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2억짜리 아이

by 쑨 Seun



한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기까지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까?



어머니가 주신 가계부에 따르면 고등학생이던 2001년부터 2018년까지 18년간 들어간 돈은 대략 1억 2천만원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자녀를 낳아서 대학까지 보내는데 평균 3억 이상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1.2억에 대학원도 졸업하고 고시공부도 했으니 엄청나게 가성비 좋은 자녀가 아닐까?









파워 제이(J)의 양육보고서


양육보고서.png 가계부와 주택종합통장


고시생 7년 차에 접어든 2018년부턴 모든 급수의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2년 내로 사회에 나가고 어머니 카드도 반납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확실한 의사표현을 기다리셨다는 듯 어머니는 한 달 후 가계부와 주택종합적금통장을 주셨다. 가계부에는 18년간 나에게 들어간 돈이 기록되어 있었고, 통장에는 30년을 모았다고 하기엔 적은 500만원 정도가 들어 있었다. 당시엔 '나중에 갚으라고 정리해 주신건가? 통장은 아직 만기 전이군.' 이 정도 생각하고 던져 뒀다. 잊고 있다가 2025년에야 다시 본다.



나다웁게 전략수정

볼수록 대단하다. 마지막 장에 인계자 서명까지 있는 가계부. 18년치 가계부를 보관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데 그 속에서 나에 대한 정보만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아이를 위해 30년짜리 적금을 들고 매달 만원씩 미래를 저축하는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그 엄청난 일을 이 어머니는 해낸다.


그 덕에 확실히 알았다. MBTI 성격유형 중 판단형(J)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선호하며, 결정내리고 일을 완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가봐도 어머니는 판단형(J), 그것도 파워 제이(J)가 틀림없다.

종합.png 가계부에 담긴 쑨's 양육보고서



반면 나는 유연하고 자발적인 방법 찾기를 좋아한다. 결정내리기 전까지 가능성을 다 따져보고 상황따라 계획이 변경된대도 괜찮다. 나는 영락없이 인식형(P)다. 다만 파워 제이(J)의 교육으로 계획성 있게 사는 습관을 길렀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를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니 판단형(J)이 나온 듯하다. MBTI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성격'에 대한 검사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1993년부터 용돈기입장과 일기를 쓰라 했고,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어긋나지 않았다. 그렇게 잘 커서 남 보기 성실한 대학생이 되었으나 일상이 늘 긴장되고 불안했다. 약속 하나를 잡으면 발생할 일들을 떠올리고 대처방안까지 준비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니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새로운 시도는 자꾸 미뤘다.


게으른가 자책했는데, 이제보니 본성과 대비되는 습관 때문에 부담이 됐나보다. 가령 새로운 시도를 생각하면 팝업창 뜨듯 다양한 변수가 떠오르는 건 인식형(P)의 본성이라 막을 수 없다. 그런데 학습된 판단형(P)은 습관적으로 대비책을 고민하느라 시작 전에 정신력을 많이 소모한다. 게다가 계획이 완벽해도 실행하면서 충동적 본성이 툭 튀어나오니 일이 틀어지지 않게 하려 노심초사 했다. 뭘 해도 번아웃 되곤 해 '변덕스럽고 무능'하다고 비난했는데 나를 정확히 알지 못해 불안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 걸 깨달았다. 참, 기록정리 안했으면 어쩔 뻔 했나!


이제부터 나 맞춤형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우선 주문을 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과정은 융통성 있어도 괜찮다.' 그리고 계획대로 해내자는 다짐, 더는 안한다. 계획세우고 다짐하느라 시작부터 텐션이 높아 금방 지치기 때문이다. 대신 완전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하자며 행동부터 옮긴다. 틀만 잡히면 바로 실행하면서 세부사항을 채우고, 불쑥 떠오른 것은 참지 말고 '아님 말고' 정신으로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도 그렇게 시작했다. 목차를 잡고 바로 쓴다. 차차 완성도 높이자 생각하니 부담이 없다. 또 어머니처럼 평생 오전 6시에 일어나고 밤 12시에 잠드는 규칙을 버린다. 그게 건강한 삶인 줄 알지만 잘 안된다. 잠 올 때까지 일하다가 새벽녘에 골아떨어져도 괜찮다. 더 이상 나를 비난하지 말자. 난 그런 사람이니까.






