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헤어질 결심
< 헤어질 결심, 박해일 탕웨이 주연, 박찬욱 감독, 한국 2022, 멜로/로맨스 >
개봉일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6월 29일 퇴근 후 보려 마음먹었는데, 비가 내리고 장마 예보가 있었다. 망설이다가 자동차 타이어를 우선 교체하고 주말에 보려 했지만, 오늘에서야 이 영화를 보고 왔다. 만약, 6월 29일 봤더라면 빗 속의 산사 장면이 빗속 귀갓길과 맞물려 기억되었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감독의 스타일이 내게 일관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흥행작인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는 대중의 호불호가 갈리는 만큼 내게도 좀 혼란스러웠다. 감독의 작품 중 내가 좋아하는 '공동 경비 구역 JSA'는 아직도 영화의 아련함과 지금은 문을 닫은 관람 극장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유명한 작품 외에도 다른 작품들이 꽤나 되었다.
산 정상에서 떨어진 변사체의 수사로 영화는 시작된다. 유가족인 중국인 아내는 남편의 죽음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매 맞는 아내였던 그녀는 남편을 죽일 동기를 가지고 있을 법했다. 죽음의 의문을 파헤치는 직업인 수사관은 이 아내를 의심한다. 피의자를 의심하면서 이 의심은 점차 관심과 애정으로 바뀌어간다.
영화에서 엄마가 좋아하시는 "안개"라는 노래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배경이 된 도시의 안개와 함께..
흔히 예술영화라 불리는 영화들은 안개 속에서 감독의 의도를 찾아내려는 듯, 관람 후 저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그 해석을 찾아보는 재미도 크다. 난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을 짚어내는 천재들도 있고, 꿈보다 해몽이다 싶은 해석들도 보인다. 난 이 기록을 남겨두기 전에 어떤 해석도 아직 읽어보고 싶지 않았다.
안개라는 노래와 장면에서 떠오른 생각은 인생에서 어떤 관계나 사건들 또한 안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심증, 물증이 있다 해도 각도와 방향을 조금 틀면 어쩌면 다른 차원의 문제였을 수도 있는 것들이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면서 조심스러워졌다.
이 영화를 같은 내용으로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고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면, 어쩌면 난해한 독립영화이거나 상투적 아침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로맨스를 품격 있게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감독의 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작품보다 친근하고 고품스럽게 다가왔다.
내 나름대로 감독의 웃음 포인트를 발견했다. 스시, 핫도그, 석류, 자라... 먹거리에서 난 웃음이 터졌다.
아내와의 베드신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달리, 주인공 서래와 해준은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먹고, 요리하고, 문자를 주고받고, 절에 가고.. 재회해서는 손 끝을 맞닿고.. 사랑한다는 말 없이 이들의 사랑을 표현해준다. 헤어질 결심을 죽음으로 해야 할 만큼 애절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들의 사랑은 영원히 안갯 속 미제 사건으로 남겨두는 연출이 인상 깊다.
대사나 장면이 생생하게 여운이 남는다.
-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다고 했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
- 한국에서는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고..
- 붕괴 : 무너지고 깨어짐
- 마침내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들이 전체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난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 로맨스 같은데, 감독은 멜로/로맨스 라고 한다. 냉철한 수사관인 해준의 인생은 서래를 잃고 붕괴되어 안개 속을 헤맬 것 같다.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빗 속을 뚫고 개봉일에 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 처음 가 본 영화관이라 예매할 때부터 설레었다. 영화 관람료가 너무 올라 조금 놀랐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좌석 선택의 운이 따라야 한다. 옆자리가 빌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쉬지 않고 취식과 트림을 하시는 옆자리 아줌마로 인해 잠시 영화에 집중을 못했다. 그래도 비교적 좋았다.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까지 혼자 오롯이 러닝타임을 즐겼다.
#영화 #헤어질결심 #박찬욱 #탕웨이 #박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