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고시. 겉으로는 공익과 제도 설계에 기여하고 싶다며 출사표를 던졌지만 솔직히 출세하고 싶었다. 안 될거라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그 열망과 애매한 점수가 준 희망고문 9년. 이제와서 출세와 자기증명이 그렇게도 중요했는지 나에게 되묻는다.
고등학생 때 다이어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될대로 되라,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살았다. 뺑뺑이로 들어간 고등학교엔 금수저가 넘쳤고 반년 동안 별 선생, 별 사건, 별 사람을 보며 박탈감이 상당했다. 고1 여름 자퇴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으나 어머니는 공부 못해도 되니까 고등학교만 졸업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1.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진 친구가 있다. 그녀는 '사촌들은 엄마가 진학플랜도 제시하고 봉사활동 계획도 다 해주는데 자기는 스스로 해야 한다.'며 불만하기도 했고 '아빠는 행정고시 출신이고 엄마는 미대석사'라는 것도 말해줬다. 당시엔 단순하게 법 관련된 공무원은 사법고시, 행정 공무원은 행정고시를 본 걸로 알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법고시 출신이고, 어머니는 퇴직했지만 행정고시 출신이라 말하니 급속히 친해졌다. 나중에 집에서 그 친구 얘기를 하다 '고등고시'가 뭔지 알게 됐다. 졸지에 비루한 뻥쟁이가 돼 식은땀이 났다. 부끄러운데 사실을 정정하기도 애매했다. 다행인지 그 친구는 1학기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한 아버지의 해외파견을 따라서.
사실 반 친구들 부모 직업을 대강 안다. 개인정보 조사지를 걷어서 교무실로 가져가다 슬쩍 봤는데 공무원 아니면 자영업자였다. 공무원은 교육부 서기관(4급), 국토교통부 부이사관(3급), 판사 등 고급관료였고 자영업자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거나 사업가였다. 당시 아버지는 8급 교도관이었는데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란 질문은 묘하게 불편했다.
방송반 면접에서 그 질문을 처음 받았다.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주부라 했더니 구체적으로 묻는다. '무슨 공무원, 소속이 어디?' 하시길래 '교도관'이라고 말했다. '몇 급이신데?' 라는 물음엔 '8급'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방송반에 떨어졌다.
그 방송반 선생님은 고2 물리교과로 다시 만났다. 우리조가 물리 퀴즈를 1등 해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준 날, 입에 하드 하나씩 물고 교정을 걸으며 수다를 떨었다. 문득 진심 궁금해서 방송반 면접에 왜 아버지 직업을 묻는지 물었다. 선생님도 가볍게 말씀했다. '방송반 활동엔 돈이 많이 들어 감당할 가정형편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옆에 있던 방송반 친구가 힘들다며 애교를 부린다. '지난 주에 1학년 신입들 베니건스 사 주고 20만원 털렸다'고 웃는데 말만 그렇지 부담은 없어 보였다. 그렇구나. 뭔가 씁쓸하다.
은근한 계급사회의 현실. 부모 직업도 능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리고 그 때 출세를 하려면 고등고시를 보거나 전문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학습한 것 같다. 문제는 '나는 상당히 영민한데 가정형편에 밀려 억울하다'는 뒤틀린 우월감과 열등감이 함께 자랐다. 물론 그런 정체성은 글에 쓴 이야기로만 생긴 게 아니다.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은 어쩌면 부조리, 어쩌면 입시부정, 어쩌면 부당한 차별, 어쩌면 교사비리라 나불나불 다 쓸 수 없을 뿐이다.
그런 현실 인식은 고2로 진학하면서 쐐기를 박았다.
딱히 진로를 고민하지 않았고 언니가 쓰던 문제집으로 버티려고 이과를 선택했다. 전교 1등인 친구가 같은 반이 됐는데 학원을 하나도 안 다닌다고 해서 반가웠다. 그리고 친절한 친구들 덕에 학교 가는게 싫지 않았으나 첫 수학시험에 42점 받고 현실을 직시했다. 수학은 80점 이하로 받은 적이 없어서 충격이다. 더 충격인건 다들 중학생 때 영어와 수학을 선행학습 하고 고등학교에 온다는 거다. 준비없이 멍하게 살다가 불수학에 쳐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으로 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레벨 테스트를 보고 배정된 반에서 전교 1등인 그 친구를 만났다. 이제까지는 서울대생 과외만 4개를 해서 학원 다닐 시간이 없다가 불수학을 맛보고 전문강사의 수업도 들으러 온 거였다. 우리는 한창 학원가에서 뜨고 있는 한석원의 수업을 들었다. 둘다 점수도 회복했고 대화도 자주 했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비슷한 줄 알았다가 전혀 다른 환경 '과외를 하느라 학원을 다녀 본 적이 없다.' 는 말에 배신감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친구가 영어스피킹 대회에서 대상을 타고 '영문과 교수인 아버지가 도움이 됐다'고 인터뷰 하는 말이 불편했다.
이제와 보니 좋은 친구를 사귈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구나 싶다. '나도 그런 환경을 타고났으면 너보다 잘했을 거'라는 우월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무언의 기싸움을 하느라 좋은 환경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역시 그 친구는 서울대 수의학과에 들어갔고 후에 황우석 유명세가 꺽이자 영문학과로 전과했다고 들었다.
사람은 왜 태어나고, 무엇을 위해서 살며, 죽은 후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인생 전반기를 지배했다.
타고나길 경쟁심도 강하고 누가 살짝만 가이드 잡아주면 확 티나게 잘하는데 '내 인생은 왜 이따구냐, 잘 배웠으면 서울대도 충분히 갔는데!' 입밖으로 원망을 꺼낸 적은 없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예민하고 차가운 20대 초반까지 내 영혼은 우울의 호수에 잠겨 있었다. 한편으론 나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소외감을 십분 이해하기에 '내가 잘 되서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의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태어난 이유고, 그걸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힘있는 고급관료가 되려 5급 공채에 목매단 이유도 있다.
40년을 살고 보니 공익, 제도설계, 희망전도에 영향력을 미칠 방법은 고등고시가 아니어도 많다. 그리고 20세기에는 고등고시가 선호하는 출세 방법이었지만 요즘은 그 개념과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혹시 실패를 해서 변명을 하는 건가? 아니. 이건 반성이다. 사회에 나가니 이제껏 시야가 좁았고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 '출세하고 싶다' 또는 '영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진실된 욕망을 말하고 도움을 청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없는 걸 있는 척하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해대며 자존심 지키는데 힘 낭비 말고 담백하게 물었더라면. 부모와 나는 다르고 인생은 나답게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아쉬움이 남지만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오늘 배워서 알았다면 내일부터는 그냥 '아는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뭘로 어떻게 출세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믿는다. 반드시 한 끗발 날릴 거니까, 살면서 방법을 찾을 거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신으로 그냥 간다. 가다보면 무엇이 돼 있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