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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Dec 02. 2021

언제 이렇게 컸니?

이대로 자상한 남자로 커주렴~

아이를 키우는 매일이 똑같은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쑥~ 커있는 아이들 모습에 놀랄 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때 말이다.


한 두 달쯤 전이었나.

어느 날 갑자기 큰 아이가 혼자서 샤워를 해보겠다고 나선다. 솔직히 못 미더운 마음에 망설이다가 스스로 하겠다는 걸 막으면 안 되겠어서 허락을 해줬는데 샤워볼에 바디워시만 짜주고 엄마는 나가란다.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곁에서 이러니 저러니 참견을 해대니 다하면 부를 테니 나가라며 재차 성화다.

마지못해 욕실 밖으로 떠밀려와서 안절부절못하다 한참만에 부르기에 들어가 보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본인이 청소까지 다 했단다.


혹시나 싶어 머리고 몸이고 살펴보는데

엄마 하는 양을 언제 본 건지 스퀴지를 꺼내 물기도 어느 정도 제거해놓은 모양새가

제법이네 이 녀석~


오늘도 혼자 샤워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둘째도 준비시키다 세탁소 아저씨의 호출로 맡길 세탁물을 꺼내 현관으로 가는데 아이들의 대화가 들린다.


“양치를 먼저 하는 거야

그런데 오빠는 샤워를 먼저 했지?

오빠 말 들어봐~

양치를 먼저 해야 안 추워

몸에 물이 묻어 있으면 추우니까 양치 먼저 하는 게 맞겠지? 그렇지?”


“응 오빠~”


어머, 나 지금 뭘 들은 거니?

우리 애들 맞아?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아들아 언제 이렇게 큰 거야?


뿌듯한 마음으로 건네받은 세탁물을 정리하고 욕실로 들어가 보니 세상에~ 아들이 딸내미 목욕을 시키고 있는 거다.

뿌연 유리문 사이로 이 녀석들 모양새가 너무 이뻐서 하는 양을 지켜보자니 꼼꼼하게 비누칠을 하고 물 온도가 괜찮은지 물어봐가며 샤워를 시킨다.


어머나 어머나~

나 다 키웠네 다 키웠어~~


언젠가 언니로부터 시크한 딸내미에 비해 아들이 너무 스윗하다며, 운전 중 두꺼운 옷이 답답해 낑낑댔더니 옷을 벗겨주고 안전벨트까지 다시 고쳐 매 주더라고 나중에 여자 친구한테는 얼마나 잘하려나 싶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우리 아들도 언니 아들 못지않게 스윗하겠어~


나름의 사회생활과 학습을 통해 아이가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육아에 있어 가장 큰 감동이고 나의 힘듦을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돌아서면 또다시 아이와 실랑이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아이고 내 새끼~ 소리가 절로 나오게 기쁨인 것이다.


젖은 몸을 닦아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고 드라이를 해주는 손길 따라 칭찬이 절로 나온다.


이쁘다 내 새끼들~

기특해 기특해~


비록 잠들기 전 서로 먼저 책을 읽어달라고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엄마는 오늘은 화를 내지 않겠어.


아들~

이대로 쭉~ 자상한 남자로 크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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