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중경삼림
< 중경삼림, 왕가위 감독, 임청하 금성무 양조위 왕페이 주연, 1994 홍콩 >
남들이 다할 때 뭔가 못해봤다면, 그 아쉬움과 기대는 더 큰가 보다. 영화에서 중경삼림이 그랬다. 때를 놓치고 보지 못했고, 재개봉도 놓치다가 오늘 넷플릭스에 있길래 두 말없이 봤다.
다 보고 나니, 며칠 후 재개봉한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오늘 안 봤다면 아마 혼자 극장을 찾았을 수도..
당시 X세대였던 이들은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렸고, 재개봉 때 자녀와 보고 싶은 인생 영화라는 관객평은 날 더 설레게 만들었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남자 주인공들은 둘 다 경찰이고 실연을 당했다. 새로운 사랑이 되어줄 수도 있는 그녀들은 범죄자다. 하나는 마약 밀매상, 또 하나는 단골 식당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우연히 얻은 열쇠로 짝사랑하는 경찰의 집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무단 침입자..
영화적 시나리오와 연출로 포장되었다.
5년 연애 끝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유통기한이 자신의 생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한 번에 먹는 무모함을 보이는 금성무 에피소드..
스튜어디스인 여친에게 차이고 난 후, 방 안의 모든 것이 슬프다면서 방의 사물들과 대화하던 사람이 자신의 방 물건들이 바뀐 것조차 모르는 양조위 에피소드..
나로선 공감이 어려운 시나리오다.
“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고 싶다. “
만년의 사랑이 이 영화에 나온 말이었구나…….
개봉 당시 왕조위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은 큰 화제였다. 지금 보니 그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술 취한 이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젊은 날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번지 듯 빠르게 처리해버린 느낌도 든다.
그 시절 우리는 사랑에, 즐거움에, 성취에, 열정에, 허세에, 자만에, 객기에, 두려움에, 실패에, 좌절에, 실연에, 절망에, 기대에, 꿈에..
수많은 밤 젊음과 술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 같다. 술 취한 듯한 그 좌충우돌의 시절이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떠올랐다.
몽중인, California Dreamin'.. OST에서 그 젊음의 몽환적 객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
가본 적 없는 덥고 습한 홍콩의 1994년 여름이 느껴진다.
평이 좋고 남들에게 인생영화라고 해서 내게도 같은 감동을 주진 않는다. 난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마이너리그인가 싶었다. 그 시절 봤거나 홍콩을 가봤다면, 지금과 또 달랐을 수도…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 중 과대평가된 중경삼림이란 글이 오히려 공감되었다.
이 영화를 그때 봤더라면, 나도 홍콩의 그 에스컬레이터를 찾아갔으려나..
어쨌든 뭔가 숙제처럼 남아있던 중경삼림을 드디어 봤다.
몇 차례 재개봉을 한 영화인만큼, 살면서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고 다시 보고 싶어 지는지를 나도 이제 세월에 맡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