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의 분위기는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 입력 전과 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수시 대입 접수를 위한 생기부 입력 마감일은 8월 31일이다. 9월이 되면 교실에서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질병(생리) 결석, 가정 학습 등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2주도 지나지 않아 미인정(무단) 조퇴, 미인정 결석이 출석부 하단의 결석 사유란에 가득히 적힌다. 같은 반 학생들끼리도 친구의 조퇴와 결석 사유를 알지 못한다. 학원, 스터디카페, 과외 등의 사유로 미인정 조퇴를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담임교사가 이를 굳이 공공연히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공식적으로 알려지면 면학 분위기는 제대로 바닥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2학기 평가는 어떻게 되느냐?
관심 없다. 수시 원서 접수를 위한 생기부도 마감됐겠다, 정시로 갈 학생들은 관리 안 해도 되겠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가 전반적인 분위기다. 9월부터 학생들 얼굴 보기가 힘들어 8월 개학하자마자 시험 범위 진도, 난이도를 낮춘 수행평가가 시행된다. 평가 내내 만날 수 없는 학생들도 있다. 조회 시간에 얼굴만 비추고 미인정 조퇴하거나 6교시쯤 등교해서 역시나 얼굴만 비추고 귀가하기 때문이다.
10월 중순, 수능 전에 시험을 위한 수업과 수행평가가 끝나고 수능 준비를 위해 자습 시간이라도 줄라치면 자거나 영화를 감상하다 지도를 받기도 한다.
그럼 출석률이 가장 높은 기간은? 8월 개학 후 생기부 입력 마감 전까지이다. 3학년 1학기까지의 교과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창의적 체험활동 특기사항 내용에 이상이 없는지 교사와 함께 점검한다(생기부는 당해 학년도 비공개가 원칙이나 이를 지키는 학교가 있을까?).
영역별로 잘라진 특기사항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학생들은 이 교무실, 저 교무실을 다니며 수정 요청을 한다. 평가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어 ‘미흡’이라는 단어가 포함되기도 하는데, 이를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도 있다. 부정적 단어가 하나라도 있으면 대학을 절대 못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 생기부 마감 전까지, 생기부는 교사의 인질이기도 하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지만 학업 태도가 안 좋은 학생에게 “그렇게 딴짓하면/학원 문제집 꺼내면/전자기기 사용하면 생기부에 그대로 쓸 거야!”라고 말하면 바로 행동을 수정한다. 생기부를 인질로 삼아 의미 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교실에 가르침이 부재한 순간이다.
인질극은 생기부 마감과 함께 끝난다. 그날이 지나면 “생기부는 평생 기록이야.”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대입 출결 전송이 완료되었으므로 개의치 않는다.
물론 최후의 협박이 남아 있다. 이미 기재 완료한 생기부 내용을 학생 태도와 학습 능력에 정확하게 맞게 수정하거나 추가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생 그 기록이 남든 말든 역시나 가장 중요한 대입 생기부 전송 완료되었으므로 이 또한 개의치 않는다. 기록 추가는 되나 수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기도 할 테다.
생기부는 교사가 학생의 성장 가능성과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직접 관찰한 내용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교사가 부정적인 표현을 최대한 에둘러 쓰는 이유는 한국에서 대입의 무게가 잴 수 없을 정도로 무겁기 때문이다. 대입만을 목표로 12년을 달려가다 새로운 장벽에 부딪히며 또 다른 경쟁으로 내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무척이나 끔찍하다. 전반적인 대입제도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무한 경쟁의 시대가 계속되는 한, 학생과 교사의 이상한 인질극은 되풀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