뿌린만큼 거두는 법, 억울할 것 없다


있는 집 새끼마냥 다닌 적이 없다

고시생이던 시절, 매년 명절은 아버지가 욕설을 해야 끝이 났다. 나에게 퍼부었던 레퍼토리는 '입에서 똥구렁내 날때까지 악착같이 공부해야 하는데 있는 집 새끼마냥 커피 사마시고 폼잡고 다닌다'는 거다. 당시에는 억울했다. 일생 '있는 집 새끼마냥' 살아 본 적도 없고 '폼 잡고' 다녔다기엔 행색이 추레했다. 대학교 카페에서 2500원짜리 커피 한 잔 마셨다고 욕지거리를 들어야 하는 형편에 한숨이 나왔다.


아직까지 명절이면 갑자기 한번씩 그 표정과 목소리, 갑갑한 공기,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이 훅 치고 들어오는 때가 있는데 눈물이 난다. 다들 부모를 떠올리면 애틋하다던데 나는 별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가계부에서 커피를 얼마나 사 마셨나 살폈다. 분명 '말꼬리 잡지 말라'고 또 뭐라하겠지만 그러든 말든. 난 좀 알아야 겠다. 많이 썼으면 인정, 아니면 그따위 개소리는 이젠 기억에서 안녕이다.


2012-2018 커피.png 2012-2018년 커피값 항목 찾기


공무원 시험은 책 값과 무거운 엉덩이로 끈덕지게 매달리면 붙을 거라 생각했다. 맞다. 다만 5급 공채는 학습량이 방대해 혼자 공부하긴 어렵다. 핵심을 잡아줄 강의와 자료가 필요하고, 스터디원 간에 정보를 공유하며 내용을 압축해야 한다. 학원비와 방 값, 식사비로 나가는 돈을 줄이려고 통학하며 대학고시반에서 공부했고 할 수 있는 역량치의 120%를 써가며 매달렸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얼마나 사 먹었을까? 가계부에 커피값 항목은 따로 없었다. 식사비에 포함된 것 같은데 2013년 1월에 '+2500원' 내역이 반복되는 것이 커피값과 같아서, 월 6회로 예상한다. 기억에도 카페엔 월요일 아침 한번, 주에 3회를 넘지 않아서 한달에 많으면 10회정도 갔다. 한달 3만원도 안 되는 커피값. 그 돈을 빌미삼아 모멸감을 주는 아버지. 이런 지난 서운함을 말씀드리면 뭐라 할까? '그런 적이 없다, 소설쓰지 마라.'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버지, 퉁칩니다

1차 시험은 12월부터 기량을 올리다가 2월 말경인 시험 당일 집중력 최고치를 찍고 한방에 넘어가야 한다. 수험생 대부분은 설날에 든든히 먹고 가족의 응원을 받아 안광이 밝아져 돌아오던데, 나는 설날만 지나면 병든 닭같이 꼬구라졌다. 아버지는 자식들만 모이면 '과시하기 좋아하는 가문의 성향'을 비난하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형제들'을 깎아내리고 나에게 시건방지다고 '잘난 척 하지 말라'고 했다.


술도 못 드시는 분이 맨정신에 입에서 독을 풀어내는데도 어머니는 듣고만 있다. 유일하게 나를 지켜준 건 언니다. 3년 차 설날에 한바탕 했다. 언니가 근무가 없어 오랜만에 집에 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하고 싶은 말만 막 한다. 그 날도 똑같은 레퍼토리 들으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언니가 아버지에게 악을 질렀다. "그만해요!" 내 얼굴을 감싸 안고 몸으로 아버지를 막으며 '애 그러다 죽겠다. 아픈 거 안보이냐.' 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정신과 전문 간호사였던 언니는 아버지에게 상담 좀 받으라고 했다. 물론 들을 분이 아니지. '딸년이 아버지 정신병자 만든다.'며 '콱 죽어버리면 되겠냐.'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식들이 뭘 잘못을 하면 '다 때려치고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라며 위협적인 훈육을 했다. 어릴 때나 무서워 잘못했다고 빌었지 이젠 말로만 죽는 분이라는 걸 알기에 심각하게 듣지는 않는다.


