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한 푼도 없다면
뭘로 돈을 벌 수 있을까?
2024년 4월 미디어 아트 회사를 나왔다. 원하던 일이라 오래 다니고 싶었지만 나름 고충이 많았다. 그만두니 마음은 편했으나 대책없이 나와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수습기간 없고, 주급이나 일급으로 지체없이 입금되며, 언제든 그만둬도 뒤탈 없는 일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나는 쿠팡CLS 일용직이 됐다.
퇴사 2주 전부터 알바몬 앱을 깔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둘러봤다. 사무보조, 텔레마케터, 식당서빙, 청소, 박스접기 등 일자리는 많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지원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 갈팡질팡 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고른 일이 쿠팡CLS다. 그저 '하루 최대 27만원을 벌 수 있다'는 배너광고에 낚여 지원서 링크를 클릭했다. 구글폼 양식에 따라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희망근무 분야와 시간만 선택하면 신청 끝. 너무나도 쉬운 지원방식 덕분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러나 맘 같지 않게 3연속 근무불가 톡을 받았다. 일용직도 할 수 없는 상황인가 싶어 쪼그라 들었지만, 너댓번 까인 후에야 기회가 왔다는 알바후기를 봤다. 기다리니 네 번만에 근무확정! 이게 뭐라고 기뻤다. 공교롭게도 회사 퇴사 날이 쿠팡 첫 근무일. 퇴사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오는데, 쿠팡채용팀 톡을 받았다. 일이 있다는 안도감으로 출근동의를 하고 온라인 안전교육부터 이수했다. 1시간 교육영상을 보고 문제를 풀면 된다.
다 모르는 일이라, 그냥 막차 타고 올 수 있는 세척업무를 지원했다. 출근길에 송파3캠프에서 전화가 왔는데 출근여부를 물으며 교육이수확인서 사진을 전송해 달라고 했다. 안전교육을 이수하지 않고서 근무할 수 없다고 한다.
20분정도 일찍 도착했으나 신규 근로자라 할 것이 많았다. 쿠펀치 앱을 다운받고, 회원가입을 하고, 본인 명의로 된 급여계좌를 등록해야만 한다. 그리고 정상 혈압인지 확인하고 쿠펀치 체크인을 한 후에야 비로소 관리자를 따라 작업장으로 갈 수 있었다.
세척은 쿠팡프레시백을 재사용할 수 있게 씻고 소독하는 과정이다. 처음엔 어리바리해도 반복작업이라 요령만 터득하면 익숙해진다. 생각보다 할 만 해서, 근무확정 된 내일과 모레도 출근하기로 했다. 그 날은 3시간을 일하고 30분 쉰 후에 3시간 더 일하고 귀가했다.
일할 때 쓴 목장갑을 기념품처럼 챙겨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봤다. 8일 이상 혹은 60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 의무대상이 되니, 딱 7일만 일하면 어떨까? 야간수당이 나오는 심야(1:30-9:00)에 소분을 신청해 65만원 정도 벌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3일 일한 임금이 다음 주 수요일에 지정한 계좌로 입금되었다. 안전교육시간도 업무로 간주해서 교육비 명목으로 만원정도 더 들어왔다. 금융치료로 피로가 회복되니 결심할 수 있었다. 그래, 5월 한달만 더 일해보기로!
쿠팡CLS는 몸을 쓰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체력이 되야 하고, 관절과 뼈가 상하지 않도록 스스로 관리해야 지속할 수 있다. 사실 소분의 노동 강도가 이렇게 높은지 몰랐다. 일 한 날이면 1kg씩 빠졌다. 검색해보니 실제 과로사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럴법한 게 6월부터 8월은 너무 덥다. 5월은 계절이 좋아 꽃구경하듯 탄천을 걸어 물류센터에 갔지만 여름엔 가는 길도 더웠고 움직이면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천장에 거대한 선풍기는 뜨거운 공기만 회전시킬 뿐이었다. 진심 조퇴할까 고민했지만, 카드값이 밀리기 싫어 꾹 참았다.
그 해 여름엔 쿠팡뿐만 아니라 외부활동 중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몇 건이 더 발생했다. 그 까닭인지 내가 일했던 송파1캠프와 서초1캠프는 이듬해 2025년부터 냉방시설이 설치됐다. 물론 여전히 땀은 많이 났지만 쉴 동안 냉기로 열을 식힐 수 있으니 할만 했다.
소분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내려오는 택배 물건을 송장번호별로 롤테이너에 쌓는 업무다. 쿠팡CLS의 컨베이어벨트는 24시간 멈추지 않는다. 하차가 시작되면 각 라인으로 물건이 들어오는데 속도감 있게 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눈깜짝할 새 태산이 쌓인다.
게다가 프레시백과 종이박스 및 비닐포장 제품이 섞여서 들어오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쌓을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적재는 재량이라 막 던져 쌓아도 되지만 그러면 롤테이너를 자주 갈아야 해서 더 힘들고 우르르 쏟아져 다칠 수도 있다. 물론 일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프레시백은 세로방향으로 3개씩 넣으면 딱 들어가고, 종이박스는 종이박스끼리 토트박스는 토트박스끼리 쌓아 안정성을 높인다. 음료나 고양이 모래, 쌀, 대용량 세제 등 무거운 것을 아래에 쌓고 번호별로 배송량에 감이 생기면 미리 둘 공간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시간내로 쳐내야 하는 물량이 있기 때문에 관리자도 여유가 없다. 더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하면 나도 급해져서 몸을 막 쓰게 된다. 그래서 하체에 중심잡고 코어를 이용할 줄 모르면 금방 지치고, 다칠 수도 있다. 그리고 허리가 약하거나 지병이 있다면 안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정상혈압 범위'를 넘어가면 근무가 불가하다. 전에 고혈압이라 귀가조치고 하니 언성 높이는 신규 근로자를 본적이 있다. 돈 벌러 먼길 왔겠지만 '최소한의 진입장벽'은 받아들이는 게 맞다. 정상 혈압인 나도 간혹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혈압이 훅 솟는 느낌을 받는데, 위험신호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모든 일이 그렇지만 돈 값만큼의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처음하는 일이면 송장번호도 안 보이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할 만 하면서 일부러 태만하게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동료 근로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행위다. 알바 자리에서 오지랖 부려 능력자가 될 필요 없지만, 돈 값은 해야지 공정하다.
