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릴 적엔 담배만큼이나 싫었던 게 술이었다. 부모님의 싸움의 원인이 되곤 했기에 냄새는 물론 음주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술을 찾는다. 입 꾹 닫고 직장에서의 하루를 버텨낸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기분 완화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덕에 얻은 건 두툼한 뱃살과 ‘쟤 술 잘 마시네’하는 뒷말뿐이다.
피로 회복제, 수면제, 환영회, 송별회, 화 삭이기, 만난 지 얼마 안 된 팀원과의 어색함 없애기, 결혼 전 상대방의 주사 파악하기, 그냥 맛있어서 등 술을 마시는 이유야 다양할 것이다.
집에서 마시는 술은 위에 언급한 용도이고, 밖에서 직장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핑계용이다. 술을 마시면 사람이 달라진다고들 하는데, 술이 센 건지 어떻게든 취하지 않겠다 버티는 건지 음주 전후가 거의 같다. 술기운을 빌려 이야기꽃을 피워도 될 법 하련만 이놈의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고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뇌가 제 기능을 못 하기도 한다. 단지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할 뿐이다. “어? ○○씨, 왜 이리 말이 없어?”라는 말보단 “○○씨, 술 완전 잘 마시네.”라는 말로 나를 향한 시선이 더 이상 안타까움이 아닐 수 있게 하는 용도 말이다. 커피와 술 모두 내게 말하지 않을 핑곗거리를 준다. 요즘은 그게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