 평범하게 살기는 글렀고 막, 살자. 그렇게 나답게 하고 싶은대로.


오-케이. 못 먹어도, 고(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