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는 나를 가르친다
집에 들어오니 밤 열시다. 각자의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직 우리 개, 유자만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오늘처럼 식구들이 다 바쁜 날에는 산책을 나가지 못해서 초조해한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내가 혹시라도 산책을 시켜주지 않을까, 평소보다 더 살갑게 환영인사를 해준다. 꼬리를 흔드는지 엉덩이를 흔드는지 모를 정도로 힘차게 반가움을 표시하고, 내 품으로 뛰어 들어와 입가를 핥아댄다. 정말 최선을 다해 애교를 부린다. 평소엔 안 보여주는 배도 이럴 땐 훌렁훌렁 잘만 내보인다. 견생의 가장 큰 즐거움인 산책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기세다. 산책을 나가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결국 목줄을 채웠다. 이것저것 쌓아둔 할 일이 생각나 오늘은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유자가 하루 종일 산책만 기다린 것 같아 외면할 수 없었다. 쌓인 일들을 조금이라도 더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유자는 목줄을 매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높은 소리로 낑낑댄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자마자 코를 땅바닥에 대고 킁킁대며 빠르게 걷는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공원에도 사람이 없다. 목줄을 슬그머니 풀어 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다닌다. 이리저리 헤집고, 냄새 맡고, 건드려 본 후에야 내게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생기발랄한 표정으로. 어제와 똑같은 공원에서 얘는 대체 어떤 새로움을 찾는 걸까.
산책로는 매번 비슷비슷한데 우리 개는 매번 처음 오는 길처럼 열정적으로 냄새를 맡는다. 정말로 이 곳이 자기 구역인 양 영역표시를 하고, 땅을 파낸다. 헥헥거리면서 아주 빠르게 땅을 파고 있을 때는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다. 뭐가 있다고 항상 저렇게 땅파기에 몰입하는 건지 궁금하다. 오늘은 ‘나도 같이 파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슬쩍 옆으로 가봤는데, 매번 그렇듯이 파놓은 땅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오는 게 없어도 참 열심히 한다. 애초에 뭔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거겠지. ‘유자처럼 저렇게 순수하게 열심히 해보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든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니 밤 열한 시가 다 됐다. 유자는 발을 닦아주자마자 엄마 옆으로 가서 잠을 잔다. 부러울 정도로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다. 개한테 지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미뤄놓은 일을 끝내지는 못해도 시작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헥헥거리며 땅을 파던 유자의 발놀림처럼, 하루에 다만 몇 분이라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유자처럼.