한편 채용팀을 통해 몇 번 근무하고 웬만히 일하는 수준이면 관리자가 '오픈채팅방'으로 초대한다. 한 번을 나가더라도 그 채팅방에다 요청하면 당일에도 근무할 수 있다. 나는 돈 값만큼의 책임감을 보여 얻게 된 기득권을 활용해, 한동안 '송파1캠프'와 '서초1캠프'를 오가며 원하는 날에 근무했다.
쿠팡CLS를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일한 장갑을 '기념품'처럼 챙겨왔다. 안전화 의무착용 규정이 없던 때라서 버리려던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조금만 견디자 다짐했다. 그렇게 총 근무 25일차. 장갑과 낡은 신발, 이젠 안녕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2024년은 마(魔)가 낀 건지 임금체불을 세 번이나 겪었다. 두 번은 늦어졌지만 약속된 대금이 다 들어와서 문제는 없었고 한 번은 진정 및 고소고발을 진행했다. 어쨌거나 임금체불이 발생할 적마다 바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쿠팡과 완전히 결별할 수가 없었다.
퇴사하고 그냥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다녔던 5월. 송파1캠프에서 심야 소분을 했는데 솔직히 힘들었다. 손가락이 부어 주먹을 쥘 수 없었고 온 몸이 쑤셨다. 7일간 3kg이 빠졌다. 그래서 더는 안 가려고 5월말부터 7월 중순까지 동네 수퍼푸드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한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다. 노동청 진정과 검찰고발을 진행하였고 떼인 돈은 언젠가 받을 것이지만 당장 다음주 월세가 부족해 다시 쿠팡CLS를 나갔다.
집과 가까운 곳에 서초1캠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 곳으로 근무신청을 했다. 다시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나서 종종 허공에 '망할 사장 새끼'라 소리쳤다. 음악과 기계 소리에 나의 외침이 거진 묻혔을 테지만, 누군가는 악지르는 미친년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7월과 8월 쿠팡CLS에서 번 돈과 퇴직금으로 버티며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강남역 맘스터치LAB에서 맘스비로 세후 230만원 정도 들어오니 그제서야 기념품처럼 모아뒀던 장갑과 낡은 신발을 내다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9월 매니저의 실수로 기록이 잘못 돼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또 아쉬운대로 쿠팡CLS에 또 나갔다.
맘스비 아르바이트는 급여는 괜찮았지만 본업에 소홀해져서 그만 두기로 했다. 그래서 그 해 11월, 주40시간씩 일했던 맘스터치를 그만두고 주25시간 일하는 스타벅스로 일터를 옮겼다. 그러나 그 선택은 엄청난 실수였다. 급여, 복지, 인간관계 및 창작자로서의 삶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다. 근무 스케줄은 매일 달라져 일상이 불안정했고, 급여는 세후 120만원 수준인데 이중취업금지 조항 때문에 다른 일을 병행할 수도 없다. 파트너간 분위기도 살벌해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다닐 이유가 하나도 없던 스타벅스에서 4개월 중 100일을 고민하다가 벚꽃 날리는 봄, 퇴사했다.
스타벅스를 그만 두고도 나에겐 대안이 있었다. 끊고 싶어도 끈질기게 이어졌던 인연이었지만 이번엔 일부러 쿠팡CLS를 나갔다.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갔다. 몸을 움직여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이고, 살도 빼고 싶었다. 역시 주3회 일한 4월과 5월, 총 5kg이 빠졌다. 주5회 일한 주엔 고됐는지 하루 종일 손발이 뜨거웠지만 평생 달고 산 수족냉증이 나은 듯 괜찮았다. 또 돈은 좀 적지만 야간(18:00-1:30) 소분으로 시간대를 바꿨더니 밤에 잠도 잘자고 회복력도 좋아졌다.
주3일만 일해도 스타벅스보단 더 번다. 여유 시간이 생기고 심리적 평안을 찾으니 다시 글을 쓰고 컨텐츠를 기획하고 싶어졌다. 더욱이 이 시간대엔 N잡러가 꽤 많아 나도 그들처럼 일을 병행할 용기가 났다. 그리고 이 집을 재계약하면서 결심을 했다. 이 작업실을 유지하려면 월에 100만원은 필요한데 미디어랩쑨의 정체성이 잡히고 브랜딩 될 때까지 투잡을 해서라도 버티자. 그래서 나는 아직도 쿠팡CLS에 나간다.
대책없이 퇴사했지만 빚지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일 년 넘게 버텨 온 나다. 이 공간을 구하면서 남에게 기대지 말고 원하는 모양대로 살자는 초심을 다시 떠올린다. 그래, 늘 그렇듯 썅 마이웨이다! 요즘은 에잇투파이브엔 미디어랩 쑨의 대표로, 저녁에는 쿠팡CLS 상용직 근로자로 산다. 다만 기한을 정했다. 쿠팡CLS와의 인연은 2년을 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