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음↗음↘음♩↗음♬↘음♪”
학교에서 돌아와 쌓인 일을 마저 하고 있자니 동생이 내 방문 앞에서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언니 화났어?”
“응? 왜?”
“언니 화나면 콧노래 부르잖아.”
“내가?”
“몰랐어? 완전 무서워!”
그렇다. 나는 화가 나면 콧노래를 부른다. 화가 나는 상황에 직면하면, 내가 억울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 자리에서 감정을 드러내야 했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상대방에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러나 갈등 회피 성향이 강한 탓인지 열이면 아홉은 그러지를 못하고 혼자 끙끙댄다. 몸속은 분노 호르몬으로 난리인데 입은 다물고만 있으니 콧구멍으로 소심하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습관이 어쩌다 생겼나 생각해 보니, 주변에 이런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먼저, 한 고등학교에서 평가계로 일하고 있을 때 직속상관이었던 연구부장님이 그랬다.
집중해서 일해야 할 때면 늘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던 분이다. 평소에는 소리도 내지 않고 집중하며 일을 했지만, 다른 부서 부장과 싸우고 와서는 잔잔한 멜로디로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여러 번 있다 보니 부장님에게 말을 걸 타이밍과 말을 걸지 말아야 할 타이밍을 구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내 편이 아니었다.
평가계 업무 중에는 시험 전 원안을 수합해서 검토하고 부장, 교감, 교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두문분출하는 선생님 몇 분이 계셔서 내부 업무 메신저로 연락을 했다. 잠시 후 연로한 선생님이 교무실로 내려오셔서는 악다구니를 지르기 시작했다.
“평가계 누구야?”
“접니다.”
“여기 원안! 알아서 잘 낼 건데 뭔데 내라 마라 메시지를 보내고 난리야? 싸가지 없게!”
“......?”
“내가 기한 하나 못 지킬까 봐? 그리고 그걸 메신저로 보낸다고?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지 말이야!”
“선생님, 제 말을 곡해하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을 민망하게 해드리려고 한 게 아니라, 혹시 바쁘셔서 잊고 계실까 봐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분이 풀릴 때까지 한참을 큰소리만 치다가 나갔다.1)
내 맞은편에는 연구부장님이 있었지만, 헤드셋을 쓴 채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후 나와 같은 연구부 신규 선생님이 방과 후 수업 강사수당 문제로 그 연로한 선생님과 갈등을 빚었다. 그러자 연구부장님이 헤드셋을 벗고 벌떡 일어나 쌍욕과 삿대질을 하며 목줄 풀린 개처럼 싸워댔다.
‘그때 식어가는 내 눈빛을 누가 봐주기는 했을까? 기간제 교사라고 차별하나? 신규 교사라고 챙겨주나? 나도 저연차인데 왜 도와주지 않았지?’
그런 사람의 습관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니 망할 몸뚱어리.
그리고 콧노래로 분노를 표출하는 또 한 사람은 엄마다.
아, 콧노래는 아니구나. 엄마는 화가 나면 입을 열어 같은 노래 한 구절을 5분 동안 반복해서 부른다. 분명 트로트 어느 한 구절인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개사까지 하는 능력을 보여주신다. 물론,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경우에는 옛날 일까지 꺼내와 상대방의 잘잘못을 반복해서 따지기 때문에 그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눈치를 잘 봐야 한다.
요즘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면 바로 멈추려고 노력한다. 동생이 무섭다고 했기도 하고, 언제까지고 감정 표출을 허공에 하고 싶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는 경력에 내 의사 표현 하나 건강하게 하지 못한다면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1) 연차가 쌓이고 사회성도 조금 높아지자, 연로한 선생님의 분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화를 해서 물어봤어야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뭔가를 부탁할 때(업무로 인해 당당해도 될 때도), 요청할 때, 독촉할 때조차도 “바쁘신데 죄송해요.”라는 말을 쿠션어로 사용한다. 저자세로 나가지 않으면 꽤 많은 선생님이 싸움을 건다고 생각해 화를 내거나 불편함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그런 학교 문화를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선배 교사답게 존조리 나무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