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악마의 똥가루가 내려.]
출근길 버스에 타고 있던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가게 앞 눈 쓸기가 되겠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여유 있게 베란다 쪽을 쳐다보니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갈피를 못 잡고 하늘거리는 눈발이 보였다. 토요일에 바라보니 바깥에 내리는 눈을 순수하게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오늘이 평일이었다면? 나도 친구와 같은 말을 내뱉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에 체인 스프레이 뿌리고 트렁크에 월동 장비가 얌전히 잘 있나 확인부터 하겠지.
남들 쉴 때 일하고 있으면 억울함을 느끼고, 남들이 일할 때 내가 쉬면 여유로움을 느낀다. 내가 커피 향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사람이 한 번에 쉴 수 없기에 휴식은 저마다의 시기가 있다. 휴식마저도 타인과 비교를 하는 이상한 사회에서 힘겹게들 살아가고 있다.
3년 전 강제 휴식기에 들어간 엄마는 처음 몇 달간은 직장인 루틴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울감을 호소했으나 지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삶으로 돌아가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적적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방학이 되어 평일의 엄마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하루 중 3분의 1을 통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로 오전으로,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며 근황 토크를 이어나갔다. 상대방이 바빠 보이면 얼른 끊고 주소록을 넘기고는 다른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서너 차례 통화를 끝낸 후 전원일기를 틀고 부업을 한다. 그러다 그것조차 질리면 방에서 빈둥빈둥 온라인 세계를 탐닉하는 자식에게 미주알고주알 일상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거실, 나는 방. 문을 열어두고 생활하기에 대화에 어려움은 없으나 벽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당연히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 커피 한 잔 마시며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게 맞겠지만, 뇌의 명령을 몸뚱어리가 들어먹질 않는다.
타의로 얻은 휴식이기는 하나 엄마가 휴식을 즐겼으면 했다. 하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일만 해온 사람에게는 취미가 없었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함만이 남아있었다. 살가운 딸내미이면 좋으련만 “문화강좌 다녀와 봐요. 책도 좀 읽고. 취미생활 즐기고 살아요. 밖에서 친구들도 만나고.”라는 무책임한 말만 하며 방관하고 있다. 사실 나도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아이 셋을 키우는 친구가 톡을 보냈다.
[너넨 취미가 뭐야?]
[독서ㅋㅋㅋㅋㅋ]
[난 너 괴롭히기ㅋㅋㅋㅋ]
[뭘 해야 할까ㅋㅋㅋㅋ]
웃음 너머의 당황함이 전해졌다. 친구들끼리 장난삼아 취미를 찾는 심리테스트 주소를 공유하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그림 그리기 등을 추천하기도 했지만, 친구의 마음을 끄는 건 없었다.
그들을 보며 자기만의 휴식 즐기기가 수월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나에게는 쉬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