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그 뒷이야기

by KH

오늘도 그녀는 선글라스를 낀 채 행성어 서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책을 펼쳐 한참을 읽고 있는 그녀를 보며 다른 관광객들이 흘깃 쳐다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녀와 서점 근처 오솔길을 거닐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행성어로 말이다. 한 달 정도 행성어로만 대화를 하니 그녀의 발음은 나 못지않게 자연스러워졌다. 화젯거리가 줄지 않아 빨리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할 뿐이었다.

“우리, 사실은 현실에 없는 존재 아닐까요?”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읽었어요?”

“아마 전 다른 세계에서는 수만 개 은하 언어를 구사하며 행성어 서점에 찾아와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일 수도 있겠어요.”

그녀는 그 사실이 못내 아쉬운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전 통역 모듈 개발자일 수도 있겠네요.”

모든 우주인에게 행성어를 알리고 싶었던 나는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나와 하루의 일부를 공유하던 그녀가 며칠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연락처 교환 같은 흔한 행위는 하지 않았기에 카운터에서 다리만 덜덜 떨며 자꾸만 문을 쳐다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서점 이곳저곳을 허락 없이 찍어대는 관광객과 읽히지 못할 안쓰러운 책들을 떠나보내기를 보름 정도 하자 그녀가 어쩐 일로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채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 있었어요?”

“......”

그녀는 부모한테 혼이 난 아이처럼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한 채 말했다.

“얼마 전 화성어 서점에 다녀왔어요.”

“혹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거예요?”

“맞아요.”

“기쁘지 않군요?”

“행성어가 기억나지 않아요. 사실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를 읽었을 때 눈치 챘는지도 몰라요.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

“설마 알고 있었어요?”

“......행성어 교본 만든 적 없어요. 당신이 사는 세계에서는 행성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모르는 척하고 말았어요. 미안해요.”

그제야 경직된 얼굴 근육이 풀린 그녀는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다른 세계의 당신이 행성어 교본을 쓴 것이었군요.”

“아마도요.”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가 곧 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일도 서점에 출석 도장 찍을 테니 그리 알아요.”

기다리던 말이었다. “추천할 책 준비해놓을게요.”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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