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이 반복되면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학생 때 제과점, 카페, 중식당, 편의점 등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받았다. 중식당에서는 단무지 같은 밑반찬을 기계처럼 옮겨 담는 일을 했다. 대화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홀 담당 직원에게 들은 말은 장기기억력 손상이 의심되는 나조차도 잊히지 않는다.
“넌 쓸데없는 말이 많아.”
말수가 적은데 가끔 입을 열면 그마저도 쓸데없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또라이 같은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 말을 듣고 얼어붙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사담을 할 때 입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큰마음 먹고 입을 열어도 내가 말하는 것과 다른 이가 말하는 것의 분위기 차이가 크다.
코로나19로 인해 ZOOM 연수, 회의 등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소회의실에서 모이면 대부분은 한참을 음소거 해제를 하지 않는다. 그 어색함을 풀기 위해 눈웃음까지 지으며 인사를 하고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질문하지만, 여전히 음소거 해제를 하지 않는다. 참가자들 자신만의 낯가림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물었냐는 듯이 입에 모터를 달며 리더처럼 굴기 시작한다.
비대면 상황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무실에서 하는 회의, 직장 동료와의 사담 같은 대면 상황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나만 빠지면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망상일까? 그 자리에 끼어 있으면 어색함을 전염시키는 것 또한 망상일까?
사실 교사야말로 쓸데없는 말을 가장 잘하고 잘해야만 한다. 학생들의 집중력은 무척 짧고, 흥미가 일지 않으면 재미없는 수업이라며 들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분위기 환기를 위해 주로 사용하는 게 ‘교사들의 쓸데없는 말’이다. 남자 교사는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본의 아니게 누가 공군, 육군, 특전사 출신인지 알게 된다. 어떤 교사는 지역별 사투리를 비교해서 제 한 몸 희생하여 억양 개그를 선보이기도 하는 웃픈 예는 학교 안에서 비일비재하다. 나는 쓸데없는 말이 많다는 인간이라는데 수업 시간에는 도저히 써먹을 만한 쓸데없는 말이 떠오르질 않아 말 그대로 수업만 하다가 나온다. 학생과의 대화에 실패하고 수업 끝 종이 울려 교실 밖을 나올 때의 그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좋은 점 중 하나는, 그 자괴감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을 때 마스크가 이를 가려준다는 것이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면 소극적이고 상처로 점철된 사람들이 글쓰기를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글밖에 없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들은 소극적인 이들에 비해 표현 수단이 많다. 어느 학교를 가나 선생님들한테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 보내는 메시지는 정중하면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워요.”
말은 정리되지 않아 입 밖으로 나가게 되어 서투르기 짝이 없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걸 감추고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글일 뿐이다. 이쯤 되면 혹자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열등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