또 그렇게 설이 지나간다. 매년 겪은 부모의 독설과 방관은 진정이 잘 안된다. 책상에 앉으면 들었던 말들이 빙빙 돌고 머리 속에선 '당신이 틀렸다'는 반박을 하고 있다. 남 보기엔 책 한페이만 뚫어져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로 보였을 거다. 어쨌거나 우울한 감정을 누르고 시험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벚꽃 피길 기다린다. 그 쯤되면 합격을 하든 기억이 희미해지든 조금 나아졌으니까.


4년 차에 건강문제로 집으로 돌아와 왜 자꾸 떨어지는지 점검했다.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했기에 집안 환경도 도와주길 바랐다. 그래서 그해 추석, 울먹거리며 '부정적인 말들이 상처가 되고 기운을 꺽는 것 같으니 안했으면 좋겠다.' 분명한 의사표현을 했다. 역시는 역시다. '너가 실력이 없어서 떨어져 놓고 상처받았다느니, 기운을 꺽었다느니 하면서 아버지 탓을 하냐'고 손가락질 한다. 그래, 이게 내가 처한 현실이지. 그 때를 떠올리니 눈물이 좔좔좔 흐른다.


사실 사오년 전쯤 설날에 아버지가 '이것 저것 다 미안하다.'고 했다. 물론 자녀들 반응이 심드렁해 어색했는지 또 다시 시건방진 새끼들을 향해 욕하고 끝이 났지만 뭔가 달라지고는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사과한다고 상처받은 마음이 온전히 나아지진 않는다. 완전한 치유는 스스로 해내야 한다.


어쩌면 기록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치유하는 과정인 것 같다. 더 이상 다치치 않도록 환경을 전환하고 나에게만 집중하면서 자존을 회복하는 중이다. 진심 '커피값에 사무친 한(恨)'도 '가계부 팩트체크'를 하고 났더니 통쾌하고 기분이 괜찮다. 아버지가 비슷한 언어의 칼을 휘둘러도 "과장이 심하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라며 쓱 피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제껏 가슴에 박힌 '독성 짙은 말들'은 어떻게 보상할까 고민하다가 가계부 덕에 힌트를 얻었다. 돈으로 퉁치자! 수험기간 받은 돈은 7년간 총 28,335,580원이고 평균적으로 매달 34만원을 받았다. 6개월이면 204만원. 부모도 욕하고 방관 할 적마다 204만원씩 값을 치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만 아팠다'는 피해의식은 굳이 붙들 이유가 없다. 그리고 부모 집에서 안전하게 하고 싶은 만큼 공부했다. 더 지원해줬으면 잘됐을 거라는 서운함도 퉁친다.








입신양명하지 못했지만 솔직한 심경을 들여다보면 부모에게 미안하지가 않다. 나 하나 키우는 데 1.2억이나 들였는데 뻔뻔한가? 나는 최선을 다했고 한 치도 대충 산 적은 없다. 1.2억은 나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살면서 부모에게든 사회로든 다 갚을 거다.


또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다른 수험생처럼 부모의 '사랑 담긴 격려'와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면 죄책감이 컸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부모는 은퇴 후 인생을 개척하느라 바빴다. 두 분은 여주로 귀농했고 난 동생과 지내면서 집안살림 챙기며 공부했다. 게다가 시작부터 '대가리가 나빠서 안 될거다. 커피 사 마시고 폼 잡는다. 시건방지다. 실력없는 너 탓이지 내 탓마라.' 그 뿐인가. 인생 전반기는 글로 쓰기도 곤란한 너무 많은 폭언을 처리하느라 내내 분주했다. 그래서 부채의식 없는 현재를 감사하고 평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말이야, 시험이 망했지 인생이 망했나! 부모에게 안 미안해도 나쁜 새끼 아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