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은 나를 책임지는 과정

by 쑨 Seun

작년엔 쿠팡CLS에서 알바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일하러 갈 적마다 낯 익은 사람이 늘었지만 먼저 인사한 적이 없다. 말없이 일하고 조용히 집에 왔다. 올해엔 스스로 쿠팡CLS를 찾아갔고 주5일 일하자는 결심을 한 후론 인사도 잘한다. 장난치는 헬퍼도 생겼고 출퇴근 버스에서 대화도 나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어쩌다 프리터(Freeter)

고정적인 직업대신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사람, 일부러 프리터로 살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대로 살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안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다.


나는 사회에 적응 못하는 문제아인가? 누가 뭐라든 나는 내가 장하다. 어디에 손 벌리지 않고 인생을 책임지려 애쓰는 내가 기특하다. 남들이 잠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다니면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그 속의 사람을 봤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선을 긋던 얄팍한 우월감을 내려놓고 조금 더 사람다워진 내가 좋다.


새벽동안 골목을 다니는 쓰레기 수거원들, 밤새 도로공사하는 현장 노동자들, 심야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 첫차타고 출근하는 미화원들. 그뿐인가 쿠팡CLS에서 일하고 있는 헬퍼며, 트레일러를 운전하는 기사, 상하차 및 신호수까지. 우리의 편리한 삶은 누군가의 밤샘 수고의 결과라는 걸 목격했다.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자신과 가정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책임감이 보였다.


쿠팡CLS에 처음 갔던 날 만났던 네일아트샵 사장이 생각난다.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후 고객이 줄어 가게를 지키려고 투잡 중이랬다. 뉴스에서 자영업이 어렵다는 기사만 봤을 뿐, 사장도 사업을 지키 위해 알바를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 년간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고 있다는 대학생, 이직을 준비하면서 생활비를 벌러 나온다는 28살 청년, 머리가 하얀데도 주6일 출근하는 투잡 어르신, 계약이 줄어 임대료를 벌러 온 공인중개사 아저씨, 불안정한 수입을 보완하러 나온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생활비를 충당하러 간간히 나오는 디자이너와 화가, 내집 마련을 위해 투잡하는 헬퍼까지. 스치듯 들은 이야기만도 이러하다.


나는 왜 '이런 일 하는 사람 아니다'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는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교과서에서 배운 3D(dirty, difficult, dangerous)기피 현상에 대한 지식과 야간근무를 나갈 적마다 '잠도 못자고 밤에 일하는 천한 직업'이라 비하하던 아버지의 말들을 비판없이 받아들인 탓이 아닐까?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들여다 본다.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은 천한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비정규직이던 스스로 먹고 살 돈을 벌고 선택에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데 간섭할 권한은 아무도 없다. 밤새 똥을 퍼나르는 일밖에 할 수 없으면 그거라도 하면서 책임있게 사는 모두는, 하나의 독립한 개체로서 훌륭하다.


그렇다면 야간에 하는 일이 천한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아버지는 인생이 너무 고되서 야근하는 자신의 직업을 그렇게 말씀하셨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저 험한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천한 일은 없다. 편견 가득한 천한 인식이 있을 뿐이다.


험해도 당장 내 한 몸 건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다. 너무 오래지 않아 본업이 경제적 독립을 가져다 줄 수 있길 바라며, 지키기 위해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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