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실재하지 않으니까 무섭지 않다. 놀이기구? 심장이 벌렁거릴 뿐이지 스릴 넘치는 건 무섭지 않다. 갈등? 무섭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한다. 분명 눈과 귀는 그 상대방을 향해 있는데 의식은 저 멀리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되도록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더 나아가 동조)하려 노력한다. 그와는 다른 의견을 내려면 몇 번의 시뮬레이션과 다소의 용기가 필요하다.
혹시나 언쟁이 생길까 싶어 사전에 조심조심 또 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착한 인간 가면을 뒤집어써야 한다. 나를 아는, 꽤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난 게 나의 행운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해요’ 등 듣는 사람 죄책감 드는 말들 말이다.
나의 인간관계는 모래성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세지 않은 비바람 한 방이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관계를 구축할 때 중간중간 흙도 발라주고 벽돌도 차근차근 끼워 넣어주어야 하는데 곱디고운 입자의 모래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위태롭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의견 충돌, 조율, 갈등, 화해 등 다채로운 감정을 통해 단단해지는 저마다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법이다. 가족 또한 그럴진대,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극도로 피한다. 갈등이 일어나면 모든 관계가 끝이라는 듯이 극단적으로 생각한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싫은 표정을 지었다 싶으면 예민한 레이더가 이를 감지하고 상처를 받는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표정을 짓도록 바랄 권리 따위 없는데 참 이상한 사람이다. 역시 참을 수 없는 것은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