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잣대를 부러뜨려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1975作(문학동네, 2023)

by KH

로자 아줌마와 모모(모하메드)는 세상의 잣대로 볼 때 정상적인 범주에 속해있지 않는다. 현실에서 만나면 동정 어린 시선을 건네나 결코 곁에 있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작가는 두 사람과 주변 인물의 삶을 절대로 미화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야 만다. 독자가 등장인물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묘사도 하지 않는다.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그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내 친구 하밀 할아버지가 늘 쓰는 말이에요.”
“아, 그래. 너는 아주 영리하고 예민한 아이야. 너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해야겠지. 종종 로자 부인에게 말했지만, 너는 정말 남다른 사람이 될 거다. 훌륭한 시인이나 작가나, 아니면......”
그는 또 한숨이었다.
“반항아가 되거나...... 하지만 안심해라. 네가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니까.”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정상인을 말하는거다.”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p.272

모모는 제 나이답지 않은 언행으로 주변 사람들을 아연케 한다. 양육 환경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어떤 환경에서도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정상적인 범주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독자는 그들을 사랑하게 되진 않아도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함’을 그들을 통해 배운다. 원하지 않아도 생(牲)이란 부여되며 이를 살아내야만 하며 마음대로 끝내지도 못한다. 로자 아줌마의 지독한 생을 자유롭게 끝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모모의 행동에서 그녀를 향한 사랑을 느꼈으며, 아내를 죽인 정신병자 아버지가 모모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왔을 때 충격요법으로 그의 목숨을 끊어지게 해 모모를 보호하는 로자 아줌마에게서도 아이를 향한 뒤틀린 사랑을 느꼈다. 누구 하나 정상적인 범주에 존재하지 않았다.

등장인물에 애정 하나 샘솟지 않아도 여운을 남길 수 있게 하다니, 범상치 않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이 작품을 작품 그대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이름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것에 신물이 났던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고자 했다. 그의 생 또한 두 사람 못지않게 파란만장했으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지만, 마지막엔 만족스러워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모모가 나딘 아줌마를 통해 세상을 거꾸로 돌리는 방법을 배워 회상하는 글을 쓴 것처럼, 로맹 가리도 글쓰기를 통해 자기 생을 제대로 다시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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